1918년, 한 개의 연애 스캔들이 조선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다. 신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이광수가 허영숙과 함께 중국 북경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 것이다. 이광수는 스물일곱, 허영숙은 스물한 살이었다. 이때 이미 이광수는 '무정'의 발표로 조선의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으며 허영숙은 도쿄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개원을 앞두고 있었다.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과 조선 최초의 여의사,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이상적 커플이었다. 문제는 허영숙과 사랑에 빠질 당시 이광수가 유부남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물론 허영숙과 북경으로 떠나기 직전 이광수가 이름뿐이었던 조혼의 아내와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불륜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 당사자가 일부일처제의 중요성을 주창하였던 신청년들의 우상 이광수가 아니었던가. (사진 / 이광수와 허영숙의 가족사진.)
이광수에 대한 허영숙의 사랑은 헌신적이었다. 그녀는 이광수를 도와서 동아일보의 편집 일을 담당했으며, 정치적 사건으로 수감된 이광수를 대신하여 가족들을 돌봤고, 이광수가 수감 생활 이후 긴 투병기를 겪는 동안 그를 세심하게 보살폈다. 콜레라로 급사한 부모의 시신을 자신의 손으로 밀짚 거적에 말아 장례를 지낸 열한 살 이래, 삶의 안온함을 누려본 적이 없었던 이광수였다. 그런 그에게 허영숙은 아내이자, 누이이고, 어머니였다. 1938년 발표된 '사랑'은 허영숙의 헌신적 사랑에 대해 이광수가 바치는 헌정소설이기도 했다. 소설의 주인공 석순옥은 허영숙과 상당 부분 닮아 있다. 그녀는 유부남을 사랑했던 허영숙처럼 유부남 안빈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는 한 남자에게만 헌신했던 허영숙처럼 안빈에게 절대적으로 헌신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불륜이라는 치명적 오점을 남긴 허영숙과 달리 석순옥은 안빈의 병약한 아내까지 헌신적으로 돌본다. 그것은 격정의 이십 대를 지나 이미 사십 대 후반, 중년이 된 이광수가 바라본 ‘사랑’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그려가는 이광수의 시선이 너무 복고적이어서 슬프다. '사랑'의 석순옥은 평양의 여학교 영어교사를 지낸 인물이다. 이 신시대적 이력과 달리 그녀는 양장보다는 옥빛 한복을 즐겨 입으며 순종적이다. 옥빛 한복, 한 남자에 대한 깊은 존경과 절대적 헌신, 석순옥이 그려가는 여성의 모습은 전통적이다. 그래서 그녀가 만들어 가는 '사랑'의 세계 역시 전통적이다. 욕망에 쉽게 휘둘리지만 열정적이고, 쉽게 좌절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의욕에 불타 있던 이십 대의 이광수는 더 이상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이 발표된 1938년. 식민지의 현실은 극도로 삼엄해졌으며 이광수는 마흔 일곱 살이었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모든 열정을 접고 친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랑'을 쓸 무렵의 이광수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이미 쇠잔해 있었다. 그것은 나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미 그의 마음이 먼저 현실에 굴복하고 있었다. 어둡고 피폐한 현실 속에서 이광수는 스스로 열정을 접고, 체념과 순응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사랑〉에서 그려지고 있는 관조적이고 순응적이며, 희생하는 사랑의 형태는 삶의 열정을 상실해버린 이광수 정신의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열정을 포기하기에 마흔 일곱은 너무나 젊은 나이였다. / 정혜영 대구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