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일월산 & 본신리 금강송숲 르포
‘접신의 산’에서 신록을 맞다
당리 저수지~방아목~일자봉~월자봉~추자봉 원점회귀산행경북 영양
일월산(日月山·1,219m)은 이름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해와 달이 떠오르는 광경이 잘 바라보이는 산이다. 실제로 한 일(一) 자형으로 수평을 이룬 능선 양쪽에 봉긋 튀어 오른 일자봉(日字峰·1,219m)과 월자봉(月字峰·1,205m)은 일출과 월출을 맞이하기에 그만이다. 특히 경북 최고봉인 일자봉 정상 부근에 들어선 해맞이광장(계단식 데크)은 일출맞이뿐 아니라
낙동정맥 조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일월산은 산릉을 따르는 사이 천상화원이 수시로 나타나 발목을 붙잡았다. 월자봉 북서릉 상의 현호색 군락지.
오랜 세월 접근이 쉽지 않아 오지 산으로서 명성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일월산은 ‘접신(接神)의 산’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땅에서 신을 만날 수 있는 산은
지리산,
계룡산,
일월산 세 산에 불과하며, 그중
일월산이 가장 영험한 산이라는 게 무속인들의 주장이다. 용화리 선녀골 계곡뿐 아니라 월자봉 아래 황씨부인당과 같은 곳이 이러한 무속인들이 내림굿을 하기 위해 찾아들고 있는 기도터다.
신록 속에 야생화 만발한 능선길5월 초, 일월면소재지에서 당리저수지를 향하는 사이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아도 뭉개구름 피어오르듯 신록이 두루뭉실한
일월산 산릉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 다래덩굴 아래 산괴불주머니 꽃 만발한 지계곡을 따라 방아목으로 오른다.(왼쪽) / 아름드리 소나무 거목이 고갯마루를 장식한 방아목. 수십 년 전 송진 채취를 위해 톱으로 켠 자리가 흉물스럽게 남아 있다. (오른쪽)
“접신의 산이에요. 여산(女山)이기도 하고요. 산이 하도 순해 순산(順山)이란 이름도 있답니다.”
일월산만큼 여러 이름을 지닌 산도 드물다. 오늘 산행 길잡이를 맡아준 이동기씨(영양군청 산림축산과)가 알려준 이름말고도 일위산(日圍山), 일우산(日雨山), 쌍요악(雙曜岳)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산이 워낙 덩치가 크고 산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래도
일월산을 일컫는 대표적인 이름은 역시 접신의 산이다. 산행 전날 권명달씨(영양군청 산림축산과)는 “신을 접할 수 있는 세 산 중
일월산의 기가 가장 세다”고 귀띔해주었다.
“와~. 온통 다래 덩굴이네. 참취도 많고-. 깊긴 깊은 산인가 보네요.”
당리저수지 둑길을 지나 차에서 내려
일월산 남서릉 상의 고갯마루인 방아목(653m)으로 오르는 사이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몸과 마음을 빼앗긴다. 다래 덩굴 아래서 신록이 피어나는 숲은 햇살이 파고들어 더욱 아름답고 싱그럽다. 이동기씨는 “
일월산은 산나물이 엄청 많이 나는 산”이라 자랑하면서도 “점심에 쌈 싸먹을 취나물 좀 뜯고 가자”는 일행의 부탁에 “부지런히 걸어도 오늘 안에 끝내기 힘들다”며 재촉한다.
좁은 골짜기를 거슬러 방아목(정상 3.5km, 도곡리 4.5km, 찰당골 1.2km, 당리 5.6km)에 올라서자 시원한 바람과 소나무 거목들이 반겨준다. 영양은 어딜 가나 소나무다. 개울가 기암절벽에서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채 자라건 산속 깊이 숨어살건 한 그루 한 그루 명목 소나무다. 그러나 고갯마루 소나무 몇 그루는 오래 전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어 가슴 아프게 한다. 40대 중반인 이동기씨는 “어릴 적 송진 받겠다고 톱으로 쓸어낸 상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알려준다. 그래도 껍질이 벗겨진 굴참나무는 상처 난 부위에 살 차듯 원상을 회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줘 생명력의 강인함에 새삼 감탄케 한다.
된비알 능선을 올라서는 사이 바람에 제법 세다. 이동기씨는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라고 불어대는 바람이라며, “농부들은 이 바람을 고추 모종 옮겨 심으라는 계절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일러준다.
