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 배야! 진짜 사람 죽인다 죽여
/ 모네타
평범한 주부인 해순이는 가정생활에는
불만이 전혀 코딱지만큼도 없다
언제나 파출부처럼 부엌이며
화장실이며 집안 청소까지 도맡아
해주는 실실이 남편
공부하라는 말 안 해도 지네들이 척척
알아서 공부해주는 아들 둘
초등학교 시절부터 개나소나 돼지 빼놓고
모두들 다니는 학원 한번 안 보내도
언제나 공부는 상위권
불평불만이 전혀 없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불만없이 집떼기로 뒷바라지로
한 세상 살아오면서
언제나 집안구조상 상전으로 군림,
진짜 아쉬울 것이 화장실 휴지만큼
없었다는 것은 알 사람은 다 안다
누가 아느냐고
그야 물어보나마나 어리석은 질문
아파트 이장님 동장님 그리고 부녀회원들
같은 에어로빅에 다니는 보경이 경희
등등 이름을 댈려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런데 고민 아닌 고민이 생기기
시작한 건 며칠 전 부터이다
아니 고것들이 언제 알았는지
모든 식구들이 출근, 학교로 다 보내버리고
거실 소파에서 따끈하게
낮잠을 잘려고 하던 참 소포가 온 것이다
초인종 소리에 왕짜증이 났지만
소포를 받아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만일 해순이가 낮잠자는 시간에
다른 누가 왔다면면 그야말로 묙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쫓겨가는 것은 불문가지였을 것이다
해순이 낮잠병은 조금 특이하다
공주병에 걸려서 텅 빈 집안 거실에
큰 안방거울을 가져다 놓고
그동안 사모은 속옷부터 겉옷까지
모두 꺼내놓고 입어보면 모델처럼
아주 우아하게 패션쇼를 하며
실성한 여자처럼 혼자 실실거리기도 하고
그것도 싫증나면
과일 접시를 들고 쇼파에 누워 한손으로는
과일을 공주처럼 집어 입으로
가물치 고기잡듯 우아하게 넣어주고
다른 한 손으로는 양 콧구멍의 코딱지를
피가 나도록 후벼판다
그것도 성이 안 차면
훌라포를 돌린다 집안을 뛰어다닌다
괴성을 질러대며 지랄발광을 해댄다
소포를 뜯어보니 해남초등학교 3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며 오라는 초청장이다
그리고 초딩 6학년시절 찍은 같은 학급아이들
흑백 단체사진이 한 장 있다
그 사진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서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버린다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뭐 딱이 내놓고 자랑할만한 일도 없는데
그동안 무얼하고 살았지‘
거울을 보니 귀밑에는 어느새 몰랐던
흰머리가 보이고 눈가에는 잔주름살이
서너개 있다
정란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춘희도 태숙이도 잘 지내고 있겠지
모두 서울에 산다고 하던데
사진을 보니 더욱 더 옛날이 그리워진다
여기 해남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서울 사는 단짝 친구들을 허구헌날 만나볼텐데
자기 모습을 보니 꽃다운 미모는
사라지고 중년의 뚱뚱한 모습만 보인다
그때 해순이를 좋아해서 늘 쫓아다니며
과자와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등하교길 가방도 늘 들어주던 진석이도
무척이나 보고싶다
아! 옛날이여!
그립던 돌아가지 못할 시간들이여!
추억에 젓다 초대장을 다시 보자
30주면 행사장은 서울 메리어트호텔이고
행사일은 6월 5일이다
6월6일이 공휴일이니 그렇게 잡은 것같다
‘가만 있자
오늘이 5월21일이니 보름밖에 안 남았네
아니 이년들이 진작 연락해주지
이렇게 급하게 연락주는 이유는 뭐야
6학년 때 반장을 뭘로 보고‘
화가났지만 어쨌든 결정된 일
갑자기 몸과 마음이 부산해진다
무슨 옷을 입지
무슨 신발을 신고 가지
그래도 명품 옷 명품 신발을 신어야 하는데
핸드백은 무얼로 하지
적어도 프라다 정도는 돼야지
손가락을 한참 꼽아보며 계산을 해보니
5년전부터 붓고 있는 적금을 깨지 않으면
힘들 것 같다
그 돈 용도는 다른 데 있는데
우선 급한 불을 꺼야한다
발딱 오뚜기처럼 일어난 해순이는 서울에
사는 동생 연순이에게 전화를 걸어
옷이며 신발이며 핸드백이며 사달라고
부탁을 하며 텔레뱅킹으로 돈을 보낸다
해순이와 연순이는 몸매 사이즈가와
취향이 거의 똑같아 어릴적부터 같이
옷을 사이좋게 나눠 입고 다녔다
그건 됐고 다음은 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흙빛이 된다
그동안 통통하게 쌓여져 겹겹이 층을
이룬 뱃살 옆꾸리살 뚱뚱한 허벅지
어디를 보아도 영락없는 인심 좋고
뻔뻔한 중년의 아줌마이다
허리살을 잡아 뒤로 젖히고 뱃살을 집어
넣어봐도 여전히 거울에는 중급 정도의
돼지같은 중년의 아줌마가 웃고있다
환장할 일이다
분명 모임에 가면 다른 여자애들은
날씬한 몸매에 미시같은 옷차림으로 올텐데
화도 나고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참을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다
얼마전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무려
한달만에 20kg을 감량한 보경이가 생각났다
‘맞아 궁하면 통하는 길이 있어
보경이한테 물어봐야지‘
해순이는 참지 못하는 지랄같은 성격
“보경아 너 다이어트할 때 무슨 약
먹었지 좀 가르쳐 주어“
평소보다 아주 상냥하게 물어 메모를 한다
