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의자 몇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서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주리 삶은 돼지다리에선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나는 아버지가 시켜주신 비곗살 달콤한 돼지고기를 씹었지.
벌건 국물에 고기 띄운 국밥이 아닌, 살코기로 수북이 한 접시를(!)
꺽꺽 목이 맥히지도 않고
아버지가 단번에 꿀떡꿀떡 넘기시던 막걸리처럼
맥히지도 않고, 이게 웬 떡이냐 잘도 씹었지.
뱃속에서도 퍼뜩 넘기라고 목구녕으로 손가락이 넘어왔었지.
식구들 다 데리고 올 수 없어서
공부하는 놈이라도 한번 실컷 먹인다고
누이 형제들 다 놔두고 나 혼자만 살짝 불러 먹이셨지.
얼른얼른 식기 전에 많이 묵어라시며
나는 많이 묵었으니까 니나 묵어라시며
스물여섯에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남몰래 울음 삼켰지.
돼지고기 한 접시 놓고 허겁지겁 먹어대던 그날
난생 처음 아버지와의 그 비밀잔치 때문에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일이 떠올랐는지 몰라도
지금도 서문시장 지나기만 하면 그때 그 선술집에 가서
아버지와 돼지고기 한번 실컷 먹고 싶어 눈물이 나지.
그래서 요즘도 돼지고기 한 접시 시켜놓고 울고 싶어지지.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배창환 선생의 시입니다.
첫댓글 배창환 시인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예, 대부분의 시인들이 그렇지만 참으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지요.
참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 땅의 가없는 사랑으로 한 생을 마감하신 넋들로 저리도 가을빛이 푸르고 영롱하겠지요...
아~! 이게 시였군요... 마니 봤는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