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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민주주의는 가장 덜 나쁜 정치체제일까?
능력과 품성을 갖춘 좋은 정치 지도자를 뽑는 법!
“대의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국민들이 대표자를 선출함으로써 자신들을 표현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의미한다. (…) 대의제는 전문가들을 위한 제도로 점차 바뀌어갔고, 이들은 자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 제도는 자체 역설을 생성하게 됐다. 국민들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을 정말 그대로 구현하는 화신이 돼주기를 갈망하는 신화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는 선거 때마다 재현되는, 점차 저질이 돼가는 한 편의 연극과 같다.” -자크 랑시에르([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터뷰 중에서)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과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나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 등을 통해, 요즘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대의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민주주의 원리를 밑바닥부터 뒤집어보는 이 책을 독자들에게 권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개선의 노력을 계속하면서도 선거민주주의 자체의 맹점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세계 정치이론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교 좌파’ 대니얼 A. 벨의 문제작!
이 책은 캐나다 출신의 정치철학자인 대니얼 A. 벨(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대니얼 벨과 동명이인이다)이 2015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출판부에서 출간해 당시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다. 흔히 우리는 정치의 세계를 ‘좋은’ 민주주의 사회와 ‘나쁜’ 권위주의 사회로 구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의 정치 모델은 그중 어느 한쪽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중국에서는 ‘현능주의(賢能主義, meritocracy)’라고 표현할 만한 하나의 정치체제가 형성되어 왔는데, 이 책은 이 특이한 정치체제의 이념과 실제를 담고 있다. 즉 품성[賢]과 능력[能]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발을 선거에만 맡기지 않는 현능주의 정치체제를 다룬 책이다(‘meritocracy’는 흔히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로 번역되지만, 거기에는 ‘품성’의 뜻이 빠져 있기에 저자는 ‘현능주의’라는 용어로 번역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시진핑 주석이 중국 최고의 권좌에 오르는 수십 년의 도정을 보자. 지방 말단 현(縣)급의 초라한 자리에서 시작해 시(市)급, 성(省)급, 부(部)급을 거쳐 중앙위원회, 정치국, 그리고 마침내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이르는 승진의 모든 단계에서, 그 정치적 지도력을 입증할 엄격한 심사를 겪어온 과정이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정치 발전을 평가하는 현능주의 정치이념의 기준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중국은 어떻게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가? 현능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데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대니얼 A. 벨의 이야기는 이런 질문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 그는 ‘1인1표’ 최고지도자 선출 방식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선거민주주의의 치명적인 결함들을 보완하는 데 중국식 현능주의 이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그리고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장점과 단점을 검토하고 민주주의와 현능주의를 결합하는 여러 방법을 살펴본 다음, 중국에서 빚어져온 민주적 현능주의 체제가 도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바람직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바닥은 민주주의, 꼭대기는 현능주의, 그리고 그 사이는 실험 공간으로 이뤄지는 이 체제를 그는 ‘차이나 모델’이라 부르며 다른 나라에서도 참고할 만한 점을 지적한다. 중국에서 긴 역사를 가졌을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 발전의 지표가 될 가능성을 가진 현능주의 정치이념을 부각시킨 이 책은 참으로 적절한 시기에 나타났다. 많은 관심과 토론을 불러일으킬 것이 기대된다.
또한 이 책은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닌 과거의 모든 정치제도를 ‘봉건적’이니 ‘전제적’이니 깔보던 근대인의 오만을 반성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다. 과거의 정치제도(이를테면 과거제) 중에는 지금의 선거민주주의 제도보다 “백성을 위한”이라는 정치원리에 더 충실하고 더 효과적인 것도 있지 않았을까? 중국의 1당 체제에 양당제 혹은 다당제 민주정치보다 나은 점들도 있지 않을까?
중국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화자(話者)가 중국인이 아니라서 우리가 읽기에 편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이어서 민주주의에 관한 여러 가지 ‘상식’에 찌들어 있는 독자들을 배려할 줄 알기 때문이다. 문명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 김기협(《해방일기(1~10)》의 저자)의 유려한 번역도 이 책의 의미를 오롯이 전달하는 데 한몫한다. 또한 미국(또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중국(과 싱가포르)의 현능주의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비교 분석하면서, 공자와 플라톤부터 주희, 존 스튜어트 밀을 거쳐 쑨원과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치사상의 맥락까지 함께 아우르고 있어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생각하도록 이끈다.
과연 민주주의는 가장 덜 나쁜 정치체제일까?
