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이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자동차가 나온다. 차량이 알아서 신호등·차선·횡단보도 등을 인식해 정지하고, 주행 중에는 차량의 흐름을 고려해 속도를 자동으로 조절한다.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편리성에다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교통사고까지 예방할 수 있다.
김정하 국민대 자동차융합대학장은 “국내에서도 완성차 업체를 비롯해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자율주행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성과가 미미하다”며 “대부분의 핵심 부품을 수입할 정도로 글로벌 기업과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
로봇공학을 전공한 김 학장은 무인 자동차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4년 자율주행차 기술 연구에 뛰어들었다. 2000년 미국 플로리다대에서 무인 차량 기술 프로그램을 익혔고, 2008년 무인차량연구센터를 열었다. 1990년 말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무인 자동차를 연구하는 곳은 완성차 업체를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성차 업체와 자동차 부품 업체를 비롯해 10여개 대학 등 30여 연구소에서 이와 관련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무인 자율주행차 개발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정하 학장을 서울 정릉동에 있는 국민대 무인자율로봇연구센터에서 만나 최근 IT 업체들까지 뛰어들고 있는 전장 사업에 대해 물었다.
-자율주행차에는 어떤 부품이 들어가나.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도로 위의 다른 자동차와 보행자·교통신호 등을 감지할 수 있는 라이더와 수십 개의 레이더·카메라·센서 그리고 이를 통해 들어오는 엄청난 데이터를 처리하고 차를 제어할 수 있는 고성능 컴퓨터 등이 장착된다. 최근엔 딥러닝 등 인공지능 기술도 탑재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요소 기술들이 모두 포함된다. 자율주행차를 4차 산업혁명의 결정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0(제로)’라고 봐도 무방하다. 카메라 정도만 국내에서 만들었다. 자동차 주변 360도 단층 촬영에 필요한 라이더와 GPS 장비 등 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상용화조차 되지 않았다. 몇몇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하지만 외산에 비해 현저히 질이 떨어지는 수준이다.”
김 학장이 연구센터에 있는 연구용 무인 자동차로 안내했다. 현대자동차의 그랜저를 기반으로 개조한 무인 자동차에는 각종 장치가 달려 있었다. 무인 상태에서 최대 시속 60㎞ 정도를 낼 수 있는 이 차량은 3억원이 넘는다. 가장 비싼 장비는 차량 지붕에 달려 있는 라이더로 1억4000만원에 달한다. 차량용 라이더 1위 업체인 벨로다인 제품이다. 그외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달하는 각종 장비가 전부 외국 제품이다.
-핵심 부품의 국내외 기술 격차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 전장 기술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3년 정도 뒤떨어졌다고 본다. 우리가 취약한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잘한다는 하드웨어 경쟁력도 한참 뒤처진다. 특히 자율주행차를 통합 제어하는 시스템인 운영체계(OS)는 구글이나 애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상당히 따라잡았고, 계속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간 연합은 불가피하다. IT 기업은 3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를 만들기가 쉽지 않고, 완성차 업체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빅데이터를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학장은 우리나라 전장 기술이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봤다. 세계 최고 수준인 IT 산업과 세계 5위권(생산 규모)인 자동차 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전장 기업인 하만을 인수하고, LG전자가 3~4년 전부터 전장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점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그는 “삼성전자는 미국 애플이나 중국 바이두 등 경쟁 업체에 비해 전장 사업 진출이 늦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번 인수를 통해 10년 정도의 시간을 단축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등 IT 업체가 자동차 생산에도 나설 것으로 보나. “구글, 인텔뿐만 아니라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자동차 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전장이 고부가가치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IT 기업들이 완성차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자동차는 아무나 만들지 못한다. 지금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삼성은 자동차 사업에서 이미 크게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것이다.”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전기차 분야는 IT 업체에 기회인가. “내연기관이나 동력전달 장치 등이 필요 없는 전기차가 IT 기업에 좋은 기회인 것은 맞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궁극적으로는 전기차 생산에 뛰어들 것이다. LG그룹만 해도 지금이라도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국내에서 기존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들이 합종연횡을 하지 않을까.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간 연합은 불가피하다. IT 기업은 3만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를 만들기가 쉽지 않고, 완성차 업체는 자율주행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나 빅데이터를 개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IT 업체들은 편리성을 우선시한다. 완성차 업체와 IT 기업이 자동차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얘기다.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한 주행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데 반해 IT 기업은 편안하게 운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서로 연합전선을 펴는 것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두 회사는 해외에서 파트너를 찾고 있다. 연합전선을 먼저 구축한 기업이 미래 자동차 시장을 주도할 것이다.”
-너도 나도 자율주행 기술과 전장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풀어야 할 과제는 무언가. “인프라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국내 기술력이 갖는 한계를 인프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다. 시장도 커지고, 기술도 빨리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가 통신을 통해 교통신호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고, 도로 구간마다 센서를 설치해 자율주행차의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 자율주행 차량 전용도로나 전용차로를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부족한 전문 인력 양성도 시급하다.”
제도 개선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김 학장은 자율주행차를 이용하다 사고 난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부터 자동차 보험제도까지 일일이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