▲ 베틀바위에서 바라본 천화사계곡. 신록이 산릉을 향해 스멀스멀 올라가고 있다.
“지명들이 무척 재미있네요. 예개봉, 쿵쿵목이, 참남배기, 다래바위 등 하나 하나 마음에 와닿는 이름들이네요.”
일월산 기슭에는 정감 넘치는 이름을 지닌 마을도 많고 명소도 많다.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찰당골 외에 노루모기, 안벌매, 추자나무골 같은 지명은 골 안에 위치한 지명이고, 방아목, 예기봉, 쿵쿵목이, 비조암 등은 산릉에 자리 잡은 기암이나 특이한 곳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건 국수나무 같은데-.”
“아니에요. 분꽃나무예요.”
한여름 무더위처럼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산릉에는 많은 야생화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진달래꽃뿐 아니라 철쭉꽃도 이미 시들어가고 있지만 대신 현호색 꽃은 절정의 빛깔과 자태를 자랑하며 신록을 즐기고 있었다. 이렇게 산길 주변에 꽃이 많다 보니 이름이 궁금해지고, 누가 아는 꽃이다 싶어 “이거다” 하면, 다른 누군가 “아닌 것 같은데” 하며 다른 이름을 대는 바람에 오히려 궁금증이 더해갔다.
“저건 고깔나물이에요. 우산나물이라고도 하고요. 엊저녁 식당에서 먹어봤잖아요.”
▲ 신록 속에 화사하게 피어난 철쭉꽃을 스쳐 지나가는 이동기씨. 일자봉 남서릉.
먹는 나물이란 소리에 황원선씨가 뜯으려 하자 이동기씨는 “흔한 나물인데 굳이 뜯을 필요 있겠냐”며 "오늘 재수 좋으면 좋은 나물 만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말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어우러진 산릉을 따르는 사이 간간이 숲이 벗겨지면서 정상 능선이 바라보인다. 산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신록이 8부 능선을 막 넘어서고 있으나 일 자 산릉은 아직 누런 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와~, 제대로 보인다. 와 멀다. 저건 봉화
청량산 같은데.”
오전 11시30분,
일월산 남서릉에서 조망이 가장 좋다는 베틀재에 도착한다. 말이 ‘재’이지 베틀재는 기암절벽 위의 바위지대다 보니 조망이 좋을 수밖에 없다. 멀리 겹을 이룬 산릉들이 파도치듯 일렁이고 신록에 물드는 산사면은 삼라만상을 모두 품어 안을 듯 따스하고 넉넉하게 느껴진다. 골 안 깊숙이 자리 잡은 천화사(天華寺)는 도인들의 거소처럼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멋진 조망에 산들바람이 불어대자 일행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갈 길이 멀다며 걸음을 재촉하던 이동기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찌하리, 결국 가야할 길인 것을-.
일출과 조망 명소인 일자봉 해맞이광장베틀재를 지나면서 산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신록에 흥이 겹고 산 아래쪽에 비해 뒤늦게 피어 더욱 화사한 철쭉꽃에 숨이 가빠지고 어깨까지 들썩인다. 둔덕 같은 윗예개봉(1,000m)을 지나면서 산세는 한층 순해진다.
▲ 소나무 숲과 신록이 멋진 하모니를 이룬 일자봉 남서릉.
반면 숲은 아직 봄을 맞지 못해 잿빛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오로지 겉모습이었다. 숲속 나무 밑은 파릇하게 풀이 자라고 군데군데 노란 피나물꽃과 보랏빛 현호색 꽃이 군락을 이루며 융단처럼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접신의 산은 천상화원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었다. 꽃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촬영하던
정정현 기자는 “다양성 면에서는 견줄 수 없겠지만 현호색과 피나물 군락의 규모는 결코 태백
금대봉에 뒤지지 않는 것 같다”며 감탄해했다.
▲ 일자봉 남서릉 상의 조망 명소인 베틀바위. (왼쪽) / 산길에서 만난 너구리 분비물. (오른쪽)
방송중계탑과 군시설물이 들어앉은
금대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온 권명달씨를 쿵쿵목이(해발 1,120m, 윗노루목이 2.8km·방아목 3.4km 푯말)에서 만나 허릿길을 따라 일자봉 정상에 도착한 것은 낮 12시 반경. 정상 동쪽 사면은 계단식 데크가 들어서 있었다. 2001년 조성된 해맞이 광장이다.