제1장에서는 선거민주주의의 네 가지 중요한 위험을 제시하고, 현능주의에 의거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적?현실적 방안을 내놓는다.
선거민주주의의 첫 번째 위험은 ‘다수의 전횡’이다. 비이성적이고 이기적인 다수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소수파를 억압하고 나쁜 정책을 채택하는 쪽으로 권력을 휘두를 위험이다. 이론적으로는 유권자의 능력이나 자질을 심사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엄격하고 치밀한 인재 육성과 관료 선발?승진 시스템을 갖춘 싱가포르의 현능주의 정치체제가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위험은 ‘소수의 전횡’이다. 경제력을 장악한 소수 집단이 지나친 힘으로 정치 과정에 개입해서 공공선(公共善)에 부합하는 변화를 가로막거나 자기네 이익에 맞는 정책을 관철할 위험이다. 이론적으로는 유력 계층을 배제한 시민단체의 개입으로 대응할 문제인데, 현실적으로는 정치 지도자들이 다양한 계층과 접촉을 갖도록(농촌 지역 파견 등) 수련 과정을 거치게 하는 중국의 정치제도를 효과적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
세 번째 위험은 ‘투표 집단의 전횡’이다. 미래 세대나 외국인처럼 어떤 정책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집단과 투표권을 가진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후자의 입장이 언제나 관철된다는 문제다. 미래 세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부기구의 설치가 이론적 해결책인데, 미래 세대에게 해로운 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총통에게 두는 싱가포르 제도가 좋은 참고가 된다.
끝으로 ‘경쟁적 개인주의자의 전횡’이 있다. 선거민주주의에는 사회 갈등을 완화하기보다 격화시키고 갈등의 조화로운 해소책을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 점에서는 경쟁적 정당정치보다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합의제를 채택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중국의 정치 모델에 갈등 해소를 위한 실제적 장점이 있다.
좋은 정치 지도자란?
제2장에서는 리더십에 관한 폭넓은 담론을 비롯해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제시된 ‘정치 지도자의 특성’, 그리고 중국 전통시대의 이상적인 관료(=정치인)상 등을 두루 살핀 후, 현대의 현능주의 정치치제에서 필요한 ‘좋은 정치 지도자’의 특성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런 특성을 가진 정치 지도자들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적 방법을 제안하고, 현재 중국에서 작동되고 있는 현능주의 제도를 평가하면서 그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여기서는 서구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 지도자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특성들은 논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두꺼운 안면 피부라든지, 임기응변의 재간이라든지, 경쟁자와의 차이점을 과장하는 표현력이라든지, 선거기간 내내 똑같은 파당적 내용의 연설을 열정적으로 되풀이하는 끈기라든지, 선거에 이기자마자 포용적 화법으로 바꿔 정책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유연성 등등 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좋은 정치 지도자란, ①지적 능력과 ②사회적 기술과 ③도덕적 품성에서 두루 강점을 가진 정치가들이다. 하지만 이 세 부문 특성의 중요성에는 차이가 있다. 상당 수준의 도덕성은 모든 정치 지도자에게 불가결한 것이다. 인민에게 복무한다는 정신이 투철하지 못한 정치가는 뛰어난 지적 능력과 사회적 기술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능력과 기술을 얼마든지 나쁜 용도에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사회적 기술이다. 다른 지도자들과 인민들을 설득할 능력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무게가 덜한 것이 지적 능력이다. 정보를 처리하고 토론을 제대로 하는 데는 최소한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지만, 정책 입안이나 창의적 사고는 보좌관과 전문가들에게 맡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의 판별에는 시험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다(정치가와 관료가 분리돼 있는 서양에서는 정치적 인재를 찾아내기 위해 시험을 친다는 것이 신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을 비롯해 과거제를 실시했던 동아시아 정치문화에서는 뿌리가 깊다). 그리고 ‘사회적 기술’의 측정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지만, 행정 실적을 응시 자격에 넣는다거나, 대체로 사회적 기술이 더 나은 경향이 있다고 밝혀진 나이와 성별을 고려해 승진시킨다거나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품성’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동료평가 방법이 유용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현행 제도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지적 능력을 판별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심사 방법이 필요하고, 정책 작성에 필요한 교섭 역량을 늘리기 위해 여성 지도자의 역할이 늘어나야 하며, 봉사정신이 투철한 관리들의 발탁을 위해 상호평가 제도를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다.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단점은 없는가?
