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발, 한국 육상의 한계를 넘다
우상혁, 세계육상선수권 첫 銀
실내선수권 금메달 이어 쾌거
2m35 훌쩍 우상혁이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바를 넘고 있다. 우상혁은 2m35를 넘어 한국 육상 사상 최고인 은메달을 획득했다. 유진=신화 뉴시스
우상혁(26·국군체육부대)이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한국 육상의 역사를 새로 썼다.
우상혁은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기록해 2m37을 뛴 지난해 도쿄 올림픽 공동 금메달리스트 무타즈 바르심(31·카타르)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우상혁은 2011년 대구대회 경보 20k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현섭을 뛰어넘어 한국 육상 최고 성적을 냈다. 마라톤과 경보 등 장거리 종목을 제외하면 한국 육상이 트랙과 필드 종목에서 메이저 국제대회 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상혁이 작은 키와 ‘짝발’의 한계를 딛고 거둔 성적이라 그 의미는 더 크다. 우상혁은 세계적인 선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키가 작다. 그리고 8세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발(275mm)과 오른발(265mm)이 1cm 차이가 난다.
10kg 뺀 몸으로 2m35 높이 난 우상혁…“더 역사적인 날 만들것” 파리 金 도전
초등학교 입학전 사고로 ‘짝발’
188cm 키도 선수로는 단신
밸런스 훈련으로 핸디캡 극복
우상혁 ‘포효’ 우상혁이 19일 미국 오리건주 유진 헤이워드필드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3을 3차 시기에 뛰어넘은 뒤 포효하고 있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우상혁은 2m35를 2차 시기에 성공해 한국 육상의 새 역사를 썼다. 유진=AP 뉴시스
우상혁이 높이뛰기에 입문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약 13년간 그를 지도했던 윤종현 전 국가대표팀 코치는 우상혁이 높이뛰기 선수로는 ‘악조건의 몸’이라고 말한다. 우상혁은 초등학교 입학 전 자동차가 오른 발등을 밟고 지나가는 사고를 당해 치료중 오른발 성장이 멈췄었다. 이렇다 보니 오른발의 지지력이 부족해 어깨 중심이 쉽게 무너졌다. 상하체 비율이 똑같은 것도 약점이었다. 이날 세계선수권 사상 처음 남자 높이뛰기 3연패를 이룬 바르심은 키 189cm로 우상혁보다 1cm 크지만 하체가 우상혁보다 주먹 하나는 더 길다. 높이뛰기에서는 키는 클수록, 하체는 길수록, 무게는 가벼울수록 도약 상승력이 좋아진다.
하지만 우상혁에게 이런 신체적 결함은 포기가 아닌 극복의 대상이었다. 발 크기가 달라 깨지는 밸런스를 잡기 위해 균형감을 유지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 우상혁이 도약하기 전 왼쪽 어깨를 오른쪽으로 비트는 특유의 루틴을 하는 것도 밸런스를 잡기 위한 ‘생존 습관’이다. 오른발이 밀려 오른 어깨가 빨리 돌아가는 것을 잡기 위해 하던 행동이 습관이 된 것이다.
우상혁은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은메달 이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보려 근육을 키워 도약 파워를 키우는 변화도 시도했었다. 몸무게를 급격히 76kg까지 늘렸더니 부상이 겹쳐 결국 슬럼프가 왔다. 2019년 세계선수권은 기준기록(2m30)도 넘지 못해 출전이 좌절됐다. 그래도 포기는 없었다. 아직 젊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보자고 생각했다. 우상혁은 다시 10kg을 감량해 가벼운 몸으로 도약 상승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지난해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육상 트랙과 필드를 통틀어 최고인 4위에 올랐고, 올 3월 실내선수권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웃어 ‘스마일 점퍼’란 별명을 얻은 우상혁은 이날 결선에서 바와 함께 추락하며 우승이 물 건너간 순간에도 벌떡 일어나 이가 보이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희망을 얘기했다. “내년에 세계선수권이 다시 열리고 2024년엔 파리 올림픽이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금메달을 따는 ‘더 역사적인 날’을 만들겠다.”
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