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화장의 기술 ●지은이_문화영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0. 9. 25
●전체페이지_160쪽 ●ISBN 979-11-86111-84-0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0,000원
건강한 자아와 올바른 사회를 위한 화장술
문화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문화영 시인의 시편들은 자아와 세계 사이에서 삶의 건강성과 긍정성을 지향한다. 도시적인 생활에 길들여진 삶을 따르면서도 그 질서와 유혹에 쉽게 편입되지 않으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따라서 그의 시편들은 건강한 자아 회복을 위한 시적 울림이 크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구석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삶의 윤리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우울함을 커버하는 데는 물광 파운데이션이 좋아
립스틱은 빨개도 되고 누드 빛이어도 돼
립스틱과 같은 색깔의 볼 터치를 해주면 자신감이 생겼다는 거야
듬성거리는 눈썹은 꼼꼼하게 메꿔줘야 해
모난 성격을 다듬듯 공을 들여야 하지
네가 나를 닮아 이마가 납작하잖아
하이라이트로 음영을 줘봐
이마 위로 꿈이 흐르는 거 같지 않니
넌 아직은 모르지만
눈뿐만이 아니라 입꼬리도 처지더라
이건 화장으로도 포장이 안 돼
미소로 늘어진 용기를 당기는 거지
주름진 생각도 팽팽해지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완성은 지우는 것이거든
길어진 마스카라는 솜과 면봉으로 두 번 닦아야 해
과잉된 것은 꼭 잔여물이 남으니까
종일 높여놓은 콧대는 리무버로 지우고
저녁이면 자기의 민낯을 바라봐야 하지 그래야
아침이면 극진하게 화장을 하거든
네 외할머니도 오랜 시간을 들여 화장하고 관에 들어가셨지
볼그족족한 볼 터치에 미소를 머금었던 거 기억나지?
―「화장의 기술」 전문
시인에게 화장은 기존의 것을 화려하게 포장하는 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화장은 우리가 앓고 있는 이 시대의 질병 공황장애 우울증 집단이기주의 무기력증 등을 덮는 포장이다. 작품 속의 화자는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거듭한다. 하지만 그것은 외피를 감싸기 위한, 혹은 감추기 위한 치장이 아니다. 새로운 현실에 대한 적응과 고유한 주체 즉 올바른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난동을 피울 생각은 아니었다 배가 고팠을 뿐이다 땅속에 있는 고구마를 꺼내 먹자 사람들은 발톱을 세워 울타리를 쳤다 찌리릿 전기 울타리는 산중턱까지 밀고 올라오며 비자나무를 쓰러뜨렸다 숲을 가져갔으면 땅속의 것은 나눠줘야지 목보다 긴 코로 땅속을 헤집었다 고구마밭을 코 하나로 뒤집어 버렸다 얌전히 먹었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까? 숲속에서는 식사예절이 없다 허기를 채우자 놀고 싶어진다 여우재를 넘어가 물놀이를 해야지 헤엄을 치다가 숭어를 잡아야지 쫀득한 기억에 마음이 급해진다 굵은 다리로 재빠르게 달린다 총알도 달린다 다행히 뻣뻣이 서 있는 귀를 뚫고 지나갔다 호랑이와 맞장 떴다는 할머니가 생각난다 자라나는 송곳니를 칼처럼 갈아놓은 건 잘한 일이다 조금만 더 자라주면 총길이만 한 엄니를 갖게 되겠지 사냥개를 피해 산으로 도망치다 강물을 보았다 머리와 몸이 가깝다는 건 나쁜 눈을 가졌다는 것 물속이라 착각하고 고속도로로 뛰어내렸다 하필 노란 중앙선을 밟았다 방향감을 잃을 땐 겁이 난다 하지만 흥분을 하게 되면 물불을 안 가리는 성격 사냥꾼을 향해 달린다 총알도 중앙선을 넘는다 피차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숲속에서부터였다 탕. 탕. 탕.
