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할머니들과 소주잔 기울인 이유
장날(4·9일)인지 장터 앞이 상당히 북적였다. 가은읍은 지난 2011년 여름 2년 정도의 개보수 공사를 거쳐 기존 전통시장을 '가은아자개장터'라는 체험형 문화관광시장으로 개조했다.
우선 기존의 전통시장 상가들은 새로 수리하기도 하고 짓기도 했다. 숭례문 복원에 참여하기도 했던 석노기씨가 직접 전통 대장간을 만들어 각종 농기구제작 및 생활용품 전시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아울러 문경 전통의 도자기 만들기 체험이 가능하도록 도자기관을 만들어 체험과 전통 차 시음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요즘은 보기 힘든 칼국수 체험 장도 만들어 스스로 반죽도 하고 칼국수도 빚고 썰어볼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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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은읍 문경 특산, 오미자 와인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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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방앗간도 만들어 물레방아, 디딜방아, 절구, 맷돌 등 전통방앗간 체험은 물론 현대식 방앗간도 설치하여 비교가 가능하도록 했다. 여기에서는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특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곳은 문경특산물판매장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은 오미자가 유명한 곳이라 오미자 와인과 오미자청, 오미자 비타민, 민들레 차, 민들레 진액, 각종 건 버섯, 블루베리 가공품, 사과 식초, 썰어서 말린 사과, 솔잎 분말, 오미자 당절임 등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물론 전통시장인 관계로 장터 먹을거리도 충분히 접할 수 있다. 전통주막에서는 막걸리와 빈대떡, 각종 전류, 찐빵과 만두 등을 먹을 수 있고, 산채비빔밥과 가마솥에 직접 끓인 장터국밥도 맛볼 수 있다.난 안내소에 갔가다 쉼터에 앉아 쉬면서 시장을 전체적으로 둘러보았다. 특산물판매장에서 비타민 여러 통을 산 다음, 지역에서 나오는 유곡동에 있는 오미자청과 가은읍에 있는 오미자 와인 공장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나왔다. 조만간 기회가 되면 두 공장을 한 번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장을 둘러보는 재미는 상당했다. 구경을 하다보니, 오전 9시가 되었다. 난 아침을 먹기 위해 시장 안에 있는 산채비빔밥집 '산채마을'로 갔다. 시골이라 아침을 파는 곳이 많지 않아 식사도 하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을 했는데, 역시 시장에 오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비빔밥을 시키고 물을 한 사발 마시고는 잠시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 한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더니 내 앞에 앉아서 소주를 한 병 시킨다. 경황 없이 앞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난 별 부담 없이 동석을 허락했고 같이 소주를 한 잔했다. 이어 들어온 할머니도 동석을 하여 아침부터 소주로 속을 채웠다.이곳 장터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었는데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 전에 한 잔 술로 잠시 휴식도 취하고 힘을 내기 위해"서라고 했다. 김치 안주에 소주를 마시기가 부담스러웠던지 이내 한 할머니가 흑 두부를 한모 사와서 두부와 김치를 안주로 소주를 전부 마셨다.처음 보는 사람과 동석을 하여 소주를 마시는 것도 대단하지만, 아침부터 소주를 마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아무튼 나는 군소리 없이 그분들과 소주를 마시곤 아침식사로 비빔밥을 한 그릇 먹었다. 난 식사비와 소주값을 같이 낸 다음 "두부 한 모 같이 먹은 값으로 제가 소주 값은 내지요"라고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약간 취기가 올랐지만, 아침부터 나와 장사를 하시는 할머니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빈속에 나오셨는지, 두부와 김치로 아침을 때우고 소주로 속을 달래는 모습이 서글프기는 했지만, 우리네 시골 아주머니들의 현실이기도 한 것을... 조금은 알 듯했다.밥을 많은 먹은 나는 힘을 내어 아침 일찍 갔던 갈전리 방향으로 다시 길을 잡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鍮器匠) 이봉주 명장이 운영하는 '방짜유기촌'으로 갔다. 30분 이상 걸어서 산중턱에 있는 방짜유기촌에 올라갔더니 토·일은 오후에만 문을 연다고 한다. '먼 길 왔는데 차라리 문을 열지 말지, 오후에나 문을 연다'고 하니 더 좌절하게 된다.'이런 다음에 다시 오기도 힘든데, 오후에 다시 와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그냥 안팎을 도둑고양이처럼 살펴보고 가기로 하고 크게 둘러보았다. 실내는 대부분 문이 잠겨있어 볼 수 없었지만, 뒤편 작업장은 청소를 하는 중이라 잠시 가공 준비 중인 금속 덩어리와 실패작들을 눈으로 구경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앞에 있는 송덕비도 보고, 유기로 만든 종도 보았다. 종은 유기로 잘 만들어져 있어 느낌은 체감할 수 있었다. 이곳의 유기장 이봉주 선생은 평안도 정주 출신으로 20대 초반에 월남하여 서울에 있는 유기공장에 들어가 처음 일을 배웠다고 한다.이후 서울 용산구에서 유기 만드는 일을 계속하다가 지난 2002년 이곳 문경시 가은읍으로 내려와 약 4만 평 부지에 공방과 기숙사 등을 마련했다. 현재 대구에는 박물관을 준비 중이었고, 이곳 문경에서는 제자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짜유기는 현대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신비의 그릇이다. 인체에 나쁜 성분을 만나면 변색되며, 독성이 없고, 항균·살균 효과가 탁월해 생명을 살리는 신비한 물건이라고 한다. 구리와 주석 비율을 78대 22로 섞어 만든다. 보통은 구리에다 주석을 17%까지 섞을 수 있는데 우리 방짜 기술은 특이하게도 22%까지 합금해낸다금속을 혼합하는 과정에 비율이 정확하지 않거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불에 달구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재료가 늘어나지 않는다. 또한 쉽게 깨지거나 터져 버린다. 정확한 합금이 이루어져야만 방짜유기 특유의 색과 광채가 나온다고 한다.
내·외부를 전부보지는 못했지만, 느낌만으로도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길을 좀 더 서쪽으로 잡아 후백제 시조 견훤 왕이 태어나고 자란 집터와 그의 탄생신화와 관련이 있는 갈전리 '금하굴'로 갔다. 아침부터 날이 더워지고 있어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