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식량만 먹어 질린 병사 ‘고향의 맛’에 활력 되찾아 “전쟁은 위대한 장군과 훌륭한 음식을 만든다.” 뛰어난 장군이 전쟁터에서 탄생한다는 말은 백번 수긍이 간다. 하지만, 전쟁 때문에 훌륭한 요리가 만들어진다는 말은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누가, 어떤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물론 전쟁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맛있는 요리는 많다. 하지만, 전쟁이 훌륭한 음식을 만든다는 말은 보다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전쟁터의 병사들은 음식에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부족한 재료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작은 음식 하나가 장병들의 사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뛰어난 지휘관이 사소한 음식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다. 그러니까 전쟁터지만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는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전쟁터의 미군 병사들에게 소포가 배달됐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부인이 보낸 것으로 소포 상자 속에는 요리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병사에게 뜬금없이 웬 요리책일까 싶지만 사실 일반적인 조리법이 적힌 책이 아니었다. 야전 전투식량을 맛있게 조리해 먹는 방법을 모아놓은 책으로 제목부터 ‘C-레이션 요리책’이다. 전쟁이 위대한 장군과 훌륭한 음식을 만든다는 구절은 바로 이 요리책 첫머리에 실린 글이다. 다양한 요리법이 나오지만, 예를 들어 야전용 생일 케이크 만드는 법도 적혀 있다. 전투식량으로 지급되는 파운드 케이크와 초콜릿, 그리고 우유를 이용해 초콜릿 생일 케이크를 만드는 법이다. 작전 중 생일을 맞이한 병사가 동료와 함께 신선한 케이크를 먹으며 생일 축하를 받는다면 사기가 오를 수밖에 없다. 요리책이 들어 있는 소포 상자 속에도 별도로 방수포장 된 핫 소스도 함께 들어 있었다. 피자나 스파게티, 치킨을 먹을 때 함께 뿌려 먹는 타바스코라는 상표의 핫 소스다. 요리책이 들어 있는 소포는 고향 집에서 보냈지만 사실 요리책을 만든 회사는 타바스코를 제조하는 매킬레니라는 회사였기 때문이다. 직접 배포해도 될 것을 굳이 참전 군인의 가정을 통해 소포로 보낸 이유는 고향의 맛을 느껴보라는 의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매킬레니 회사가 펼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사 제품을 판매하려는 상술이라고 몰아붙일 일만도 아니었다. C-레이션 요리책을 보급하자는 아이디어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악명 높은 과달카날 전투에 참가했던 월터 S. 매킬레니 예비역 해병 준장의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맛있게 먹는 음식 하나가 장병의 사기를 올려준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것에서 나온 마케팅 전략이었고 매킬레니 준장이 바로 베트남전 당시 타바스코 핫 소스를 만드는 매킬레니의 회장이었다. 실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요리책을 이용해 전투식량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었고 덕분에 사기도 올랐다는 편지가 당시 언론에 자주 보인다. 베트남전에 C-레이션 요리책이 전달된 지 약 25년이 지난 1991년, 이번에는 중동 주둔 미군 총사령관이었던 노만 슈워츠코프 장군이 매킬레니 회사로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이라크와의 전쟁인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가한 장병들이 타바스코 핫 소스 덕분에 활력을 찾았다는 내용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야전 전투식량만을 먹어 질린 병사들이 매운 고추 소스 덕분에 입맛을 되찾고 그로 인해 사기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편지였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미군의 각종 전투식량에는 대부분 핫 소스가 포함돼 있는데, 별것 아닌 매운 고추 소스가 정말 사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 모양이다. 전쟁은 훌륭한 음식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면 고추로 만든 핫 소스인 타바스코 소스 자체도 전쟁이 낳은 결과물이다. 은행원이었던 매킬레니 회사의 창업자 에드먼드 매킬레니가 멕시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으로부터 매운 고추 종자를 얻어 부인의 고향인 루이지애나 주의 에이버리 섬에 심었다. 에이버리는 진짜 섬이 아니라 거대한 소금산이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에드먼드 매킬레니는 가족을 이끌고 에이버리 섬으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그곳은 소금광산이었기 때문에 소금을 확보하기 위해 남군과 북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전쟁 한가운데에 있었던 만큼 광산과 농장은 철저히 파괴됐고 남은 것은 오직 지독하게 매운 타바스코 고추뿐이었다. 에드먼드 매킬레니는 할 수 없이 남은 고추를 상품으로 만들어 팔기로 하고, 고추와 식초, 그리고 에이버리 섬에서 나오는 소금을 섞어 핫 소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스를 부인이 다 쓰고 버린 향수병에 담아 팔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타바스코 소스다. “최전선의 장병에게 음식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고 하는데 매운 핫 소스 한 병이 병사의 사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멀게는 19세기 영국군의 수단 전투인 카르툼 전투에서부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 전쟁, 그리고 걸프전쟁까지 작고 매운 소스 한 병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