제3장에서는 현능주의 정치체제의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한다. 이론상으로는 현능주의 정치체제가 아주 멋진 생각처럼 보이지만, 아무리 멋진 생각도 현실 세계에서는 엉뚱한 재앙으로 귀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중국의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을 보라). 선거민주주의는 훌륭한 지도자의 선발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유권자들이 잘못 뽑았다고 깨달을 때는 도로 끌어내릴 수가 있다. 그러니 현능주의 정치체제에서도 통치자가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
현능주의에 흔히 따르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점은 ①우월한 능력을 근거로 선발된 통치자가 권력을 남용하는 경향(부패의 문제), ②정치적 위계질서가 고착되어 사회 유동성을 떨어뜨릴 위험(경직성 문제), ③권력구조 외부의 인민들에게 체제의 정당성을 납득시키는 어려움(정당성의 문제)이다.
부패 문제는 현재 중국의 정치치제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독립적 감찰기구의 운용, 민간과 공공 부문 간의 상호의존(유착) 관계 축소, 공직자 급여 수준 향상, 도덕(유교) 교육 강화 등의 대책이 있다. 그리고 체제 경직성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오만에 빠지지 않고 인민과 겸손한 소통의 자세를 취하는 데서부터, 집권당을 같은 출신 배경이 아닌 다양한 계층과 집단에 개방하고, 언론의 자유를 확대하며, 새로운 의미의 능력을 기준으로 새로운 종류의 지도자들이 나타날 길을 열어놓는 노력 등의 대책을 검토한다.
다만 체제 정당성 문제는 민주화 개혁을 통해 인민에게 정치적 참여의 기회를 늘려주는 것 외에 대책이 없다. 어떻게든 인민의 명시적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제는 현능주의와 민주주의 원리 사이의 조화를 이루는 데로 집약된다. 선거를 통한 최고지도자 선출이나 경쟁적 다당제 없이도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와 현능주의의 결합, 민주적 현능주의는 가능한가?
제4장에서는 ‘민주적 현능주의’의 몇 가지 형태를 놓고 그 가능성과 장단점을 살펴본다. 우수한 지도자를 뽑는 현능주의 원리와, 인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 원리를 결합하는 여러 모델을 검토하는 것이다.
첫째 모델은 두 원리를 유권자 차원에서 결합하는 것이다. 즉 ‘능력과 덕성을 가진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해서는 ‘현명하고 도덕적인’ 유권자에게 더 많은 투표권을 주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리 철학적으로 타당성이 있다 해도 현실적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존 스튜어트 밀이나 싱가포르의 초대 수상 리콴유가 비슷한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밀은 유권자의 교육수준에 따라 보너스 투표권을 주자고 했고, 리콴유는 ‘젊은이들은 당장의 만족을 위해 변덕스러운 방식으로 투표에 임할 수 있고, 단기적 이득만을 생각하는 노인들은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을 늘려주는 무상의료제 같은 정책을 지지하기 쉽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자녀의 앞날까지 고려하는 중년층에게 한 표씩을 더 주자고 했다.)
두 번째 모델은 중앙 정치기구 차원에서의 결합인데, 예컨대 투표로 선출되는 민주주의 의회와 시험으로 선발하는 현능주의 의회를 함께 두는 등의 방식이다. 그러나 영국 상원이 겪어온 것처럼, 현능주의 원리로 구성되는 정치기구는 투표로 선출된 다른 기구가 존재하는 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질 수 없다. 설령 중국처럼 현능주의의 인기가 높은 정치 환경에서도 그런 구조를 세우고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세 번째 모델은 상층부(중앙정부)의 현능주의와 하층부(지방정부)의 민주주의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지금 중국의 정치 현실과 가장 유사하며 정치철학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타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장래 언젠가 중국 지도자들이 정치체제의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민주적 현능주의 체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필요를 느끼게 될 수 있으리라고 지적한다.
차이나 모델의 이념과 현실, 그리고 세계적 확장 가능성
결론에서는 바닥은 민주주의, 꼭대기는 현능주의, 그리고 그 사이는 폭넓고 체계적인 실험 공간으로 이뤄지는 ‘차이나 모델’의 세 개 층위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그려 보이고, 마오쩌둥 이후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정치개혁이 이런 원리에 따라 펼쳐져온 경위를 설명한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차이나 모델의 세계적 확장 가능성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내놓는다. 역사와 문화의 배경이 다른 사회에서 쉽게 이 모델이 채택되지는 못하겠지만(현재로서는 이 모델을 적용시킬 조건을 비슷하게 갖춘 나라는 베트남 정도다), 모델의 구성요소들이 부분적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
뜨거운 논쟁들 : “정치에 대한 제한 없는 상상력을 허하라!”
