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총재 “스리랑카 위기, 다른 亞개도국도 겪을 우려”
라오스-파키스탄-몰디브 등 거론
국가부도 사태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등 정치·경제적 대혼란에 빠진 스리랑카의 위기가 라오스, 파키스탄 등 다른 아시아 개발도상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7일 BBC에 “스리랑카는 (경제 위기가 주변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 사인이 될 수 있다”며 “많은 개도국들이 최근 4개월 연속으로 자본 유출을 겪고 있다. 부채가 많고 현 위기를 정책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적은 나라들이 추가로 큰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BBC는 스리랑카 경제위기를 촉발한 원인으로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통화가치 절하 △높은 부채 △외환보유액 감소 등 5가지를 제시했다. 이런 문제가 라오스, 파키스탄, 몰디브, 방글라데시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라오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가가 폭등하면서 연쇄 작용으로 식량 비용이 급상승했다. 국가부채가 2021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88%에 달한다. 무디스는 지난달 라오스에 대한 국가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로 강등시켰다. 파키스탄은 정부의 유가보조금이 종료된 5월 말 이후 유가가 90% 상승했다. 외환보유액도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몰디브는 팬데믹으로 관광산업 수입이 줄면서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웃돌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물가상승률이 7.42%로 8년 만에 최고치에 달했다.
이들 국가의 부채 중 상당량은 일대일로 사업 등으로 중국 정부에 진 빚이다. 라오스는 국가부채의 절반을, 파키스탄은 25% 이상을 중국에서 빌렸다.
김민 기자
국가 부도 스리랑카
스리랑카가 5월 19일 국가 부도를 선언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동아일보 특파원에 따르면 기름이 없어 주요 도시 시내에선 차량을 보기 힘들고, 마트 일부 매대는 텅텅 비어 있다고 한다. 시민들은 “고타바야는 도둑놈” “중국이 우리 것을 도둑질해 갔다”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몰디브를 거쳐 싱가포르로 달아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73)의 ‘이메일 사임계’는 수리됐고 20일 의회 간접선거로 새 대통령이 선출될 예정이나 나라 전체가 혼돈 그 자체다.
▷2019년부터 집권해온 고타바야는 싱할라족의 유력 집안인 라자팍사 가문 출신이다. 먼저 권력의 핵심에 진입한 이는 형 마힌다(77)였다.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동생 고타바야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마힌다는 3선에 실패했지만 4년 뒤 고타바야가 최고 권좌에 오르며 라자팍사 가문은 ‘족벌정치’의 정점을 찍는다. 그는 형 마힌다를 총리, 동생 바실(71)을 재무장관, 아들 나말(36)을 체육장관에 앉혔다. 9남매의 맏형인 차말(80)은 농업관개장관이 됐다.
▷마힌다와 고타바야 형제는 2009년 북부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 반군과의 30년 내전을 끝냈다. 이후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함반토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에 착수했지만 경제성이 없는 허황된 개발사업이었다. 함반토타항 개발엔 11억 달러 이상이 들었는데 한 해 항구에 들어온 화물선이 34척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은 미국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텅 빈 공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반중(反中) 감정도 격해지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를 해상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교두보로 삼은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고금리, 불리한 계약 조건 등으로 빚만 눈덩이처럼 불었다는 게 현지인들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스리랑카 외채에서 중국 비중은 10% 정도”라고 반박한다. 다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10억 달러를 긴급 요청했는데도 중국은 발을 빼고 있어 스리랑카의 배신감은 커지고 있다.
▷‘국가 부도의 날’은 순식간에 온 듯하지만 실은 예고된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스리랑카 국민은 족벌정치를 20년가량 지지했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집권당은 대선 후보로 현 총리를 지명했다. “또 다른 라자팍사일 뿐”이란 시민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가 국가 리더십을 바로 세워 ‘신성한 섬나라’의 위상과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외환위기를 경험해 봐서인지 남 일 같지 않다.
정용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