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22]복숭아농원 친구야, 힘내라!
한동네 사는 꾀복쟁이 친구는 이제껏 고향을 떠난 적이 없다(20대 초반 3년여간 서울 노론산시장 야채가게에서 누님의 일을 거든 적은 있지만). 국민핵교를 다닐 때, 나보다 한 살 더 많아 의젓해 그랬을 건인가? 내가 많이 귀찮게 한 기억이 뚜렷하다. 성격이 본래 유순하고 착해 화를 내본 적도 별로 없는 것같다. 자신의 선대인(부친)을 닮아 눈썰미도 좋고 무슨 일이든 ‘일머리’가 뛰어나 못하는 일이 없다. 30여년 전엔가 농촌 주택개량사업이 붐을 이룬 적이 있는데, 단짝친구와 둘이 몇 수십 채 집을 고쳐주고 다닌 적도 있다. 현재의 마을회관도 2000년 그 친구가 혼자 지은 것이다. 2년 전에는 처음으로 자기 집을 순전히 제 힘으로 1년여에 걸쳐 멋진 양옥을 지었다. 현재의 '거창한' 창고(복숭아 작업을 하는 컨베이어벨트, 나락 말리는 기계가 들어가 있는)도 혼자 지었다고 한다. 나는 오직 신기하여 감탄한다. 가히 건축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해마다 6월말부터 두어 달은 복숭아를 따고 상자(박스라 해야 더 실감이 나는 게 속상하다)에 담아 가락시장으로 납품을 하는데, 지난해에는 1만7천상자를 했다고 한다. 옆에서 보니까, 복숭아는 키워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내는데 공이 너무나 많이 든다. 농한기가 없다. 겨우내 600여 그루의 나무 밑에 짚다발 등 거름을 해야 하고, 도정지라고 묵은 가지를 쳐내야 하며, 꽃이 피기 시작하며 솎고, 작은 열매들을 훑어내야 한다. 노란 종이봉투로 작은 열매를 싸야 하는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몇날 며칠 놉을 얻어 싸는 작업은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인력난에 노심초사해야 한다. 작년엔 17만장을 쌌다던가. 이런 건 또 아무것도 아닌 게 농약을 시도때도 없이 쳐야 한다. 헤아려보니 20번 가까이 했다는데 기가 질린다. 복숭아농사는 사실 질 일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농촌에서 그나마 돈이 되기에 안할 수 없다. 6월말에는 모내기(씻나락을 담그는 육묘, 써레질과 이앙작업)와 겹쳐 이중으로 죽을 맛인데, 논농사도 임대를 포함해 80여마지기를 지는 ‘대농大農’인 셈이다. 그러니 몸이 온전하겠는가? 종합병원이나 마찬가지지만, 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고역중의 고역이다.
하여간,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복숭아 수확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초읽기’에 해당되므로, 잠시라도 손을 놀릴 수가 없다. 따야할 때 따지 않으면 복숭아는 금세 물르니, 한 해 농사를 헛지은 셈이다. 수입을 말하자. 3억쯤은 되는 모양이나, 농약과 비료값, 놉들의 인건비(고정적으로 태국여성 2명이 매달리는데, 이렇게 확보된 것은 그 친구의 인덕이다) 등을 제하면, 1억은 조금 넘을 것이다. 사무직 월급쟁이들에 비한다면, 수익이 5억은 넘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어쨌든, 올해는 서투르지만, 복숭아 열매도 싸주고, 따보고, 상자로 만드는 작업 등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도와주려고(단순작업이지만 스킬이 없어 별 도움도 안되고 힘만 죽어라고 든다) 작정했는데, 졸지에 서울에 사는 손자를 당분간 돌보는 책임이 떨어져 안타까웠다(주말에만 귀향). 하여, 목욜 밤에 내려가 금욜, 일욜 이틀간 조금 도와주고 올라왔다(일욜은 가락시장 경매를 안하니 토욜은 쉬지만, 쉴 틈이 없는 게 틈틈이 1만개도 넘는 상자를 접어야 한다). 빈 상자를 쌓아놓은 것을 보는 것도 장관이다.