보론은 이 책(원서)의 보급판 서문으로 실린 글로서, 초판 출간 이후 벌어진 뜨거운 논쟁(수많은 비평과 토론)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다. 가장 많이 쏟아진 비판은 이 책을 민주주의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에게 우리가 틀렸다는 사실을 설득하려는” 책이라거나, “민주주의 자체를 깎아내리려는 (…) 고약한 책이다. 벨은 중국 체제의 신봉자로서 내 편이 잘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내 적이 망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그런 사람이다”와 같은 비판들, 그리고 중국의 정치 현실을 옹호하는 “중국 정부의 변호인”이라는 비판도 있다.
반대 방향에서 쏟아지는 비판도 있다. 이 책은 ‘픽션’이며 “중국의 진정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즉 중국의 현실을 잘 모르고 쓴 유토피아 홍보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또한 지난 30년간 중국이 수억 인구를 빈곤으로부터 건져내는 과정에서의 통치자들의 공로를 회의적으로 보는 비판자들도 있다. 정부가 아니라 인민의 노고를 통해 이뤄진 일 아니냐는 것이다. 또 정치에 있어서 ‘우수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비평도 있다(“벨의 현능주의 이론에서 가장 큰 문제는, 좋은 결정을 내릴 우수한 지도자를 확보한다는 생각이 ‘결정 중에 옳은 결정이 있고 틀린 결정이 있다’는 관념을 발판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우수한 특성을 가진 지도자를 뽑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이 다 말이 안 되는 짓일 것이다. 그 외에도 최근 중국의 경제 난관으로 인해 차이나 모델은 끝났다는 중국 비관론을 내세우는 비판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비판들이(심지어 원색적인 비난까지) 쏟아지는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자유민주주의만이 절대적 정당성을 지닌 정치 지도자 선출 방법이라는 맹목적 믿음(‘역사의 종말’)이 하나다. 즉 1인1표만이 정치 지도자 선출을 위한 도덕적으로 가장 정당한 방법이며, 다른 방법을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 죄악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 위에서는 중국 자체의 문화와 역사에서 다른 정치 이념을 추출해볼 필요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 또 하나는 중국의 정치체제에서는 어떤 좋은 것도 나올 수가 없다는 독단이다. 구소련이나 북한과 본질적으로 같은 사악한 공산 정권이므로 빨리 무너질수록 좋다는 믿음이다(이런 관점에 대해서는 따로 응대할 말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그보다 열린 마음을 가진 독자를 위해 최근 중국의 정치적 변화를 염두에 두면서 몇 가지 중요한 비판점에 응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 책의 주된 논지는 그리 도발적인 것이 아니다. 중국의 정치이론과 제도에 진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 그리고 중국의 정치 발전(또는 퇴보)을 논하는 기준에 중국의 정치문화와 역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관점 정도를 담은 책이다. 미국의 정치제도 개혁을 유교적 가치관에 따라 논한다면 우스운 일 아닌가. 마찬가지로 중국의 정치체제 개혁을 미국의 건국이념이나 칸트의 자유주의를 기준으로 논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표는 분명하다. 선거민주주의를 현능주의 정치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1인1표제가 좋은 정책을 펼칠 지도자를 뽑는 데 가장 덜 나쁜 방법이라고 하는 믿음을 흔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1천하 2체제의 평화로운 공존과 상호 진화를 꿈꾼다.
“민주주의 체제의 장기적 전망을 나는 걱정스럽게 내다본다. 문화, 역사, 조건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를 채용할 수 있다고 하는 정치적 다원주의가 중국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거의 인정받지 못한다. (…) 민주주의 국가들은 자만심에 빠져 장래를 대비하는 자세를 잘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정치 변화의 필요가 생겨나더라도 내부에서만 해결책을 찾는 감정적이고 편협한 반응만 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만약 중국식 현능주의 정치제도가 개선과 개혁을 계속하는 동안 민주주의 사회들이 끝끝내 자만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외부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결국 인민의 마음을 잃고 현능주의가 전 세계 정치체제의 지배적 원리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지도자를 선택할 자기네 권리를 제한하는 데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능주의 정치체제가 인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데 민주주의 체제보다 나은 실적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혹시 지금부터 백 년 후라면, 정치 지도자를 시험으로 뽑은 다음 하위직에서의 실적에 따라 고위직으로 승진시키는 원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사람들은 도대체 사회를 이끌 지도자를 1인1표의 원칙에 따라 뽑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옛사람들이 어떻게 하게 되었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본문 385~3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