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릿 미첼은 기자였다. 온 도시를 누비며 사람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고 정보를 얻어 기사를 작성하여 편집장에게 날리는 꽤 유능한 민완 기자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치명적인 발목 부상을 당한다. 온 애틀란타 시를 좁다하고 돌아다니던 기자의 영역은 삽시간에 정리벽 부족한 부부의 ‘쓰레기장’과도 같았던 좁은 아파트로 한정됐다. 온 몸이 근질거리고 좀이 멀쩡한 팔과 다리를 들쑤셨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그녀가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 던지는 아내에게 남편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봐 매기. 이제 읽지만 말고 당신이 한 번 써 봐. 이제 당신이 안 읽은 책은 기술관련 책 밖에 없어.”
물론 기자도 글 쓰는 직업이지만 그거야 취재원 만나고 사건 들추고 인터뷰해서 기사쓰는 일이지 골방에 틀어박혀 남이 읽을 뭔가를 창조하는 직업은 아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마가릿 미첼 역시 그 예외에 속했다. 그래 볼까? 귀가 솔깃해진 그녀는 아픈 다리를 끌고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 또래 세대가 비록 전쟁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전쟁 경험담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처럼 마가릿도 눈만 감으면 슬라이드로 흘러가는 옛 이야기들이 있었다. 셔먼 장군의 아틀란타 포위 공격, 광장을 메운 시신들, 무질서하게 후퇴하는 남군의 회색 군복의 남루함과 마치 세계의 지배자인양 그 얼굴까지 시퍼렇게 오만했던 푸른 군복의 북군들의 기억, 그리고 전쟁 이전의 아틀란타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며 인자한(?) 주인들과 충직한(?) 노예들의 앙상블 속에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는지 등등,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들과 그녀가 인터뷰했던 노병들은 충분한 데이터베이스를 그녀의 머리 속에 채워 주고 있었다.
그녀가 타자기를 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두들겨져 나온 부분은 뜻밖에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부분. 스칼릿 오하라가 “Tomorrow is another day."를 부르짖으며 영원한 땅 타라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그 부분. 결말이 가장 먼저 쓰여진 셈이다. 그를 시작으로 마가릿 미첼 기자는 머리 속에 가득 찬 황금빛 잿빛 그리고 흙빛 사연들을 골고루 버무려 타자 자판 위에 얹는 데에 몰두했다. 다리가 나은 뒤에도 원고 쓰기는 계속됐지만 이 원고는 완성되기까지 장장 9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나마 첫장, 즉 서두는 출판 직전까지도 쓰지 않았었다. 워낙 사람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마가릿 미첼 기자의 친화력이 문제였다.
“일단 나에게는 아끼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또 어쩌면 그 중에 몇 명은 꼭 아픈지. 사고를 당하든지 탈이 나든지 문병 가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이런 판이니 작품 속의 성미 급한 아일랜드 혈통의 아가씨 스칼릿 오하라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원고 더미 속에서 튀어나와 마가릿 미첼의 목을 졸랐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스칼릿이 레트 버틀러를 만나게 되는 계기의 장면처럼 꽃병을 벽에 집어던지든지. 레트 버틀러에게 “당신은 신사가 아니로군요!” 외치는 그 앙칼진 목소리로 “마가릿! 당신은 작가가 아니에요!”라고 쏘아부쳤든지.
마가릿 미첼이 출판을 결심하게 된 것도 본인의 작품에 만족했다거나 누군가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 아니었다. 마가릿이 띄엄띄엄 원고를 쓰고 고치고 다시 처박아 두고를 반복하던 중 뉴욕의 출판업자 레이슨이 아틀란타에 찾아온다. 마가릿을 찾아온 게 아니라 혹 유능한 지역 작가가 없는지를 탐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찌 어찌 마가릿도 소설을 쓰고 있다는 얘길 꺼냈는데 함께 자리했던 한 작가가 노골적인 놀라움(?)을 표시한다. “오우 미첼 기자가 소설을 써? 당신이 그렇게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잖아.” 이에 오기 하면 빠지지 않는 기자근성의 마가릿 발끈한다.