“정상은 군시설물이 올라앉아 있어 못 오르기 때문에 등산인들이 오를 수 있는 최정상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매년 새해 첫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요. 저기 길게 뻗은 능선이
낙동정맥이에요.
백암산 보이죠. 맑은 날이면 동해바다도 보이는데 부연 이내가 가리고 있는 게 아쉽군요.”
▲ 일월산의 야생화들. 왼쪽부터 각시붓꽃, 홀아비꽃대, 개별꽃, 꿩의 바람꽃, 피나물,
권명달씨는 “이러한 조망 덕분에 하늘의 기를 그대로 받을 수 있나 보다”며, “
일월산은 음기가 강해 여산(女山)이라고도 불리는데, 특히 그믐날 내림굿을 하면 점괘가 신통하리 만치 들어맞는다”는 무속인들의 주장을 전해주었다.
일월산은 천하만물을 발아래 두고, 높고 드넓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예서도 신록은 조금씩 조금씩 산정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자벌레가 옆구리를 타고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온몸이 간지러워진다. 신록은 산뿐 아니라 몸 속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이렇게 1,200m대 산정은 따뜻하다 못해 덥다 싶은데 오늘 아침 봉화에는 서리가 내렸다 하니 좁은 땅에서도 이렇게 다른가 보다.
일자봉에서 월자봉까지 능선 남사면 산길 대신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북사면 길을 따른다. 바윗덩이마다 짙푸른 이끼가 덮여 있고, 때묻지 않은 산길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준다. 바람이 취나물과 더덕 향을 끌어올리자 눈뿐 아니라 코, 입까지도 즐거워진다. 게다가 산길은 고택을 거니는 듯 고풍스러우니 더 이상 좋을 수 있으랴 싶다. 길가 한쪽 산목련들은 꽃 몽우리를 잔뜩 움츠린 채 신록이 조금 더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봄 산에는 이렇게 세 계절이 공존하고 있다. 산 밑은 이미 여름, 산중턱은 신록이 파고들고 있지만, 산마루는 아직 겨울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겨우살이
윗대티 갈림목(해발 1,085m·윗대티 2.7km, 월자봉 0.3km, 쿵쿵목이 1.3km 푯말)에 닿아 낭패를 겪는다. 권명달씨가 몰고 올라온 지프 바퀴에 바람이 빠져나가 예비 타이어를 갈아 끼우느라 1시간 가까이 허비한 것. 그런데도 바퀴를 갈아 끼우는 사이 산나물 뜯으러 안동에서 왔다는 촌로들과 막걸리를 몇 사발 나눈 황원선씨는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또다시 해가 뜰 텐데 뭔 걱정이냐”며 여유를 부리고, 월자봉을 지나면서 또다시 펼쳐지는 피나물과 현호색 꽃밭에 정정현 기자는 “이렇게 넓은 야생화 군락은 보기 힘들다”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하기야 만물이 생동하고 솔바람 불어대는 데다 노랑나비까지 하늘하늘 날아다니는데 뭐가 급하랴 싶기도 하다.
용화리 윗대티에서 정상 시설물로 이어지는 도로가 가로지르는 일월재(970m)에 도착하자 다시 마음이 급해진다. 서둘러 된비알을 올려치고 샘터 삼거리(1,115m)를 지나 구멍바위 아래에 도착한다. 뻥 뚫린 구멍 뒤로
일월산 주능선이 부드럽게 가로지르고 그 능선을 향해 신록이 꿈틀거리듯 올라오고 있었다.
산길은 참남배기(1,070m) 직전 사면을 가로지르다 장수바위(1,040m) 직전 다시 능선 위로 올라선다. 다래바위(940m)를 지나면서 등성이로 해가 급속히 서쪽으로 기울고 바람이 한층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와~, 정말 많이 걸었네요. 완전히 천화사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 돈 거네요.”
