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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재료공학
인체 부품 선도하는 꿈의 기술
기계를 오래 쓰면 부품이 닳고 접합 부분이 낡아서 고장이 잦아지듯이, 인간도 늙어 가면서 조직들이 낡고 약해지게 마련이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고, 탄력을 잃은 피부에는 주름살이 늘어난다. 치아는 하나 둘씩 빠지고 시력과 청력이 떨어진다. 소화 기관이나 순환 기관의 기능도 저하되어 여러 가지 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자연적인 노화 현상이 아니더라도 장기가 손상되는 경우는 많다. 교통 사고나 과도한 운동 등도 장기에 큰 손상을 입혀,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인체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의 손상을 입으면 현재의 의학 기술은 외과 수술로 손상된 부위의 조직을 제거하고 남아 있는 정상적인 인체 조직을 보존해 사용 기간을 늘린다. 그러나 이렇게 특정 기관을 영구히 제거하는 방법으로는 환자의 삶을 사고나 병 이전의 상태로 돌려 놓기는 힘들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상된 인체 기능을 정상 조직이나 장기로 대체하거나 아예 재생시키는 것이다. 아직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요원한 꿈이라고? 그렇지 않다. 지금 생체재료공학이 그 꿈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상 부위 대체하는 인공 물질_ 생체재료란 질병과 사고 등으로 인해 손상된 신체 부위의 기능과 형태를 대체하기 위해 생체에 직접 이용되는 인공적인 재료를 의미한다. 인공 혈관, 인공 관절, 인공 심장 등과 같이 인체의 조직이나 장기를 직접 대신하는 재료들뿐 아니라, 눈의 각막과 접촉하는 콘택트 렌즈나 약물의 방출 속도를 조절하는 조제용 재료, 그리고 수술 후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수술용 봉합사 등도 모두 생체재료에 포함된다.
손상된 장기를 아예 다른 장기로 대체하는 장기 이식의 경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공여자는 크게 늘지 않아 장기 수급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사람의 세포를 조작하거나 장기를 인위적으로 처리해 생명 활동이 가능한 인공 조직을 개발하는 의학적 접근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 유전자를 삽입한 돼지나 원숭이로부터 심장, 간, 신장 등의 장기를 얻는 방법과 특정 장기로 분화하는 속성을 가지는 자신의 줄기 세포(stem cell)를 체외에서 배양하여 특정 장기로 재생시켜 이식하는 방법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중 다른 종(種) 간의 장기 이식은 세균 감염의 위험성 때문에 20~30년 뒤에나 실용화될 전망이다. 인간 배아 줄기 세포에 대한 연구 역시 윤리적인 문제로 제한을 받고 있다. 게다가 줄기 세포 분화에 대한 연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으므로, 실용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인체의 손상 부위를 대체하는 인공 물질을 개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인공 장기 만드는 생체재료_ 생체재료는 크게 생체 불활성(bioinert) 재료, 생체 활성(bioactive) 재료, 생분해성(biodegradable) 재료로 구분된다. 생체 불활성 재료는 몸 안에 이식된 후 염증이나 독성과 같은 거부 반응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형태와 구조를 유지하는 재료이며, 생체 활성 재료는 몸 안에 삽입되면 주위의 조직과 직접 결합해 기능을 나타내는 재료다. 또한 생분해성 재료는 이식 후 체내에서 서서히 분해되면서 재생하는 장기로 바뀐다.
생체재료는 그 재질에 따라 금속 재료, 세라믹 재료, 고분자 재료로 구분될 수도 있다. 금속 재료는 강도가 높기 때문에 뼈나 관절을 대체할 때 주로 사용된다. 뼈나 치아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손상된 부위를 채워 주는 용도로는 세라믹 재료가 이용된다. 뼈와 치아의 무기 성분인 아파타이트가 바로 세라믹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세라믹 재료는 심장의 인공 판막이나 인공 관절 등에도 이용된다. 고분자 재료는 제조 과정 중에 화학적, 물리적 성질을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상실된 인체 조직을 회복시키기 위해 삽입하는 각종 임플란트는 각 부위가 필요로 하는 재료의 성질에 따라 고분자와 금속, 세라믹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공 심장의 경우를 예로 들면, 심장 본체는 고분자로, 그리고 판막이나 밸브, 박동기 등은 금속으로 만든다.
영화나 TV 드라마에는 불운한 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인공 신체를 얻게 된 후 로봇과 같은 엄청난 능력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지금의 생체재료공학은 과연 이러한 이야기에 얼마나 근접해 있을까?
현재 인공 심장, 인공 혈관, 인공 폐, 인공 간, 인공 관절, 인공 귀, 인공 피부, 인공 신장 등 거의 대부분의 장기와 조직이 생체재료 공학 기술로 개발되어 임상 시험 중이거나 사용 중에 있다.