얼굴은 대충 씻고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보경이가 가르쳐준 한의원에 가서
거금 100만원을 주고 다이어트약을 구입한다
약복용은 한의원에서 들었지만
원체 머리가 새머리라 돋보기를 쓰고
다시 복용안내서를 탐독한다
‘아침 저녁으로 식후 2시간 후에 한 봉씩
다려 먹으십시오. 과용하지 마십시오
일주일이 지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 저승 갔던 엄마가 살아온 것같이
너무 반갑고 구세주같다
이제부터 하루도 빠지지말고 즐창 먹어야지
30주년 행사일이 보름 남았으니 충분할거야
해순이는 날씬한 몸매
명품 옷과 프라다 핸드백 그리고 구두를 신고
행사장을 공주처럼 걷는다
모든 남자친구들 여자친구들이
침 흘리고 감탄과 환호의 대상으로
자기를 처다 보고있다 너무 흐믓해진다
그러자 엉덩이가 삐죽거리고 몸이 좌우로
야시시시 비틀어지며 전율이 온다
열심 약을 먹으면서 하루에도
몇 십번씩 몸무게를 달아 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5일이 지났는데 벌써 5kg이나 줄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열흘이 지나자 10kg이나 빠진다
신이 나서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어떤 일을 해도 힘들거나 지겹지가 않다
남편 용돈도 평소보다 두배로 후하게 주고
아이들에게도 엄청 잘해
모든 식구들이 의아해하며 맨날 이랬으면 한다
서울에 사는 동생 연순이가 옷이며 신발이며
핸드백이며 다 사놓았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이젠 D-DAY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아직도 몸은
여전히 뚱뚱해서 미시같은 기분이 안난다
어찌하지 걱정하다
독한 결심을 하게된다
복용약을 두배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살도 두배로 빠질 것이다
복용기간이 짧으니 몸이 버텨줄거야
해순이는 하루에 4번씩 약을 다려 먹는다
그러자 약간의 복통이 있지만 살은 쑥쑥
눈에 보이게 빠지고 날씬해진다
너무 좋아서 그대로 강행
적당히 그만 두었으면 좋으련만
욕심만 배안 가득한지라
히히덕거리며 마시고 또 마신다
행사 당일 하루 전 아침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아침을 준비할려던 해순이는
탈진 탈수 증세를 일으키며
‘픽’하고 침대에서 쓸어져 버린다
약을 두배로 먹는 기간동안 설사병에
걸려 하루에도 수 십번
화장실을 끼고 살았던 해순이다
먹은 음식은 설사로 다 빠져나가고
먹은 물은 다 토하고
가끔은 머리위에서 별이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살이 빠진다는 즐거움에
꾹꾹 참고 강행하였던 것이다
해골같이 변해 일어나지도 못하고 침대에
쓸어지자 놀란 남편과 아이들이
119에 전화해서 엠브런스를 급히 부른다
아내가 어찌될까봐 남편얼굴은 흙빛이
아이들 얼굴은 눈물이 가득하다
엠브런스가 ‘왱왱’거리며 아파트내에
들어오자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고
해순이는 들것에 실려 구급차에 실린다
남편은 걱정말라며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구급차에 타며 회사에 전화를 하다
오늘은 아내가 아파서 결근하겠다며
머리를 조아리며 사정을 구한다
해순이는 쇠약해져서 눈을 감고 쭉 뻗어있다
5월의 훈훈한 바람이 불어와 덮은 담요를
들추자 송장같은 해순이만 보인다
옷도 신발도 명품 핸드백도
우아한 공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걱정하는 남편
우는 아이들만 5월을 슬프게 한다
엠브런스가 ‘왱왱’ 거리며 마을을 나서자
한 아주머니 왈
“아니 지 주제를 알아야지
뚱뚱이가 갑자기 날씬이 되나
형편대로 살아야지
무슨 개다리처럼 얼키설키 엮여 고생하남
다이어트 한다고 할 때 알아봤다니까
지가 무슨 공주라고
밥순이면 밥순이처럼 살아야지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벱이야
마을 주민회의할 때는 똑똑한 것 같았는데
정말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속은
모르 벱이네“
“맞어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나 뭐
쯧쯧 아이들과 남편만 불쌍하지 뭐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그러는지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아파트 아주머니 둘이서 주고 받으면서
집으로 가고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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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시간들 되세요
즐겁습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이시길요
ㅋㅋㅋㅋ 모네타님.재미있는글..고맙습니다..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즐감하셔서 기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되시길요
고운글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