▲ 산아래 풍광뿐 아니라 천상의 풍광도 일품인 일자봉 해맞이광장. (왼쪽) / 일월산 지킴이로 맹활약하는 이동기씨와 권명달씨(오른쪽). (오른쪽)
이동주씨가 조망 명소라 극찬한 비조암에 올라서자 이름 그대로 새 등에 올라앉아 하늘 높이 날아오른 기분이다. 양효용씨는 오늘 하루 종일 걸은 능선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질녘에 접어들자 바람이 더욱 강해지고 차가워진다. 산을 하루종일 덮었던 기운을 앗아가려나 보다. 그런데도 신록은 전혀 개의치 않고 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 펑퍼짐한 능선에 얹혀 있는 기암인 비조암. 월자봉~추자봉 능선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이다.
숲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름드리 소나무에서 강한 생명력을 느꼈다면 신록에 물드는 낙엽송에서 생동감을 배우고, 이제 빼곡한 참나무숲에 들어서자 고즈넉한 적막감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이제 작업 들어가 볼까요.”
조용히 걷던 이동기씨가 참나무 숲을 벗어나자 산길에서 벗어나 가시나무로 다가선다. 막 새순이 달린 엄나무였다. 그리곤 가지 끝에 돋아난 순을 하나 하나 따낸다.
봄향기 듬뿍 담고 당리저수지로 하산
“4년 전 고향땅에 내려왔을 때에는 아내와 함께 산삼 한 뿌리 캐볼 욕심에 산삼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하고 군내 곳곳의 산을 훑었는데 끝내 산삼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그렇지만 봄철 엄나무 순은 여느 산나물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향과 맛이 좋답니다. 오늘 횡재한 거예요.”
▲ 참나무 숲길이 호젓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추자봉 능선.
고향땅에 돌아온 이후 등산에 취미를 붙였다는 이동기씨는 “산삼을 못 캤지만 그래도 이제는 더덕과 취나물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며, “산을 3년쯤 지나고 나서야 내가 살아온 젊은 날이 평탄한 능선길이 아니라 깎아지른 벼랑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말해주었다.
추자봉(860m)이 보이자 마지막 오르막이란 생각에 다리에 힘이 붙는다. 이제 이동기씨도 양효용씨도 모두 말을 잊었다. 하기야 산행을 시작한 지 벌써 9시간이 넘어가고 있으니 체력이 바닥날 때도 되었다.
▲ 월자봉 남서면에 위치한 황씨부인당. 시어머니의 학대에 못 이겨 집을 나왔다 숨을 거둔 한 여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지은 당집으로, 무속인들 사이에서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 / 신록의 게절을 맞아 새 순을 피워내는 엄나무. (오른쪽)
“물 좀 줘. 오늘 아무래도 못 가겠다.”
비조암에서 물 한 모금 마신 뒤 추자봉까지 내내 앞장선 황원선씨는 하루 산행에 몇 년은 나이를 더 먹은 듯 초췌한 표정으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있다가 일행이 다가서자 물부터 찾는다. 신선주 덕분에 긴 능선을 지루한 줄 모르고 걷기는 했으나, 약발이 떨어지니 목이 탈 수밖에.
해가 떨어지는 속도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내리막길을 치닫는다. 아니, 내 의지가 아니라 탄력 붙은 다리는 멈출래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산행 내내 빠른 속도를 유지하던 이동기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씨가 저수지변 도로로 내려선 것은 양효용씨와 기자가 내려선 지 10분쯤 지나서였다. 환한 웃음을 짓는 이동기씨의 배낭은 향긋한 봄 향기로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본신리 금강송 군락
경북 최고 오지 영양을 더욱 빛내는
수비면 본신리 금강송 군락지
‘나를 안아주세요’, ‘나의 키는 25m이고 가슴높이 지름은 56cm입니다’, ‘붉은 저의 속살 예쁘죠'.
▲ 금강소나무 숲속에 산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제5코스.
본신리 금강송 군락지에 들어서면 쉽게 만날 수 있는 ‘다정스런 글’이 적힌, 소나무 허리에 감긴 푯말이다. 영양군은 산야든 물가든 어디를 가나 멋스런 소나무를 쉽게 볼 수 있지만, 그중 수비면 본신리에 위치한 금강송 생태경영림은 남한땅에서 몇 안 되는 금강송 군락지다. 남부지방산림청 영덕국유림관리소는 본신리와 신원리 울연산(938.6m), 금장산(849m), 그리고
낙동정맥 검마산(1,017m) 일원 3,461ha를 금강송 보호지역으로 지정관리해오다 2007년 7월19일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옛날
금강산에 많이 자라 금강송이란 이름을 얻은 이 소나무의 특징은, 나무가 곧게 자라고 위쪽은 작은 삼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껍질은 얇고 붉은 색이며, 오래되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다. 또한 나무속은 붉은 색이거나 황색을 띠고 있으며, 나이테는 가지런하면서도 촘촘한 나무를 말한다. 이 금강송은 재질이 뛰어나 예로부터 궁궐을 지을 때나 또는 왕실의 장례용 관을 짜는 데 사용되었고, 왕실에서는 나무가 함부로 베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황장봉산(黃藏封山)’이라 지정해 놓았다.