인공 심장은 심장 기능의 일부 또는 전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장치로서, 인공적으로 개발한 ‘혈액 펌프’라고 할 수 있다. 1982년 미국 유타대에서 심장병 환자에게 인공 심장을 이식하여 112일간 생명을 유지시킨 임상 시험이 성공을 거둔 이래, 각국은 인공 심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공 심장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정상적인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자연 심장을 제거하고 이식하는 ‘완전 인공 심장’이고, 다른 하나는 심장을 제거하지 않고 심실 기능의 전부나 일부를 보조하는 심실 보조 장치다. 심실 보조 장치는 여러 가지 제품이 이미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실용화되어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환자에게 시술되었다. 2001년에는 미국 회사인 바이오메드가 세계 최초로 환자의 병든 심장을 완전히 제거하고 인공 심장을 이식하여 완전 인공 심장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에 인공장기센터가 설립되었는데, 이 곳은 세계 최초로 심장의 좌·우심실의 기능을 보조하는 체내 이식형 인공 심장 ‘애니하트’를 개발한 서울대 의대의 성과를 이어받아, 국내 인공 심장, 인공 신장, 인공 간 개발의 사령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장은 체내의 노폐물을 걸러서 배설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면 혈액 속에 독성 물질이 축적되며, 심한 경우 구토, 출혈, 호흡 곤란 등이 일어나며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이 때 인공 신장을 사용하면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어 노폐물을 제거하고, 깨끗해진 혈액을 다시 몸 안으로 넣어 줄 수 있다. 인공 신장은 1943년 임상 시험에 성공한 뒤 여러 가지 형태로 개발되었다. 신장은 일종의 화학 공장이라고도 불릴 만큼 기능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체내 이식형 인공 신장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다. 현재 인공 신장의 기능은 향상시키면서 이식이 가능할 만큼 소형화 시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인공 치아나 인공 뼈, 인공 관절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세라믹이나 금속 재료를 이용하여 세계적으로 200여 가지의 다양한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인간의 신체 부위를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공 관절의 수명은 10~15년 정도로, 젊은 환자의 경우 재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인공 관절의 개발이 시급하다.
최근 아이슬란드에서는 사고로 무릎 관절을 잃은 환자의 관절 안에 센서를 부착해 이식한 후 환자의 걸음걸이 특성을 파악함으로써 스스로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는 인공 관절을 개발했다. 이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04년 올해의 발명품에 선정되었다.
세포로 장기 만드는 생체조직공학_ 생체조직공학이란 환자에게서 추출한 세포를 생체 재료에 결합시켜 장기 모양으로 만든 틀에 넣어 배양한 후, 원하는 장기의 성능을 생체와 가능한 가깝게 재생하는 기술이다. 현재 생체조직공학 기술을 이용해 추출한 조직 세포와 고분자 재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혼합형 인공 장기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에는 고분자 물질로 만들었던 각막이나 연골 등의 인공 장기를 생체를 이루는 세포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생체조직공학의 기술을 이용하면 구태여 장기 공여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인체 내에 이물질을 넣지 않아도 되므로 거부 반응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심장 판막, 요로, 치아, 유방, 방광, 간, 췌장, 피부, 연골, 신경 세포, 혈관 같은 인공 장기를 생체조직공학으로 재생하는 기술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공 췌장이다.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액 내 당 수치를 조절하는 기관이다. 인슐린은 혈당량을 낮춰 주는 역할을 하므로, 췌장이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면 혈당 수치가 상승하여 소변에 포도당이 섞여 나오는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혈액에는 포도당이 많지만 정작 포도당이 필요한 신체 곳곳의 세포는 포도당 부족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증가하는 혈당을 조절하지 못하면 시력이 떨어지거나 신장 기능이 저하되는 등의 합병증이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환자들은 적당한 주기로 일정량의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만 한다.
매번 주사를 통해 인슐린을 공급받는 번거로움을 덜어 줄 인공 췌장은 기계적 방식과 생체공학적 방식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기계적 인공 췌장은 혈당 측정기, 인슐린 또는 포도당 펌프, 그리고 혈당 측정기와 펌프 간의 상호관리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생체공학적 인공 췌장은 동물이나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췌장 세포를 떼어내 고분자 재료 안에 넣어 환자의 체내에 삽입하는 것인데, 현재 인체에 이식이 가능한 포도당 감시 장치와 인공 췌장 등이 상당 수준 개발된 상태다.
