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 길 떠난 친구 생각
그리하지 않아도 그리되는 것은 天運이요
이르게 하지 않아도 이르게 되는 것은 天命이다
孟子가 말했단다 우리 만남이 그러했고
우리 因緣이 그러했고 우리가 함께한
기쁨과 挫折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세상사는 게 한바탕 어지러운
꿈이다가 꿈속의 꿈이다가
한 송이 空華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한 幅의 蜃氣樓이다가
빈 하늘에 떠가는 한 움큼 구름이다가
우리가 살아온 세상만큼 세월이 가고
바람처럼 세월이 가고 그렇듯
그래 아주 오래전 하인천역 선창가 선술집들
월미도 갯바위들 만국공원에서 함께 바라보던
검정색 하늘과 밤바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도 아닌
끝 모를 안개 속 방황 절망의 深淵같은
먼 먼 우리 스무 살 고갯마루쯤
생소주 가치담배 서울역 시계탑 1964년 가을 겨울
거부할 수 없는 宿命같은 우리 인연의 매듭들
풀 수도 없고 풀리지도 않을 그리고 우리의
웃음과 눈물자국들이 흩어져 안개처럼 떠도는
그리움같은 어머니 품속처럼
아련한 우리 기억의 片鱗들 종각 사거리 바람 부는
가을날 저녁 찻집 창가 나비떼처럼 휘날던
은행나뭇잎들 술 취한 밤 광하문 버스 정류장
가로등 불빛 겨울날 만난 종로 뒷골목
색소폰 부는 늙은 樂士의 웃음 띤 얼굴
강릉 바닷가 리조트 창문 너머 멀리 회색 겨울 바다
눈보라 몰아치던 오대산 소금강 겨울날 하루해
진부령 고갯길 눈 쌓인 산속 눈부시게 쏟아지던
푸른 햇살들 주문진 남애리 포구 횟집 파도 소리
대치동에서 분당까지 걷던 밤 엄청나게 퍼붓던 장대비
인왕산 오르던 그 가을날 산마루에 걸려있던
蒼白한 낮달 강화도 고려산 적석사 呪文같은 日沒...
어느 날 예순 살 고개 넘고 한참 지난 무렵
애고개역 근처 3층 고시원 건물 뒤편
두 평짜리 술집에서 우리는 소주를 마셨지
밤늦도록 우리가 마신 소주가 눈물이
되어 온 얼굴에 울음처럼 흘러내릴 때까지
그렇게 쓰러지지 않으려고 무너질 듯
넘어질 듯 비틀거린 우리 세월의 悔恨들
지워지지도 않고 지울 수도 없는 우리 痕跡들
그래 사는 게 제기랄이고 아무리 우라질이어도
수많은 시간 우리가 좇았던 꿈같고
허깨비같고 그림자같은 무지갯빛 티 없는
念願들은 지금 모두 한줌 바람이 되어
어디로 가버렸을까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목련은 피고 벚꽃이 피고 목련은 지고 벚꽃이 지고
봄이 소리 없이 떠나가고 여름 가을 겨울......
어느 날 네가 말했다 나 폐암 걸렸단다
두 번째 항암치료 받던 날 일산 호수공원 입구
식당에서 우린 냉면을 먹었고 너는 말했다
정말 맛있네 다음에 또 오자
그리고 국립암센타 5층 입원실 창가
나비처럼 흔들리며 반짝이던 하얀 하늘 빛
우리 가슴속 고인 눈물같은 祈禱처럼 病室을
가득 적시고 눈 내리고 바람 불고 겨울은 소리
없이 떠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어느 날
밤새도록 어수선한 꿈속에서 내가 너를 본 다음 날
우리는 알 수 없는 낯선 곳에서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자리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 무성
영화 화면 속처럼 웃음 띤 네 얼굴이 내게
다가와도 내 손이 너에게 닿을 수 없고 나는 너를
만질 수 없었다 그래 우리가 만났다 헤어질 때
또 만나자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우리는
언제나 또 만났지 약속하지 않아도 우리의 인연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한 언제나 그럴 것이다
어느 날 내 눈물은 마르고 기억들이 멀어져도
울음 삼킨 바람이 소리 나지 않게 내 창문을
흔들 때 난 여전히 내 운명같은 幻肢痛에
온몸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天運처럼 天命처럼
속절없이 봄은 다시 오겠지만 이 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아, 해가 서산에 지는데
먼 길 떠난 너는 정녕 어디 있단 말인가! 친구가
먼 길을 떠났습니다 지금 친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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