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됐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한겨울에 우크라이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려주는 예고편 성격이 강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러시아는 16일 밤과 17일 새벽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인프라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두 곳의 수력발전소와 세 곳의 화력발전소, 수도 키예프(키이우)를 비롯한 리보프(르비우), 오데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등 주요 대도시 변전소가 공습을 받았다.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인한 화재 진화에 나서 우크라이나/사진출처:우크라 비상사태부, 스트라나.ua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7일 "러시아가 지르콘과 이스칸데르, Kh-101, 킨잘 등 미사일 총 120기와 90대의 드론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의 에너지 인프라를 공격했다"며 "우리는 방공망과 F19 전투기 등을 동원해 140개 이상의 공중 목표물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안드레이 시비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는 평화로운 도시와 잠자는 민간인, 중요한 기반 시설을 겨냥해 공습을 감행했다"며 "최근 푸틴 대통령을 방문하거나 전화한(숄츠 독일 총리) 사람들에게 보내는 답변이 바로 이런 식"이라고 비판했다.
키예프 시당국(전쟁 발발 이후 공식 명칭은 키예프 군사행정청/편집자)은 키예프에 대한 이날 공격이 지난 3개월 동안 가장 강력한 공격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대규모 공격 이후 가동 중인 원자로 9기 중 7기를 폐쇄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현지 분석가들은 "러시아가 지난 9월 4일 이후 두 달이상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Kh-101 공대지 순항 미사일(러시아식 표현으로는 X-101, 이때 X는 영어의 '엑스'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하'라고 읽는다/편집자)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추운 겨울에 우크라이나 전력 인프라를 공격하기 위해 미사일을 아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적어도 이 기간에 최소 120기의 Kh-101 미사일을 쌓아둔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x-101 순항 미사일을 탑재한 러시아 Тu-95 전폭기/사진출처:위키피디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달 초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공습을 중단하기로 '비밀 에너지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가 중재를 맡았는데, 러-우크라-카타르 간의 3자 직접 협상이 아니라, 카타르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의사를 따로따로 타진하는 간접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고, 러시아군의 에너지 기반 시설 타격이 시작된 것으로 관측된다.
러-우크라-카타르 에너지 협상에 대해서는 안드레이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실장이 지난 4일 확인한 바 있다. 그는 "카타르를 통한 간접협상으로 진행됐지만, 합의가 이뤄진다면 우크라이나는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역시, 러시아의 태도다. 트럼프 전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전략적 우위를 점한 러시아가 순순이 이에 동의하리라고 보기는 힘들다. 스트라나.ua는 지난 4일 예르마크 실장의 에너지 협상 확인 사실을 전하면서 "러시아가 동의할 가능성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큰 그림(평화협정) 안에 들어 있지 않다면,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에너지 공격은 우크라이나 측에 더 치명적이고 비대칭적인 결과를 낳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주목할 것은 우크라이나 이웃국가 폴란드가 러시아의 에너지 기반 시설 공습에 대응해 공군 전투기를 급파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투기는 공습 내내 폴란드 영공 내에 머물렀다.
폴란드 군사작전사령부는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과 자원을 동원했다"며 "대기 중인 전투기 조를 출격시켰고 지상의 방공망과 레이더 정찰 시스템을 최고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대응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이 아닌 잠재적 위협에 따른 예비적 조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