부작용 걱정 없는 성형수술_ 화상으로 심하게 훼손된 피부를 감쪽같이 되살려 낼 수 있는 인공 피부도 현재 임상에 사용되고 있다. 지금까지 화상 환자에게는 주로 환자 본인의 다른 신체 부위에서 떼어 낸 피부를 이식하는 자가 이식 치료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자기 피부를 이식하더라도 떼어 낸 피부 부위에 흉터가 남고, 손상된 부위가 넓을 경우 자가 이식에도 한계가 있으므로, 대량으로 공급 가능하고 안전한 인공 피부의 개발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콜라겐과 같은 천연 조직 재료나 합성 고분자로 만든 인공 피부는 피부에서 떨어지기 쉽고 장기간 동안 피부를 보호하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생체조직공학을 이용하여 세포의 일부를 생체에 적합한 지지체에 배양한 후 직접 이식하는 배양 피부를 사용하면 이러한 단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인공 피부는 다른 입체적인 장기나 조직에 비해 단순한 평면 지지체를 이용해 만들 수 있으므로, 최근 세포 배양을 이용한 인공 피부에 대한 특허 출원이 세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재 아프리그라프(Afrigraf)와 더마그라프트(Derma graft)라는 이름의 배양 피부가 개발되어 시판 중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병원 연구팀이 개발한 인공 피부가 판매되고 있다.
연골은 혈관이나 신경이 없으며 재생이 잘 되지 않는 독특한 조직이다. 연골 조직을 대체하기 위해 과거에는 세라믹이나 금속 같은 인공 재료를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만들고자 하는 귀나 코 모양의 생분해성 고분자 틀에 환자에게서 떼어 낸 조직 세포를 심어 배양한 후 체내로 이식하는 것이다.
몸 안에 들어간 고분자 틀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분해되어 없어지므로 완전한 연골 조직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며, 이물질을 넣었을 때 일어나는 거부 반응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국내에서도 생분해성 고분자 틀에 토끼나 사람의 연골 세포를 배양해 인공 연골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 성형외과에서 콧대를 높이는 데 사용했던 실리콘 삽입 방법은 부작용에 대한 위험과 이물질의 삽입으로 인한 거부감이라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수년 내에 실리콘 대신 생체조직공학을 이용한 인공연골을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 혈관도 오래 전부터 연구가 이루어져 온 분야 중 하나다. 1952년 나일론 관이 최초로 사용된 이래, 다양한 소재의 인공 혈관들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 임상에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공 혈관은 다크론과 테플론을 소재로 한 것이다. 대동맥처럼 혈액의 흐름이 빠른 부위는 인공 혈관을 사용할 수 있으나, 지름이 4~6mm 이하의 가는 혈관을 인공 혈관으로 대체할 경우 시간이 경과하면 혈액이 응고되어 혈관이 막힐 위험이 있다. 생체 내의 혈관은 환경에 따라 다양한 물질을 분비하여 혈류와 혈압을 조절함으로써 혈액의 응고를 방지하지만, 인공 혈관은 이러한 생리적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료 표면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연구가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생체와 조화를 이루는 재료 개발이 과제_ 최근 생체재료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그 적용 범위가 다양해짐에 따라, 의료비 지출 비율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생체재료공학을 유망 산업으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체재료의 수요가 아직 다른 분야에 비해 소량이고 다품종이라는 이유로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으나, 생체재료가 다른 제품들에 비해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는 많은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지원이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생체재료를 개발하고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재료과학, 의학, 세포생물학, 의공학, 생화학 등 관련 연구자들 간의 공동 연구가 필수적이다. 특히 의료 현장의 요구를 잘 파악하여 그에 맞는 재료를 개발하는 재료 연구자는 생체재료공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체의 일부분이 제품화되어 필요할 때 인공 재료로 교체할 수 있는 ‘인체 부품 시대’로 나아가게 할 열쇠를 재료공학자가 쥐고 있는 것이다.
아직 인간이 만든 어떠한 인공 재료도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최적화된 본래의 장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다. 인체는 이물질이 침입하면 거부 반응을 일으켜 기능을 저하시키거나 질병에 걸리게 한다. 따라서 되도록 실제 장기와 비슷하면서 거부 반응 없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생체재료의 개발은 인류 전체를 위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인공 장기를 포함한 생체 재료 개발은 뇌사자에 의한 장기 기증, 인간 복제 방식을 통한 장기 공급 등 윤리적 논란을 야기하는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_ 안철희·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P r o f I l e _
안철희 교수는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에서 고분자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KIST와 JAIST, 미국 유타대를 거쳐 2002년부터 서울대 재료공학부 조교수(생체의료 중합체 연구실)로 재직 중이다. 주요 관심 분야는 의료용 생분해중합체 개발과 이를 이용한 약물전달체계, 올레핀중합의 신촉매 합성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