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21]‘전라도 탯말’을 아시나요?
‘탯말’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배운 말을 뜻하는 조어造語입니다. 최근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귀한 책을 책꽂이에서 발견했습니다. 이럴 때 기분이 째집니다. 『전라도 우리 탯말』(한새암 등 4명 공저, 336쪽, 2006년 소금나무 펴냄)이 그것입니다. 원래도 감탄을 잘 하는 성격이지만, 이 책의 <책머리에>(3쪽)와 <이 책을 읽기 전에>(10쪽) <책 뒤에>(9쪽)라는 3개의 글(모두 23쪽)을 먼저 읽고 탄복을 했습니다. ‘탯말두레’ 모임의 회원 다섯 분(한새암, 최병두, 조희범, 박원석, 문틈)이 썼더군요.
“시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쪼깨 보시오. 아, 물 밑바닥만 뒤집히것소? 내가 발바닥을 붙이고 섰는 이 땅뎅이도 언지 홀까닥 뒤집힐랑가 모르는 판인디, 누가 아요? 인자 거꾸로 서서 대그빡으로 땅을 짚고 손바닥으로 걸어댕기는 날이 올랑가?”
<책머리에> 첫 문장은 대뜸 이렇게 전라도의 여실한 탯말로 시작됩니다. 이 글은 눈으로 읽으면 절대 안됩니다. 전라도의 피가 숨쉬는 사람이라면 소리내어 읽어야 합니다. 말의 높낮이, 억양 등이 고대로 팍팍 귀에 꽂히지 않는가요? 그래서 탯말입니다. 유식한 말로 우리 언어와 국어의 ‘제대혈臍帶血’이지요. 듣기만 해도 어머니와 고향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함을 느꼈는지요? 이런 말들이 표준말에 치이고 사투리라는 이름으로 홀대를 받아온 것에 대해, 글쓴이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저도 물론 ‘한표’입니다.
탯말 글을 쓰려고 왕년의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80년대 신입기자 시절, 한 후배가 나에게 정색을 하고 묻더군요. “선배는 대학도 서울에서 다녔으면서 사투리를 왜 안고쳤어요?” “왜? 나는 단 한번도 내 말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안해봤는데. 영어를 하는데도 전라도사투리 냄새가 난다고 교수가 놀려도” “저는 서울말(표준말) 익히느라 무지 애썼어요” “그려잉, 근디 꼭 그리야 혔는가?” 전북사투리는 전남사투리에 비하며 충청도가 가까운 지라 그래도 조금 나은 편이지만, 나의 억양이 좀 심한 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왜 고향말을 버리고, 그것을 쪽팔리게 생각하며 서울말을 써야 한단 말인가?
어쨌거나, 탯말은 어머니와 고향이 가르쳐준 ‘영혼의 말’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듣거나 말해도 정겹고 편안하지요. 물론 작은 나라에도 표준말은 필요할 것입니다. 공식적인 자리나 학회 발표, 신문방송 매체, 정부기관 등에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사무적인 말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태胎가 들어있는 탯말도 중요하고 그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누군가를 보고 “워따메, 이거이 누구랑가” “니 누꼬? 이 문디이야”하고 말했다칩시다. 그 말 한 마디에 그 사람이 태어난 고향마을과 나무와 시냇물과 그 지역공동체의 정서가 함께 환기되지 않던가요. 그 말을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대체하면 숫제 재미가 없지요. 얼마 전에 <사투리의 매력과 마력> 이라는 졸문에서도 썼듯이, 박목월 시인과 조정 시인의 시를 읽어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Ⅱ-100]사투리의 매력魅力과 사투리의 마력魔力 - Daum 카페
1장 <문학작품 속의 우리 탯말>은 김영랑의 시집과 조정래의 <태백산맥> 차범석의 <옥단어> 최명희의 <혼불> 작품 속에 녹아든 수많은 탯말의 아름다움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2장의 <탯말 예화>는 제목만 읽어도 재밌습니다. 몇 가지만 무작위로 써봅니. 꼭 소리내어 읽으시기 바랍니다.
▲ 얼릉 지 짝을 찾어사 쓸 껀디 장개를 못간단 말이요
▲ 으쩌자고 나한트로 뽀짝뽀짝 다가와 싼다요
▲ 사내 자석이 붕알 댈레 갖고 머시 그라고 요학스럽당가
▲ 읍씨 산다고 사람을 이라고 시피볼 수가 없네잉
▲ 으째 말에 뻬가 들어있능 것같아서 듣기에 쪼깐 거시기허네
▲ 먼 지랄 났다고 존 밥 묵고 뻘 소리를 하긋능가
▲ 으차거나 우제(유제) 간에 의좋게 살아야 헌단 마시
▲ 오매, 나 시방 기분 한 분 허벌나게 좋아분지네
▲ 너 이 애비를 암 끗도 모르는 바보로 아냐 시방?
▲ 아따 참말로 일이 메얍께 꾀여부렀네잉
▲ 돈 쪼깨 번다고 데데해서는 절대로 못쓴다잉
▲ 참말로 똥꾸녁으로 호박씨 까고 자빠졌네잉
▲ 혼차 먼 산 보고 우두개미 앉어 눈물바람 허까봐 안 와 봤소
▲ 수술한 물팍(무릅)이 꼬불쳐지들 안히서 일을 못허것단 마리여
▲ 내가 아숩드라도 (사람으로서) 헐 도리는 허고 살아야써
▲ 느그 에미 애비 삐따구 녹은 땅을 쉽게 폴어라고 허지 마라
3장은 <탯말 독해>입니다. 엔간한 전라도 촌놈이 아니곤 번역이 필요한 탯말이 많은 까닭입니다. 해학諧謔의 관용구(idom) 몇 개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다. 탯말을 사랑합시다. 사투리나 방언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지역의 표준어이기 때문입니다.
▲ 쌧똥빠진 소리를 씨부렁대면 칵 잉깔라븐다(푼수같은 소리를 해대면 그냥 뭉개버린다)
▲ 멀끄댕이를 끄서블란개 으디서 인자사 꺼덕거리고 오냐(머리채를 나꿔채려니까 어디서 이제야 끄덕이고 오냐)
▲ 뚜룩치는 것은 좋지 않은개 핑 도로 가따 놔라(훔치는 것은 좋지 않으니 빨리 도로 갖다 놔라)
▲ 방구 꾼 넘이 댑대 나에게 댐때기를 씨우네(방귀꾼 놈이 되레 나한테 덤터기를 씌우네)
▲ 엥간히 삐댓으먼 몽니 고만 부리고 인자 얼릉 인나그라(어지간히 버텼으면 고집 그만 부리고 이제 얼른 일어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