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30일(금)
* 시작 기도
주님...
주께서 아들을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며 또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습니다(시 8:5).
이는 곧 아들의 형상으로 지으신 우리가 쓸 영화와 존귀의 관임을 믿습니다.
지금은 가장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그 나라 아버지의 품에서 누릴 영광이요 우리의 소망이오니 잠시 잠깐 후면 들어갈 그 나라를 소망 가운데 기다리게 하소서.
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고 가장 자유한 모습으로 주의 나라에 들어가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무거운 것 곧 거리끼는 것이나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게 하소서.
이러한 믿음의 경주 역시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지 않으며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로 인함인 줄 압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그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그 분은 당신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 등 온갖 수치와 멸시를 개의치 않으시다가 결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 12:1-2).
나는 주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힘과 능력으로 행하려던 자였습니다.
믿음과 은혜가 아니라 나의 의였음을 고백합니다.
이 아침에 다시 살아나는 나의 옛 사람과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가 되어 이 하루를 살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거룩한 불구자로 살아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 원합니다.
내게 주신 고난이 내가 받아야 할 몫이라면 기꺼이 감당하게 하소서.
주께서 그러하셨듯 나 또한 우리 주님을 위하여 받는 수모를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겨 영생의 소망 가운데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살후 2:13-3:5
제목 : 말로나 편지로 받은 복음으로 굳게 서라.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나의 묵상
데살로니가후서는 크게 3가지 주제를 담고 있다.
하나는 박해와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주의 강림시 임한 공의의 심판을 통해 위로하는 것이다(1장).
다음으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명제에 흔들리는 신자들을 견고히 세우고 있다(2장).
끝으로 주의 강림의 날을 오해하여, 게으르고 방탕한 자들을 권면하여 경고하고 있다(3장).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주의 날이 임하였다’는 말로 인하여 흔들리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구호는 영으로나 말로나 심지어 바울의 이름을 사칭한 편지를 통해 유포되었다(2절).
바울은 이에 대해 단호히 경고하며 그런 구호에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설령 누가 어떻게 하여도 미혹되지 말 것을 촉구한다(3a).
왜냐하면 주의 날은 배교하는 일과 불법자(멸망의 아들)가 나타난 후에 오기 때문이다(3b).
불법자는 대적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미혹하는 불법자가 오기 전에 미리 불법자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불법자가 비밀리에 활동을 이미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은 불법자를 분별하고 미혹당하지 않도록 참 신앙을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불법자는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징과 이적으로 사람들을 속인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과시하며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에게로 빼앗아간다.
그가 행하는 기적과 현상은 매우 가시적이고 인상적이다.
그러나 바울의 권면은 ‘주의 날이 임했다’는 말로 인해 현재를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는 성도들을 권면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그들에게 현재의 의미를 알게 하고 더불어 비밀리에 활동을 시작한 불법자를 분별하여 깨어있게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데살로니가후서의 언어나 비유, 상징들은 미래의 일을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신앙을 공고하게 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바울은 일단 불법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주의 날이 임했다’는 미혹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러나 불법의 활동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깨어있게 만든다.
이로써 그들이 현재의 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올바른 신앙생활과 삶을 영위하고 현재를 책임감 있게 채우도록 한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집중해야 할 현재적 신앙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아는 것이며, 그들을 구원한 진리에 착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을 택하셨고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셨다(13절).
그들은 사도가 전한 복음을 믿어 구원에 참여하였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었다(14절).
그러므로 그들은 믿음에 견고히 서서 사도들이 말로나 편지로 가르친 교훈을 굳게 지킬 것이다.
바울은 그런 그들을 위해 기원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서기를 원한다(15-17).
초대교회는 주의 날이 임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것을 잘못 오해하면 현재의 삶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무엇보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기 때문에 믿는 자라도 여기에 속을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강림에 대한 권면과 더불어 불법의 비밀에 속지 말 것을 교훈하고 있다.
문제는 현대 교회는 주의 강림에 대한 믿음이 매우 희박하다.
도리어 이생에서 잘살고 잘되는 것이 신앙의 목적처럼 비추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열심 있는 신자들은 비밀리에 활동하는 불법자에게 속아 넘어간다.
