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상징계에 뻑큐를 날리는 자이다. 예술가는 실재계에서 그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는 고통을 통하여 그 자신의 스타일로 상징계에 구멍 난 곳을 메꾸는 자이다.
이 구멍이 빈 공백이다. 이 구멍 난 곳을 그 자신이 인식하면 예술가는 실재계에서 자기 스타일의 예술적 표현으로 구멍을 메꾼다. 이 구멍을 메꾸는 방식은 상징계가 정한 금기를 깨는 방식으로 표현되고 진행된다. 예술에서 소설은 시보다 뒤늦게 예술에 합류했다.
예술은 소설을 예술로 대하지 않는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예술 역시 그리스 시대 말기를 지나면서 점차로 철학 그리고 신학에 의해서 예술 그 자체의 지위가 하락되었다가 중세 이후, 점차로 제 위치를 찾아갔다. 대중소설이라 폄하되던 소설은 어느덧 예술의 지위를 얻었다. 그런데 문학은 또 영화나 사진을 대중문화라고 하여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니체만 해도 괴테 문학에 대한 학과과 대학에 만들어진 것을 비판했다. 괴테가 싫어서가 아니라 소설에 대한 평가, 즉 낭만주의에 대한 니체 자신의 평가에 기초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는 예술로 인정받는다. 예술은 그 자체에서 계속 새로 생겨난 형태를 차별하면서도 차이화를 통하여 예술에 귀속되어 갔다. 여기에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결국 예술은 삶 그 자체를 포괄하는 의미로 나아갔다. 취향의 예술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삶 그 자체가 예술과 함께 가려면 섬세해져야 한다. 예민함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예민함은 편안함으로 나아가려는 하나의 도구이다. 홈 페인 곳을 매끄럽게 만드는 도구로서의 예민함이기 때문이다. 예민함만이 구멍을 포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떤 예술가가 표현하면, 상징계의 구멍을 볼 수 있게 된다. 은폐된 곳이 낯설게 발견되는 것이다. 발견된 구멍들은 바로 상징계(법, 도덕, 언론, 종교)가 가리고자 하는 것들이다.
이 은폐된 것들은 억압이다. 무수하게 모습을 바꾼 억압이 있다. 이것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다. 니체의 철학을 라깡식으로 말한다면, 실재계에서 상징계를 타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타도가 실상은 치유인 것이다. 구멍 난 곳을 메꾸면 매끄러워진다. 홈 페인 곳은 매끄러운 표면이 된다. 그럴 때 사람은 중력에서 벗어나 가벼워진다. 난쟁이에서 거인이 된다.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표면의 결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곧 '숭고'한 감정을 준다. 고양되는 것이다. 즉 그 자신이 느끼는 환희감은 숭고의 감정처럼 정화되어 있다. 순수성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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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예도 샘의 가천대 조소과 특강이다. 다소, 소리가 안 들리는 부분도 있다. 특강을 그대로 녹화촬영한 것이므로 감안해야 한다. 해서 예도 샘 강의 내용을 참조하여 일어나는 내 생각을 통하여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이렇게 강의로 보고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 니체 낭독과도 잘 맞아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다. 우리는 이런 사회 현상에서 그러한 부분을 수용하고 살아야 한다. 누군가 그 무엇을 규정해 주는 사회가 아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그 자신의 세계가 중요해졌다. 혹자는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을 보면 언제나 타인과 그 자신은 관계 맺어져 있다.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에티켓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재의 모습이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만 보고 살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그 자신 안으로 파고드는 시대가 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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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에 맞서며 나아가는 형태는 '예술'적인 형태밖에 없다. 그 형식을 그 자신 안에 탑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예술만이 실재계와 상징계의 교량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하여 바로 그 사실을 선포한 것일 것이다. 헤겔 이전에 이미 선과 악, 이성과 광기, 진리와 비진리의 경계가 무너짐으로 인해서,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서는 '분열된 의식'이 등장한다. 신은 죽었고, 예술의 세계관을 통해서 '아픔'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다. 이때 니체가 나타났다.
"예술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
분리된 고통의 치유로써 '예술'이 그 빈 자리를 메꾸게 되었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통하여 예술의 시대가 열렸다. 법과 제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창작의 세계가 도래하게 되었다. 자유롭게 이 대지를 밝힐 수 있는 것은 예술가들이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철학의 고속도로가 쫙 뻗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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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으로 강의 내용과 내생각을 혼합하여 정리를 마쳤다. * 미진하거나 오류가 있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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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_예술에_포함될_것들이_더_늘어난다_취향의예술시대에서_그자신의세계를_만드는_것_역시_예술적_행위다
*사진은 유튜브 특강 영상 캡처한 것입니다.
<예도 샘 가천대 특강 1>
https://youtu.be/G0dG2tsiEb0?si=thXipLNRxV2wusZb
<예도샘 가천대 특강 2>
https://youtu.be/gQImmANyiH4?si=kMNXnndAXzj2rAnP
<강의에서> 선과 악, 이성과 광기, 진리와 비진리는 이미 유럽에서는 경계가 무너졌다. 악/광기/비진리가 인간의 본성이다.
* 이것을 제약하고 억제하도록 인간은 그토록 오랜 시간 인간에게 고통을 가하여 각인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특정한 것들이 지배하게 되고 억압이 나타났다. 이 경계를 깨는 금기를 드러내는 것은 예술적 표현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술을 보며, 안전하게 어떤 해방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문학과 영화 그리고 사진 등의 예술을 통하여 그 금기를 깬 세계를 지각하게 되고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