▲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 군락지. 제5코스.
영양군 수비면에서 울진군 백암온천으로 이어지는 88번 국도변에 위치한 본신리 금강송 생태경영림에는 5가닥의 생태탐방코스를 닦아놓고 민물고기 서식을 위한 댐을 쌓아놓는가 하면 개울을 가로질러 현수교를 설치하고 개울가에 야영데크도 설치해놓아 탐방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 관리소 부근의 현수교. 개울에는 각종 민물고기가 살고 있다.
자연해설사를 맡고 있는 차일환씨는 그중 제4코스(1km, 1시간)와 제5코스(1.2km, 1시간30분)를 권하고 있다. 제4코스는 관리소 옆 공터에서 옥빛 계류를 가로지른 현수교를 건너 거대한 사암 위에 군락을 이룬 금강송을 감상하는 코스이며, 제5코스는 관리사에서 능선을 거슬러 오른 다음 사면을 가로지르다 다시 도로로 내려오는 코스로 아름드리 굵기에 20여m 높이로 쭉쭉 뻗어 오른 금강송이 다양한 식생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데다 조망 또한 뛰어나다.
▲ 산불에 탄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금강소나무. (왼쪽) / '나의 몸에는 산불로 인한 상처가있습니다'라며 산불조심을 알린다. (오른쪽)
관리소 부근계곡 주변에 조성된 야영테크의 사용료는 없으며 숲해설을 원할시에는 남부지방산림청 영덕국유림관리소(054-730-8140)에 문의하면 된다. 입장료 무료.
일월산 산행을 마치고 본신리 금강송 생태경영림을 찾아가려면 일월면 소재지와 윗대티 중간쯤에 위치한 문암리 삼거리에서 31번 국도에서 88번 국도로 갈아타야 한다. 이후 영양군 수비면소재지를 지나 울진쪽으로 향하다보면
검마산 자연휴양림 입구가 나오고, 여기서 3.5km 더 진행하면 금강송 생태경영림 관리소와 관리사가 도로 옆으로 보인다. 동해안에서 접근할 경우 7번 국도 상 울진군 평해면소재지에서 88번 국도를 타고 백암온천과 구주령(일명 구시령, 구실령)을 넘도록 한다.
방아목~일자봉~추자봉 산행은 8시간 이상 소요
문화·유적지·자연 답사여행 겸한 산행지로 적격영양
일월산은 경북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품 또한 넓어 영양군 북쪽 일월면과 청기면에 걸쳐 산자락을 뻗고 있다. 전형적인 장산인 만큼 산세가 부드럽고 따라서 산길 또한 유순한 편이다. 영양군은
일월산이 남한 최고의 청정지역임을 자랑하고자 매년 5월 중순 ‘웰빙 영양
일월산 한마당’ 타이틀의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는 5월16일부터 3일간 열렸다.
▲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에 위치한 조지훈 생가. 문학관도 같이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산길은 윗대티 기점 원점회귀산행으로 일월면 용화리 윗대티에서 능선길을 따라 일자봉에 오른 다음 월자봉을 거쳐 능선과 계곡길을 따라 다시 윗대티로 내려선다. 산길 들머리에 선녀탕 당집이 있는 아랫대티에서 골짜기를 따라 일자봉에 오른 다음 월자봉을 거쳐 윗대티로 하산하기도 한다. 약 4시간30분 소요.
취재팀이 답사한 찰당골 당리저수지 기점 방아목~일자봉~월자봉~비조암~추자봉~찰당골 코스는
일월산의 전모를 샅샅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능선종주 코스이기는 하지만 당일 코스로는 긴 편이다.
