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방 앞 '낙지볶음' 골목
달큰하고 '맛있게' 매운맛 일품 겨우 4집 성업 '유명세' 전국적
가스화로의 열기가 여간 아니다.
푸른 불꽃이 분기탱천하여 펄펄 끓어오른다.
참으로 신기하다.
유난히 더위를 참지 못하는 부산 사람들이,그 화로 앞에서는 여유작작 둘러앉았다.
그리고는 뜨겁고도 매운 낙지볶음을 맛있게들 먹어댄다.
연신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모두들 '낙지 삼매경'에 빠졌다.
부산시 동구 범일동 일대.
부산 사람들은 부르기 쉽게 '조방 앞'이라 부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한 때 '조선방직'이라는 걸출한 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자유시장과 평화시장,중앙시장이 자리하고
부산의 최대 귀금속 상가와 유명 백화점도 있는 부산의 대표적 쇼핑 지역이다.
이 곳에 40여년 넘게 부산의 입맛으로 자리 잡은 골목이 바로 '낙지볶음 골목'이다.
1960년대 초 '원조 할매집'이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팔기 시작한 낙지볶음은,
이제 '조방 낙지볶음'이라는 상표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원조할매' '본가' '큰마당' '새할매' 등 겨우 4집이 골목을 이루고 있지만,
그 유명세나 브랜드 파워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낙지볶음으로 유명한 서울 무교동의 낙지볶음과는 달리,'조방 낙지볶음'은 달큰하면서도
적당히 매운 맛이 남녀노소 모두들 좋아하게 생겼다.
그래도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먹으면,특유의 화끈한 맛이 입맛 되돌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방 낙지볶음'은 그냥 매운 것이 아니고 '맛있게 매운' 것이 나름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화학조미료는 일체 쓰지 않으며,갈아 낸 마늘과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양파와 대파를 수북하게 얹어,
상긋한 향과 함께 단맛을 냈다.
그래서 여성 마니아가 더 많을 정도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원조 할매'집에 들어선다.
한가한 시간임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드나든다. 차림표는 '낙지볶음' '낙새(낙지,새우)볶음' '낙곱(낙지,곱창)볶음' 세 가지다.
'낙지볶음'은 순수 낙지 마니아들이 좋아하고,'낙새'는 새우의 고소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낙곱'은 낙지의 쫄깃함보다 더 씹힘성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곱창과 더불어 맛있게 씹어댈 때 좋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낙새볶음'과 소주 한 병을 시킨다.
검은 프라이팬에서 '낙새'가 파르르 끓는다.
화기가 화끈 다가온다.
곧이어 강한 양념냄새가 군침을 돋운다.
국물 한 입 후후 불어 떠먹는다.
짙으면서도 담백하다.
짙으면서도 담백하다니? 참으로 요지경의 맛이다.
소주 한 잔 털고 바삐 낙지 한 입 씹는다.
오돌오돌 살강살강 잘도 씹힌다.
낙지는 화기에 오래두면 질겨지기 때문에 익는 즉시 먹어야 한다.
새우는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워 낙지의 씹힘성과 대별된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이 조화롭다.
낙지와 새우로 소주 두어 순배 돌다보면 양념 국물이 걸쭉해진다.
그 양념 국물을 밥에 듬뿍 얹어 슥슥 비빈다.
당면과 양파 등속을 같이 넣어야 제 맛이 난다.
밥에 짙은 간이 배여 온통 입 안이 시끌벅적 하다.
술꾼들이 이렇게 비벼 먹으면,밥도 안주가 되는 묘한(?) 현상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다 먹을 때쯤이면 다시 각종 사리(당면,우동,라면)를 넣어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2인분을 시켜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이 곳 '낙지볶음 골목'의 인심이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연일 부산을 강타하고 있다.
당연히 입맛도 잃어버릴 시기다.
'화끈하게 맛있는' 낙지볶음으로,여름 더위로 잃어버린 입맛을 다시 되돌려 보자.
온 가족이 같이해야 더욱 맛있고 즐겁다.
네 집 다 맛있으니 어느 집에 가든 상관 없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