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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죽음을 따를 것입니까?
https://youtu.be/E79puOkg0HQ?si=YXulf9lsO2Aplp5Q
어떠한 죽음을 따를 것입니까?
요한복음21:18~25
부 르 심:요한복음4:23~24
교 독 문:77번, 요한복음3장
찬 송:64(13),91(91),303(403),492(544)
기 도:1)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게 하소서
2)성숙한 하나님의 축복이 되게 하소서
3)어떠한 죽음이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4)내 영혼은 아버지께 맡기는 죽음이 되게 하옵소서
5)예수한국, 복음통일, 주사파척결, 총선200석
사람은 무엇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습니다.
“누구를 따라가느냐”는 운명을 결정하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두 제자의 모습입니다.
둘 다 예수님을 따르는 중요한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 “요한복음21장18절부터 25절까지에는
“베드로의 어떤한 죽음을 따르는 것”과
“내가 올 때까지 요한을 머물게 하고자 하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은 “어떠한 죽음을 따를 것입니까”라는
말씀 제목으로 은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베드로의 젊어서 다니는 것과 늙어서 데려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한복음21:18)”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마다 인생에 젊음과 늙음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미숙함과 늙음의 성숙함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이 있고 또한 늙음의 장점과 단점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 대한 젊음과 늙음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과거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나기전과 나서 자라는 것과
늙음에 대한모습을 유일하게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나에 대하여 들을 때에 말씀하시는 것은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젊었을 때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젊음에서 많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나서 사도로 사역하고나서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의 순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복음21:19)”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초보에서 젖을 먹는 은혜로 시작하지만
늙음의 성숙함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본으로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자라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2.야곱의 젊은 미숙함과 늙음의 성숙함
1> 야곱이 젊음에서 갈망하는 미숙함
창세기에는 야곱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일생을 보면 이 세상에 성도의 모습과 같습니다.
야곱의 젊어서 스스로 띠 띠우는 것과 늙어서는 팔을 벌리는
성숙한 영성을 살펴보도록 하십시다.
창세기에서 야곱에 대하여 태어나기 전부터 기록하고
나이 늙어 생을 다하여 147년을 마감하는 성숙한 영성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삭은 나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하였습니다.
결혼 생활 20년이 다 되어가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였더니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습니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창세기25:2)”
리브가가 잉태하였는데 쌍둥이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리브가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 여호와께 물으니 여호와께서 리브가의 태 속에서
이미 두 국민의 영적 싸움이 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창세기25:23)”
해산의 기한이 차서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습니다.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습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 고로 들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 고로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에서는 오늘날로 말하면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익숙하여 세상 놀이 문화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부모님과 경건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낸다는 것은
당연히 이삭과 리브가의 신앙을 따라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기질이라는게 있습니다.
에서는 외향적이고 야곱의 내향적입니다.
야곱은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부모를 본받는 신앙심은 있으나 젊음으로 미숙함을 드러냈습니다.
야곱은 자기의 기질로 형의 장자 명분을 교묘하게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형 에서는 들사람의 기질이라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사랑하면 예배를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시간을 귀하게 여기는 연습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7~8)”
야곱은 천국에 대한 욕심은 있으나 방법은 미숙한 것이었습니다.
리브가의 말을 듣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가로채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도 빼앗기고 축복권도 빼앗기자
마음에서 칼을 가는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 아비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을 인하여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창세기27:41)”
야곱은 부모의 집을 떠나 도망가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젊어서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는 것은 야곱의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있어 지키며 돌아오게 하고
다 이루기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28:15)”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초보에서 젊음은 실수도 많고 고난도 따르지만
하나님이 함께 있어 지키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아니하심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곱의 늙음에 가지는 영성 - 야곱의 세 가지 축복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세기47:9)”
야곱이 가나안 땅에 있다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는 애굽에 내려갔을 때
그의 나이 130세였습니다.