현재 공사 중인 당리저수지 댐을 가로질러 천화사계곡으로 향하다보면 비포장도로가 왼쪽으로 꺾이는 지점을 100m쯤 앞두고 오른쪽에 산길 입구가 나타난다. 파란 플라스틱 판에 ‘등산로↑’라고 표시돼 있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 퉁퉁목이까지 길을 헤맬 염려는 거의 없다. 퉁퉁목이에서 왼쪽은 월자봉으로, 오른쪽은 일자봉으로 향하며, 일자봉에서 산길은 세 가닥으로 나뉜다. 퉁퉁목이를 거쳐 월자봉으로 가는 남사면 길은 전형적인 숲길이며, 북사면 길은 호젓하면서도 조망이 좋은 편이다. 또한 북동릉을 따르면 윗대티나 선녀탕으로 내려선다.
▲ 버려진 제련소를 자연친화적으로 탈바꿈시킨 일월산자생공원. 아랫대티 부근에 있다.
월자봉 직전 윗대티 갈림목(해발 1,085m, 윗대티 2.7km·월자봉 0.3km, 쿵쿵목이 1.3km)에서 황씨부인당 집으로 가려면 임도를 따라 일월재 방향으로 100m쯤 내려서도록 한다. 일월재에서 추자봉까지는 제법 능선이 길고 굴곡이 심하지 않지만 이미 4시간 가까이 산행하고 난 뒤라 체력이 부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황씨부인당에서 식수를 충분히 준비하고 나서도록 한다.
일월재 이후 크게 길을 헤맬 만한 지점은 없지만 812.3m봉에서 능선이 두 가닥으로 나뉘므로 오른쪽 능선으로 접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추자봉 내리막길은 낙엽이 덮여 있을 경우 미끄러질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당리저수지 기점 방아목~일자봉~추자봉 코스는 8시간 이상 걸린다. 따라서 폭염이 시작되는 6월에 산행할 경우 식수와 간식을 충분히 챙기도록 한다. 산행 도중 일행 중 체력이 떨어진 사람이 있다면 황씨부인당에서 천화사계곡으로 빠지도록 한다. 추자봉까지 종주하는 코스에 비해 2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경북 최고 오지로 꼽히는 영양에는 뜻밖으로 볼거리가 많은 고을이다.
일월산 자락을 비롯해 부드러운 산야에서는 이름난 문인이 여럿 태어났다.
일월산 남쪽 일월면 주곡리 주실 마을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의 생가와 문학과 시비공원 외에 옥천종택 등을 훑어볼 수 있는 문화유적지이며, 남쪽 석보면소재지의 두들 마을은 현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문열씨의 문학연구소와 석계고택, 전통한옥체험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주실 마을에서는 지난해부터 매년 5월 중순 이틀간 지훈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입암면 신구리 선바위 관광지(054-682-6271)는 영양 고추의 모든 것을 살펴볼 수 있는 영양고추홍보전시관 외에 소나무·소사나무·모과나무 등의 고목을 잘 가꿔놓은 수석분재야생화전시관, 그리고 우리 고유 민물고기를 동굴 안 수족관에 전시해놓은 동굴형 민물고기전시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영양은 반딧불이의 고장이라 자랑할 만큼 청정한 곳이다. 영양군은 수비면 수하계곡 일원을 반딧불이 생태체험마을 특구로 지정, 수비초교 수하분교 일원에 청소년수련원과 생태학교, 생태공원, 천문대 등을 갖춰놓고 도시인들에게 대자연의 신비를 엿볼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용 문의 영양군청 자연생태공원 관리사업소(054-680-6045, 6057).
이밖에 영양 곳곳에 있는 영양향교(일월면), 서석지(청기면), 남자현지사생가(석보면), 봉감 모전5층석탑(입암면) 등은 역사탐방을 위해 좋은 유적지들이다.
일월산 산행은 기왕 나선 김에 이들 자연·문화·역사 유적지를 엮는다면 더욱 기억에 남는 등산여행이 될 것이다.
서울→영양 동서울터미널(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1일 5회(08:20, 10:40, 13:40, 16:20, 16:00) 출발. 4시간30분 소요, 요금 21,500원. 문의 ARS 1688-5979, 홈페이지
http://www.ti21.co.kr.
대구→영양 북부시외버스터미널(053-357-1851~3)에서 1일 26회(06:16~21:25) 운행. 3시간20분 소요, 요금 12,500원.