그들은 가시적이고 인상적인 종교적 성취에 몰두하며 기적과 이적을 따라간다.
이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권면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절실하다.
그것은 가시적이고 인상적인 기적에 속지 말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진리는 ‘주 예수의 복음’이며 사도들에 의해 전파된 ‘복음’이다(1:8; 2:14).
이를 가리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이라고 표현한다(15절).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의 메시아적 행위로서의 복음이다.
메시아적 행위로써 복음은 전승된 복음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 부활과 현현의 복음이다(고전 15:3-5).
이 복음은 창세전 약속된 아들의 생명(영생)을 얻게 한다.
그리고 영생의 본질은 하나님과 그 아들과 더불어 갖는 사귐이며 누림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은 단회적 사건이 아니라 날마다 일상에서 고백되고 경험되는 복음이다.
그때에 우리는 아들의 생명으로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가시적이고 인상적인 기적에 미혹되지 않는 길이다.
그는 오직 진리를 받아들이고 진리를 사랑함으로써 모든 미혹을 물리친다.
나는 가시적이고 인상적인 기적에 눈이 멀어 거기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긴 적이 있었다.
영원하며 완전한 것이 아님에도 영원한 진리를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그런 기적에 마음을 빼앗겨 나 또한 그런 기적을 나타내보이는 자가 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런 기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켜 목회의 성공을 이루고자 현혹된 자가 바로 나였다.
어느 집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강사로 온 목사가 임파테이션을 한다고 들었다.
임파테이션이란 성령을 받은 한 목사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성령을 불어넣어주면 그 사람도 성령을 받아서 뒤로 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그런 성령을 받고 싶은 마음에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앞에 나와 서있는데 한 사람씩 그 목사가 나가서 장풍을 쏘아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풍에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내 내 앞에 그 목사가 서서 장풍을 쏘았다.
그런데 나는 뒤로 넘어가기는커녕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런 것이 성령을 받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들 때 뒤에 서있던 몇몇 도우미들이 살짝 내 등쪽에 있는 옷을 잡아 당겼다.
뒤로 쓰러지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나는 뒤로 누웠고 다른 사람들처럼 주절주절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다.
한참을 기도하고 나니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길래 나도 일어나 내 자리로 돌아왔고 바로 일어나서 집으로 와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그런 집회에는 절대로 참석하지 않았다.
나는 안다.
내 마음이 얼마나 그런 기적에 목말라 했는지를 말이다.
참된 복음에 목말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적에 목말라하면서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싶어 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성령을 이와 같이 자기들이 마음만 먹으면 움직일 수 있는 어떤 물질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서 이 사람에게 들어가고 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런 물질이 결코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오해하여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짓고 말았던 자이다.
그런 나의 신앙생활과 목회는 혼미하고 끊임없이 흔들리곤 하였다.
그로 인하여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사망에 이르렀으나 창세전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무지한 신앙을 깨트리고 생명으로 이끌어 주셨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신앙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원하신 말씀으로 단단히 묶어주심으로 주님과 연합한 자로 삼아주셨다.
나의 어리석고 무지한 신앙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바울을 통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온전한 정체성을 깨닫게 한 것처럼 나에게도 그런 생명의 정체성을 알게 하셨다.
그리하여 나의 심령을 하늘에 속한 자로 확고하게 세우셨으며 오늘도 그 하늘에 속한 자로 넉넉하게 살아간다.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을 믿음으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올바른 신앙생활에는 환난과 고난이 필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신앙이 좋은 것을 표면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부르짖고 울면서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 카타르시스는 얻을 수 있었으나 영원한 생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마치 나의 노력과 주님을 감동시킴으로 내가 구하는 무엇을 얻을 줄로 생각하였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기적이 성령의 역사요 그것이 진정한 신앙이며 영원한 생명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눈에 보이는 것을 쫓아다니는 생명 없는 자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를 심판하셨고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알게 하셔서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나이다.
나를 영생으로 인도해주신 우리 주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안에서 말씀으로 연합하여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는 그 은혜 안에 살아가오니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리나이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