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의 시간
『그제서야』
역대하 33:11-13. 280장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니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남 유다 열네 번째 왕은 히스기야 아들 므낫세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정반대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역대하 33장 3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상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에게 경배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여호와 전에 제단들을 쌓고 여호와의 전 두 마당(안뜰/제사장의 뜰, 밖 뜰/백성의 뜰)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몰렉에게 자기 아들들을 제물로 바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짓을 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므낫세가 이처럼 어긋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히스기야가 죽고 므낫세가 왕위에 오른 나이가 십이 세였습니다. 즉 앗수르를 물리친 뒤 죽을병에서 하나님께서 건져 주신 히스기야는 더 하나님을 향해 진실하고 성실하지 않은 채 자신의 마음을 높이는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바빌론 사절단에게 성전과 왕궁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자랑하였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므낫세입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성전의 문을 다시 열고 유월절을 지키는 모습, 앗시리아 산헤립이 쳐들어 왔을 때 기도로 물리치는 장면, 죽을병에 걸린 아버지 히스기야가 겸손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므낫세가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하나님께 진실하게 성실하게 충성하는 모습이 아니라 교만하게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왕위에 오른 므낫세가 말씀 중심, 예배 중심, 성전 중심이었던 아버지와 반대되는 행보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므낫세를 가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은 역대하 33장 11절 말씀을 보면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앗수르 왕 아슈르바니팔은 형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바빌론에 와 있었고 이곳에서 형에게 동조한 주변 속국의 왕들을 심문하고 처벌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발견되는 벽화나 부조를 보면 반역을 일으킨 왕이나 포로들이 입술이나 코에 갈고리를 꿰고 줄로 묶여 끌려가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므낫세 역시 코나 입술이 꿰인 채 바빌론으로 끌려가 심문당한 후 옥에 갇혔을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그가 환란을 당하여’라고 나와 있고 13절에서도 ‘그제서야’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앗수리에의해 입술과 코가 꿰어 사슬에 묶여 끌려가 심문을 당하고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 후 그는 마음이 겸비해졌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호와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므낫세와 같은 신세가 되고 난 후에야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손 두발 들고 주님을 바라볼 면목이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때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13절 말씀을 보면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므낫세와 같이 하나님을 실망하게 해도, 그처럼 세상에서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아도,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고 간구를 들으시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남문의 성도 여러분!
저는 저와 여러분이 지금도 우리를 애타게 찾고 기다리시는 주님께 겸손히 돌아와 아버지 품에 안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적용 :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애타고 부르고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마무리기도
환란을 당하나 겸손히 주님께 기도할 때 새로운 시작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