안동→영양 안동시외버스터미널(ARS 054-857-8298/8296)에서 1일 31회(06:05~23:0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6,200원.
영양→당리(찰당골 입구) 1일 8회(06:40, 10:00, 13:30, 14:10, 15:30, 16:50, 18:00, 19:10) 출발. 약 30분 소요, 요금 2,000원. 택시 25,000원.
영양→본신리(금강송 자연생태보존림) 1일 2회(10:30, 16:16) 출발. 약 40분 소요, 요금 3,350원. 택시 25,000원.
영양→용화(선녀탕·윗대티) 1일 4회(06:40, 10:00, 13:30, 18:10) 출발. 약 30분 소요, 요금 3,050원. 택시 23,000원.
*영양 시외버스정류장 054-683-2213, 개인택시 682-0011. 영양읍내에서
일월산 월자봉 방송중계소까지 약 35,000원.
승용차로 접근할 경우,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서는 중앙고속도로 풍기·영주 나들목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봉화 법전을 거쳐 노루재 직전 삼거리까지 간 다음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진입한다. 부산·경남과 대구 지역에서는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5번 국도와 34번 국도를 따라 진보까지 진입한 다음 31번 국도를 타고 영양을 향해 북진한다.
검마산 자연휴양림(054-682-9009)은 6평형(주중·비수기 30,000원/성수기·주말 50,000원)에서 16평형(60,000원/98,000원)에 까지 다양한 크기의 방 16개를 갖춘 산림문화휴양관 2동을 운영하고 있다. 휴양관 이용이 어렵다면 2개소로 나뉘어 있는 야영장의 데크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야영데크 이용료 2,000원, 오토캠프장 8,000원. 예약은 인터넷(
http://www.huyang.go.kr)이나 전화를 통해 받는다.
영양군 수비면 수하청소년수련원도 권할 만한 숙박지다. 청소년 단체 숙박을 위한 수련원 외에 펜션 7평형(45,000원/50,000원), 9평형(55,000원/60,000원), 11평형(65,000원/70,000원), 14평형(80,000원/90,000원), 18평형(10만원/12만원) 등의 숙박시설이 갖춰 있다. 생태학교에서 반딧불이와 야생식물을 살펴볼 수 있으며,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할 기회도 가질 수 있다. 홈페이지(
http://www.yygnp.com)나 전화(054-683-8987~8)를 통해 예약을 받는다.
찰당골 당리저수지 위쪽에 위치한
일월산식당(054-682-7211)은 염소불고기 전문식당으로, 살코기로는 불고기를 내놓고, 뼈와 내장은 푹 삶아 국물을 내놓는다. 1마리(약 10인분)당 30만원. 10평형과 15평형의 방이 있으며, 민박할 경우 아침 밥값 7만원을 더 받는다.
영양은 특히 한우고기를 자랑하는 고을이다. 청정지역에서 길러낸 쇠고기는 육질이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한 맛을 낸다는 게 업소 주인들의 주장이다. 계절에 따라 밑반찬을 달리하는데 봄철에는 산나물이 나와 한층 맛을 더하며, 업소에 따라 등심·갈빗살을 200g당 18,000~21,000원씩 받는다. 읍내의 실비식당(683-2463, 682-2463)이 30년 전통을 자랑하는 쇠고기 전문 식당이다.
읍내의 고은한정식집은 경기도식 한정식에 경북 오지의 산채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이다. 경기도 연천에서 영양으로 시집와 음식점을 차린 언니를 이어받아 6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옥분씨는 봄철에는 새벽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뜯어낸 산나물과 한밤중 랜턴 불빛 아래 찾아낸 골뱅이와 취나물, 산달래, 배채를 섞은 골뱅이무침(별도 20,000원) 등을 내놓는다. 인공조미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이 음식점의 방침이다. 유유자적(1인분 20,000원), 안빈낙도(1인분 30,000원), 무릉도원(1인분 50,000원), 고은수라(한상 70,000원), 대비마마수라(한상 10만원). 영양 토속주인 초화주(병당 20,000원)는 뒤끝이 깨끗한 곡주로 마셔볼 만하다. 전화 683-5005.
ㆍ기고자 : 글
한필석 차장대우 사진
정정현 부장ㆍ발행일 : 월간산 2008년 06월 (4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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