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덮어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4.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5.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6.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본문 주해)
1~2절 :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일과 우리가 그분 앞에 모이는 일을 두고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새번역)
지금 데살로니가교회 안에는 ’주의 강림이 이르렀다‘라는 주장이 널리 퍼졌다.
이에 대해 바울은 ’주의 강림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어떤 형태로든 ‘주의 날이 이르렀다’라는 시한부 종말론을 배격하라고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런 말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3~5절 : 주의 강림 이전에 나타날 불법자는 멸망의 아들, 대적자, 적그리스도로 표현된다.
그는 사탄의 일꾼으로 여러 가지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한다.
불법자의 특징은 자기를 높이며 자기를 숭배하도록 만든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는 자이다.
이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성도들에게 거듭 말했던 것을 상기시킨다.
불법자의 특징은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거짓 사도의 특징과 일치한다.
참 사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한 남편 그리스도께 드리는 중매쟁이다.
그러나 거짓 사도는 ‘지극히 큰 사도’(슈퍼 사도)로 불리면서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끈다.
이들은 속이는 일꾼이며,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사탄의 일꾼이다. 이들은 진리를 저버리고 눈에 보이는 이적과 표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6~7절 : 그런데 아직 불법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종말의 때까지 억제하는 힘에 의해 제지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법은 비밀리에 이미 활동하고 있다. 주의 강림 직전에 그 실체를 밝히 드러낼 것이다. 따라서 깨어있지 못하면 현재 활동하는 불법자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깨어있는 자만이 이미 활동하는 불법자를 분별하고 미혹 받지 않는다.
8절 : “그 때에 불법자가 나타날 터인데, 주 [예수]께서 그 입김으로 그를 죽이실 것이고, 그 오시는 광경의 광채로 그를 멸하실 것입니다.”(새번역)
주의 강림 시 실체를 드러내는 불법자는 주 예수에 의해 멸망한다.
9~10절 : 불법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에 따른 것이다. 그는 온갖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행하고 온갖 속임수로 멸망 받을 자를 속일 것이다. 사탄이 그 속에서 활동하는 불법자는 가시적이고 인상적인 능력과 표적을 행한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여기에 속아 멸망 받을 자를 자처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자기를 구원해 줄 진리에 대한 사랑(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단의 역사를 따라 유혹에 빠지는 자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여 줄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짓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죄악 된 상태를 보여준다.
이것을 로마서 1장에서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 상실한 대로 내어버려 두신 것이다.(롬1:28)
참으로 자신을 구원할 진리에 대하여서는 냉담하고, 진리의 말씀에 대하여서는 무관심한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병 고쳐주고, 먹을 것 주는 예수님은 좋지만, 내가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십자가로 가시는 예수님은 싫다는 것이다.
11~12절 : 하나님께서는 진리(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미혹의 힘을 보내셔서 불법자의 활동을 믿게 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들을 미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 된 상태대로 그대로 두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이 진리를 거부한 데 대한 형벌이다. 물론 그들이 주의 강림 이전이라도 진리를 받아들여 구원받기까지 오래 참으신다. 하지만 끝까지 진리를 거부하고 불법자가 행하는 능력이나 표적에 미혹되면 그날에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나의 묵상)
지금 나는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
성도들을 거짓과 유혹으로 이끄는 불법자들의 활동은 오늘날도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그들은 사탄의 일꾼으로 여러 가지 능력과 표적과 기적을 행하면서 뭇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능력과 표적과 기적’은 사람의 마음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실 때 기도해 준다는 곳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병 낫기를 바라고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믿음이 생기기를 바라고 찾아간 것이다.
지금이라면 내가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하고, 기도해 주었을 텐데....나 자신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비실한 상태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곳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그때 그런 행동 자체가 내 믿음이 좋은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복음을 알고, 매일 생명의 말씀으로 나아간 뒤 소위 말하는 ‘능력과 표적과 기적’이란 것에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 생명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 예수님께서 보이신 수많은 기적과 표적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하고, 그가 십자가로 열어주시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데 있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와 교제함으로 그분의 품속의 평강을 누리는 데 있는 것이다.
이 진리를 알고 나니, 너무도 자유하고 기쁘다.
자유 해서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갈망하는 마음을 성령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이 종말의 때에 사탄의 졸개들이 그럴듯한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려고 난리를 친다.
이단들의 행동은 말할 필요도 없으니 차치하더라도, 정통 교단이라고 말하는 곳에도 버젓이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이 다인 양 떠드는 곳이 많다.
세상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세상 복과 성공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의 간증이라는 것이 다 성공담 아니면 죽을 병에서 나았다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부추기는 용한(?) 기도처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불법자들이 이 종말의 때를 휘젓고 있으니, 믿음을 가졌다는 자들이 그 흐름에 정신없이 끌리고 휘둘리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바울 사도의 애타는 마음이 너무도 이해가 된다.
참 복음을 알고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누리면 시한부 종말론 따위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단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과 교제하면서 생명의 삶을 살아감으로 잠잠히 또한 열렬히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2015년부터 우리 교회와 주변 공동체에 복음과 생명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진리에 관심이 없는 자들이 많다.
‘꼭 그렇게 믿어야 하냐?’에서부터 ‘너는 그렇게 살아라. 나는 이렇게 살게’ 하며 완고한 고집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 혹 내 모습 중 어떤 부정적 요소 때문에 그들이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일까 두려운 마음도 든다. 그러할지라도 주님께서 만져주시길....)
또 자신은 너무 연약해서 말씀 묵상하는 삶을 못 한다고 자신의 조건을 들먹이는 자도 있다.(기록하는 묵상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많다.)
연약하니까 주님께로 가야 되는데, 연약해서 못 간다고 하니, 이보다 더한 불신이 어디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실 복음을 알지도 못한 자가 많고, 또 말씀과 상관없이 없이 사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얼굴은 대체도 경직되고 어둡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종교생활에 마음의 기쁨이 있을 리가 없다.
참 복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요,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한다.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니 다른 무엇이 필요할까?
(묵상 기도)
주님,
능력과 표적과 기적에 마음이 혹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 복음을 알게 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게 하시니
그 거짓들에 대해 코웃음을 치게 되었습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 주님을 뚜렷이 보게 하시니
다른 것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은 자,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과 교제하면서 생명의 삶을 살아감으로
잠잠히 그리고 열렬히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