그녀는 레이슨이 떠나는 시간을 알고 기차역으로 달려가 원고지 1037페이지의 대하소설 원고를 떠맡기는 만용을 부린 것이다. 그쯤 해서 보통 사람은 그만 두고 하회를 기다리겠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객석의 레이슨에게 전보를 친 것이다. “원고를 읽으셨습니까? 안읽었으면 첫 페이지라도 읽어 주세요.” 그래도 레이슨은 선반 위의 원고에 손을 대지 않았고 어떻게 알았는지 이 야무진, 스칼릿 오하라의 집요함을 닮은 마가릿 미첼 기자는 또 한 번 전보를 친다. 그제서야 ‘첫장’을 넘긴 레이슨은 그 이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뉴욕에 돌아오자 이번엔 역시 스칼릿처럼 변덕이 심한 마가릿이 ‘원고 반송’요구 전보가 와 있었다. 그러나 레이슨은 손에 들어온 천금을 여자의 변덕에 맡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원고 대신 수표를 부친다. 이런 곡절을 거쳐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세상에 나온다.
때는 바야흐로 세계 대공황의 절정이었다. 흥청거리는 20년대를 뒤로 하고 대공황의 소용돌이 속에 허덕이던 미국인들은 제국이 무너진 이후의 남부인들의 심경에 쉽게 동화됐고 풀뿌리를 캐다가 “절대로 다시는 내 식구들을 굶기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억세지만 매력적인 아가씨 스칼릿 오하라에게 매료됐다. 물론 소설 속에 어이없이 내재된 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적 시각이 작품의 성공에 묻혔음도 기억할 일이다. 재미있게 읽다가도 화딱지가 날만큼 작가의 편견은 공고하다.
그러나 이 소설이 유명한 영화로 만들어지고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을 때 매우 감동적인 장면 하나가 역사에 남겨진다. 스칼릿의 유모 역을 한 흑인 헤터 맥다니엘은 오스카 여우 조연상을 받았음에도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흑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레트 버틀러 역을 맡은 클라크 게이블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거세게 따지고 KKK단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흑인이고 백인이고 영화배우로서 최선을 다했다면 시상식에 참석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여 맥다니엘은 시상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가릿 미첼의 소설 속에서 스칼릿이 가장 크게 의지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면서도 “아씨는 말의 치장을 한 노새입니다. 아무리 번쩍번쩍하게 치장을 해도 노새는 노새입니다요. 아씨는 온갖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역시 노새입니다요. 버틀러라는 사나이도 출신은 좋고 영리한 인간이지만, 역시 말의 치장을 한 노새에 불과합니다요." 라고 기관총을 쏘아대던 흑인 노예 매미 역을 맡았던 맥다니엘은 이렇게 수상 소감을 밝힌다. “제가 검둥이로서 처음 이 자리에 서게 되어 기쁩니다. 게이블씨에게 감사드립니다. 이후로는 더 많은 흑인들이 올라오게 되겠죠.” 물론 그 후로도 아카데미는 흑인에게 냉정했지만.
마가릿 미첼의 저술 인생은 오로지 이 책 하나로 끝나 버렸다. “다른 책을 쓰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작가로도 충분히 바쁘다구요!”라고 응대했던 그녀는 1949년 남편과 함께 뺑소니 차량에 치어 숨졌다. 그녀 속에 감춰진 천재성은 오로지 1936년 6월 30일 출판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만 번득이며 드러난 후 영영 일상에 묻혔고 다시 솟구칠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녀가 만든 스칼릿 오하라 캐릭터는 많은 남성들의 로망으로 남아 있다. 멜라니처럼 착하고 헌신적인 여자보다는 스칼릿처럼 야무진 여자, 강한 여자에게 끌리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대개는 “그 사랑을 빼앗아 채찍처럼 사람의 머리 위에서 그것을 휘두르는”(레트 버틀러의 스칼릿 오하라 묘사) 여자에게 호되게 콧잔등을 얻어맞게 마련이지만.
ㅡ From 후배 김형민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