요셉이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의 축복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번째 야곱의 축복은 젊어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장자권을 빼앗고 아버지 이삭에게 속이면서
받는 축복은 형과 원수되는 것이었습니다.
형에게 미움을 받아 부모집을 떠나야 했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두번째 야곱의 축복은 여호와께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젊어서 스스로 띠 띠우고 다니는 것은 꾀가 많은 야곱으로 자아가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하는 기도를 하여
끝내는 여호와께 축복을 받는 것은 이름을 바꾸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축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창세기32:28~29)”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나홀로 강청기도를 드림으로
여호와께 축복을 받는 것은 야곱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강청기도로 응답받았으니 하나님이 다스린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의 의지로 사람에게 축복이 아닌
성숙한 영성의 축복은 하나님께 축복받는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번째 야곱의 축복은 늙어서 야곱이 축복을 하는 영성을 가진 성숙함에 있습니다.
바로왕은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입니다.
그런데 일개의 가나안 땅의 나이 늙은 목자가 와서 왕을 축복한다는 것은
야곱의 영적권위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이 늙어도 갖추어야 할 것은 영적권위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로왕이 야곱에게 나이를 물으니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자기의 연세가 얼마 못되는 것은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한다는 겸손을 보였습니다.
130년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었는데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나면서부터 130살의 나이에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나그네 길의 세월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라 표현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1:11)”
나그네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떠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잠시 있다가 떠나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잠시 머물러 있다 떠나는 휴거가 되어 영
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의 거룩한성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어떠한 죽음을 따를 것입니까?
1> 흙에 속한 자의 형상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
“이 말씀을 하심은 베도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한복음21:19)”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죽음에는 헛된 죽음이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서 죽는 것은 정한 것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9:27)“
지금까지 창조이후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므두셀라입니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장수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아무리 오래살았어도 그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종말이 온다”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의미는 몸이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구조는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습니다.
영혼은 불멸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사람의 호흡이 멈추어
더 이상 숨을 쉴수 없는 상태입니다.
사람의 몸이 죽으면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갑니다.
영혼을 영체라 부릅니다. 영체가 빠져나가면 믿는 자의 영혼은
위로 올라가 낙원이라는 천국에 있게 되고 믿지 않은 자의 영혼은
땅아래로 떨어지는 음부라는 지옥에 있게 됩니다.
그러면 몸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몸은 흙에서 왔음으로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땅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닮았으면
하늘의 신령한 몸을 입는 부활이 반드시 일어납니다.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이 있으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도
있음을 믿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린도전서15:44)”
육의 몸은 썩을 몸입니다. 썩을 몸이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몸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부활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부활된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는 변화로
하늘로 올라가는 휴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린도전서15:48~49)”
육체를 위하여 사는 자는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어떠한 죽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죽음 이후 심판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 영혼의 심판도 받고 예수님의 재림 이후에는
백보좌 심판에서 믿지 않은 자들도 몸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있습니다.
믿지 않은 자에게는 심판의 부활이 있습니다.
믿는 자로 선한 일을 행하는 생명의 부활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아오리라(요한복음5:29)”
2> 하늘문이 열리는 스데반의 죽음
믿는 자는 어떠한 죽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죽는 것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기도 하고 서계시기도 합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으로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모습은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 뜻을 따랐던 십자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산증거를 하였습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사도행전7:56)”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스데반의 살아있는 증거를 듣기 싫어하여
큰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스데반을 내치고 돌로 쳤습니다. 스스로 띠 띠우고 있는
청년 사울의 발 앞에 두는 것이었습니다.
무리가 스데반을 돌로 쳤으나
스데반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짖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행7:39)”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6시간 동안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음으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직전의 마지막 십자가상의 7언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입니다.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누가복음23:47)”
이 위대한 사건을 목격한 산증인 백부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23:47)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죽음을 따를 것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심은 베드로에게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르키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하시는 죽음으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에게 영혼을 맡기세요.
예수님 재림하실 때 생명의 부활되어
신령한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휴거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로마서14:8)”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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