―「중앙선」 전문
자연을 상징하는 멧돼지는 생존 공간을 잃어버렸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잘못된 선으로 자연 동식물의 생존 공간은 황폐화되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중앙선은 서로 넘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선이다. 하지만 인간은 제 밥그릇의 극대화를 위해 중앙선을 제집인 양 넘나든다. 그것은 갈등과 싸움이라는 부정적 상황을 전한다. 세월호의 비극을 담은 「달팽이관」이나 광주 민중항쟁을 묘사한 「방풍림」 역시 건강한 사회적 기능이 작동하지 못할 때 생겨날 수 있는 비극의 현장을 잘 보여준다. 그것은 건강한 삶의 주체를 획득하고자 하는 문화영 시인의 고유한 시적 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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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부
제어장치·11
방풍림·12
벚나무·14
부부·16
지퍼·18
자전거·20
이런 봄날·22
시끄러운 마당·24
편도 1차선·26
세 사람·28
바람의 처세술·30
보랏빛 선글라스·32
유리 상자·34
1°·36
주파수·38
제2부
첫눈·41
모르는 일·42
중력이 미칠 때·44
화장의 기술·46
거기 서 있을 매화나무 한 그루·48
조화·50
속도의 미래·52
내 동생은 서퍼·54
원룸·56
터치 터치·58
IT·60
팔레트·63
달팽이관·64
입관·66
제3부
멸치·69
즐거운 독·70
중립기어·72
바이칼·74
커피 마시는 고양이·76
늘어진 오후의 놀이·78
시베리아 호랑이·80
중앙선·82
고비·84
다섯 걸음·85
원형탈모·86
헛배·88
흰 종이에 대한 사색·90
선화촌 가장·92
제4부
시선·97
등을 긁어주세요·98
DNA·100
공식 입장·102
썸 타는 중·105
두 마리 개·106
영화관 화장실에서·108
상자·110
한 장 남은 사전·112
원본·114
한동안·116
안과 밖·118
알프라졸람·120
바빠서 이만·122
유쾌한 저녁·124
해설│송기한·127
시인의 말·159
■ 시집 속의 시 한 편
배가 아프다며 학교도 안 가고
마루에 걸터앉아 맨발을 까닥거렸다
마당 깊숙이 들어온 햇빛에
바람은 먼발치서 혼자 망설이다 흩어졌다
발가락 사이로 고요가 빠져나가는 마당
고양이가 쥐를 물어다 놓았다 도망가는 사냥감을 앞발 사이에서 공처럼 굴렸다 입에 물고 마당을 돌았다 바닥에 내려놓고 뒷걸음쳐 지켜보기도 했다 물었다 놓기를 반복하다가 패대기를 쳤다 비칠대며 도망가는 상처투성이를 다시 앞발로 낚아채 톡톡 건드렸다 물고 흔들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물었다 뱉었다를 수십 번 축 늘어진 쥐를 바닥에 던져놓고 고양이는 제 몸의 털을 고른다 더러워진 발바닥을 핥다가 고개 돌려 사냥감을 확인하는데
없다
호기롭게 돌았던 마당을 마구잡이로 뛰어다녀도
땅바닥을 헤집다가 허공을 두리번거려도
없다
그때 바람은 구름 사이에서 죽은 체하고 있었다
―「바람의 처세술」 전문
■ 시인의 말
반나절의 땡볕이 더 필요했구나 생각한다.
덜 익은 감 맛은
뱉어 내버리고 싶은 현실 같다.
엄마는 달달한 걸 좋아하셨는데
그리움으로
단맛이 깊어지면 좋겠다.
대접하는 기분으로
방황하는 시를 쓰고 싶다.
2020년 가을
문화영
■ 표4(약평)
문화영 시인의 장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잊혀져가는 과거의 시간과 경험을 소환할 때 희한하게 시적인 상황이 형성된다는 것. 「벚나무」 「자전거」 「이런 봄날」 「시끄러운 마당」과 같은 시편들은 발설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간신히 발설하면서 적지 않은 감동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시인의 시선이 아주 구체적이고 세세한 삶을 향할 때 생성되는 것인데 이러한 서사는 이 시집의 근간으로서 손색이 없다. 또 하나는 대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허공에서 흔들리는 도시의 일상을 살필 때 어떤 시적 윤리성이 발생한다는 것. “저녁이면 자기의 민낯을 바라봐야 하지 그래야/아침이면 극진하게 화장을 하거든”과 같은 진술은 자본주의 사회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주체가 세속에서 부유하는 존재라는 걸 암시한다. 도시적인 생활에 길들여진 삶과 그 질서와 유혹에 쉽게 편입되지 않으려는 안간힘 사이에 문화영의 시가 있다. 마치 “커피 마시는 고양이”처럼. 시인이여, 향후에 언어와 상상력이 더욱 강한 파격과 일탈을 감행한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마시라._안도현(시인, 단국대학교 교수)
단아하면서도 발랄한 매혹적인 시편들이다. 상처와 아픔을 응시하는 시선은 깊고 부조리와 무기력의 현실에 맞서는 태도는 겸손하면서도 다부지다. 별일 아닌 듯이 행간을 밀고 가다가 낯설고 새로운 지점에 부려놓는 감각의 언어는 절묘하고 유쾌하기만 한데, 이따금 나오는 이야기 시의 알레고리는 정교하고 묵직하다. 시인은 얼마나 많은 지각과 인식을 가진 존재일까. 사람과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채롭고 독특해, 삶의 이면에 감춰진 의미와 내밀한 풍경이 각양각색의 형태로 표출된다. 특별히 시인은 “끝내 다시 차가워져/혼자가 된 별들이/불을 끄고 우는 밤”을 꺼내놓고 “차가운 바람이 일으키는 당당한 소리”를 명민하게 받아적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완성은 지우는 것이거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며 “발가락 사이로 고요가 빠져나가는 마당”을 펼쳐 보여준다. 이렇듯 시인은 쓸쓸하고 어두운 지점을 파고들어 저마다의 시를 발화시키는데 이때의 빛깔은 대체로 보랏빛이거나 붉은빛, 혹은 맑고 투명한 빛을 띤다. 우리가 함께 반짝여도 좋을 시집이다._박성우(시인)
■ 문화영
광주에서 태어났다.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2016년 『시에』로 등단하였다.
첫댓글 문화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화장의 기술』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시와에세이 후원 회원님께는 10월 5일 발송 예정입니다.
첫 시집 출간 축하드려요, 독득한 시를 쓰세요.
잘 받았습니다
가슴으로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