따온 복숭아를 선별해 컨벤이어벨트 위에 올려놓으면 크기별로 똑똑 떨어진다. 그것을 일일이 닦아 상자에 크기별로 담는데, 5구라 하면 다섯 개, 6구라 하면 여섯 개를 말하니 한 박스에 10개, 12개가 들어간다. 하루에 보통 500개씩을 서울로 올려보내는데, 그게 어디 만만한 작업일까. 그렇게 쌓여 올해 잘하면 2만개에 육박할 것이다. 이웃동네에 큰 화물트럭이 토욜만 빼고 날마다 와 실어 나르는데, 한 차에 2600개 박스를 싣는다고 한다. 작업을 도와주면서 든 생각은 전국에서 올라오는 이 많은 복숭아들을 누가 다 먹어치울까였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자기 생각도 그렇다며 싱긋이 웃었다. 사람들이 복숭아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단순작업이라도 서너 시간 계속 같은 일을 하다보면 힘든 게 노동이지 않던가. 따온 복숭아는 또 종이를 벗겨내야 하는데, 종이 속에 작은 철사가 들어있기에 재활용도 못하고 태워야 한다. 아무튼 일 아닌 게 하나도 없다.
친구가 복이 많다고 한 건, 25살 막내아들이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가업’을 잇겠다는 ‘농촌 꿈나무’인데다, 상주하는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모두 결혼하여 손자가 일곱이나 되는 세 딸과 큰아들 가족(그러니까 2남3녀, 다둥이가족)이 일사분란하게 아버지 일을 돕기 때문이다. 막내아들에게 틈만 있으면 ‘탁월한 선택(excellent choic)'을 했다고 칭찬하며, 하는 말이 “농업이야말로 누가 뭐라든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오래된 미래‘의 직업이 확실"하다며 격려를 하곤 한다. 그 친구에게 편지를 쓴 것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참으로 단란하고 부러운 가정이지만, 몇 해 전 상처喪妻를 하여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한 것이 유일한 흠이다. 아 참, 복숭아농원 이름이 <승건농원>인데, 두 아들 승영이와 건영의 이름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연안김씨로 ’영‘자는 나의 장인 항렬行列이어서, 나의 아내가 손자뻘이라며 농을 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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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들만 둘이기에 딸 있는 친구들의 세정細情과 사랑을 알 수 없기에 오직 부럽기만 하다. 언젠가 <시경詩經>에 나오는 한시를 보고, 친구의 세 딸을 생각하며 쓴 졸문을 찾아봤다. 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무엇보다 딸은 제 엄마의 좋은 친구가 된다 하지 않던가. 어머니도 아내를 보고 “너는 딸이 없어서 어쩔끄나?” 여러 번 말씀했었다. 아내는 그래도 두 아들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고 좋다고 말하는데, 무뚝뚝한 내가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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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길어져 미안한데, 그 친구의 이야기로만 소설책 한 권은 써도 될 듯하다(어떻게 사적인 내용들을 공개석상에서 다 할 수 있을까.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는 말이다). 오늘의 주제는, 아무 조건없이 친구의 복숭아작업을 몇 번 도와주고 온 소감을 자판에 손이 가는 대로 쓰는 것으로, 적은 시간이나마 친구의 힘든 작업에 한손을 보태고 오니 기분은 좋지만, 날마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쌀이 또옥 떨어져 “쌀 좀 있냐?”니까 두말도 하지 않고 신동진 20kg 한 푸대를 저온창고에서 내왔다. 쌀농사도 그 친구가 트랙터로 쟁기질을 하고, 이앙기로 모를 심고, 콤바인으로 나락을 수확하는 기계로 해주지 않으면 엄두를 못낼 일인데, 그 친구가 있어 가능하니 나도 인덕이 많은 사람인 것만은 틀림없다. 하하. 좌우당간 이제 한 달여만 지나면 올해 복숭아 수확도 끝나겠지. 아프지 말고 힘내라, 꾀복쟁이 친구야. 세 딸네와 큰 아들 식구, 막내아들 그리고 일곱 손자(1번 외손녀가 중3)들과 언제까지나 행복해라. 일요일에 또 만나자. 고맙다. 친구. 사랑한다. 친구.
부기: 슈퍼 등에서 복숭아 한 상자를 사실 때, 생산자 이름을 유심히 보시라. 임실오수영농조합법인의 <김종두>라고 쓰여 있으면, 나의 친구가 뭣 빠지게 지어 올려보낸 소중한 복숭아임을 알고, 농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잡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