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아침 論壇: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는 反轉의 思考 - 다름을 인정하고 易地思之하면 다툼이 없어진다.
인간들이 겪는 모든 시비.갈등. 전쟁과 투쟁의 이면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이에는 인간생존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종교가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 후 부채질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보듯이 인류사에서 일어났던 모든 전쟁 중의 95%는 이들 종교가 그들 교리를 지키기 위해서, 또 일부 교직자들의 私慾으로 맹목적으로 神을 숭배하는 猛信的이면서도 우매한 교인들의 맹목적인 신앙심을 충동질하고 부채질하면서 일으켰던 있지도 않는 神을 팔아먹는 소위 '神팔이 종교전쟁'이다. 해서 종교는한번 빠져들면 벗어날수없게 중독되는 마약이기에 아편과 같다.
인류가 각기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함으로서 갈등과 투쟁을 지양하고 평화롭고 調和롭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實體가 없는 단순 추상적 개념인 神을 각자의 입장에서 猛信토록 만드는 종교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부부간, 부모간, 이웃간, 친구간, 남녀간, 노소간, 민족간, 종족간, 국가간의 갈등과 시비와 전쟁은
모두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이 根低에 깔려있으면서 야기하고, 여기에 종교가 기름을 붓고 부채질 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상대방의 배려가 부족하거나 오해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이와 비슷한 뜻으로 孟子의 離婁編을 보면 '易地則皆然'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처지나 경우를 바꿔도 누구나 하는 행동은 똑같다는 의미다.
孔孟之道라고 해서 孟軻와 함께 유교의 양대축이자
始祖인 孔丘의 입장에서 보는 역지사지는 다른 사람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나의 이야기를 경청하듯이 나도 상대 의견을 경청하라는 것으로 본다.
본래 이 역지사지는 하우와 후직의 일화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 중국에는 하우와 후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높은 벼슬에 올랐기 때문에 나라를 돌보느라 몇 년 동안 자신의 가정을 돌보지 못하고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집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한번 들렸다 오라고 요청했지만 하우와 후직은 자신들이 쉬면 백성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며 대답했다.
"내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면 몸은 편하지만 그동안 백성들은 고통을 겪을 수 있네"라면서.
훗날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보다 백성을 위해서 노력했던 하우와 후직을 칭찬했고 중국의 대학자 공구는 하우와 후직뿐만 아니라 덕의 실천에서 가장 뛰어났던 제자 안회를 칭찬했다.
"안회는 세상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산다고 하여 하루에 밥 한 그릇과 물만 먹으면서 살고 있으며 이는 과거 하우, 후직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가 본받을 필요가 있다."
공자는 수많은 제자들 중에서 안회를 유독 아꼈기 때문에 친척 관계라는 설도 있으며 덕을 쌓으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역지사지(walk in someone’s shoes)'를 쉽게 풀이하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는 뜻이지만 에티켓이 없는 사람에게 매너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처럼 역지사지가 필요한 사람들은 본인의 잘못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역지사지란 말과 비슷한 成語를 찾는다면, 공자의 '推己及人(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친다)'이나 전술한 孟軻의 '역지즉개연(사람의 처지나 경우를 서로 바꾸어 놓으면 그 하는 것이 서로 다 같게 된다)', 朱熹의 '將心比心' 또는 청나라 林則徐의 '設身處地(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다)'가 있다. 이 모두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라는 속뜻을 품고 있는 말이기에 기기기익(己飢己溺: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여기는 마음)을 의미한다고 볼수있겠다.
이 역지사지에 반대되는 사자성어로는 '我田引水( 자신의 논에만 물을 끌어쓰며 본인의 이익만 생각함)로 인간의 욕심을 극대화시킨 말이 되겠다.
옛말에 安貧樂道라고 했듯이 마음이 편하면 초가집도 아늑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로운 법이다
또 성실하면 지혜가 생기지만 성실치 못하면 있는 지혜도 흐려지고 실패하는 법이다.
사람人字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혼자서는 못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람과 부댓끼면서 살아가야 한다. 해서 關心을 없애면 다툼이 없어질줄알지만, 기실 다툼이 없으니 남남이 되고 만다.
간섭을 없애면 편하 게 살 줄 알았지만, 외로움이 뒤쫓아 왔다.
바라는 게 없으면 자족할 줄 알았지만 삶에 활력을 주는 열정도 사라지고 말았다.
불행을 없애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무엇이 행복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말았다.
이같이 나를 불편하게 하던 모든 것들이
실은 내게 필요한 것들인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살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보람있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듯이
결국 행복도 선택이고, 불행도 나의 선택이다.
사람들에게 " +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 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
이라고하고, 목사는'십자가', 교통경찰은 '사거리',
간호사는 '적십자', 약사는 '녹십자' 라고
대답한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 에서 바라보기때문이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니고,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기에 '틀림' 이 아니고 '다름' 의 관점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겸손히 언행하며 베품을 즐기는 사람은 주위에 사람이 따르고, 이기적인 사람은 비평과 외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아직도 늦지 않다.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할려면 지금부터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易地思之하면서 살아가야만 한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