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덕궁(昌德宮) 낙선재(樂善齋) 일원은 1847년에 헌종(憲宗)이 서재 겸 사랑채로 지은 낙선재와 이듬해 낙선재 동쪽에 이웃하여 지은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를 하나의 권역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또한 낙선재 일원에서는 순종(純宗)의 비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가 1966년까지 살았고 영친왕비(英親王妃) 이방자 여사와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德惠翁主)가 1989년까지 머물렀습니다.
낙선재 일원 배치도
낙선재로 들어가는 솟을대문은 장락문(長樂門)입니다.
현판의 좌측 하단에 대원군장(大院君章) 낙관이 새겨져 있어서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대부(士大夫)집 사랑채에 해당하는 낙선재(樂善齋)는 누마루가 잇대어진 'ㄱ'자 모양의 건물로 헌종(憲宗)의 생활공간입니다.
낙선재(樂善齋) 현판은 안쪽에 보소당(寶蘇堂)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습니다.
이는 낙선재를 건립한 헌종의 당호(堂號)입니다.
낙선재와 맞대어 있는 동쪽의 석복헌(錫福軒)은 헌종이 후궁인 경빈김씨(慶嬪金氏)를 위해 지었으며,
순종황제가 승하한 후 순정효황후 윤비(純貞孝皇后尹妃)가 이곳에서 1966년까지 은거하다가 별세하였고,
영친왕 비(妃)인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거처하다가 1989년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석복헌 대청마루의 들어열개문인 분합문(分閤門)을 활짝 열어서 후원까지 훤히 보입니다.
석복헌 동쪽의 수강재(壽康齋)는 나이 어린 헌종을 대신하여 나랏일을 돌본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의 왕비)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광복 후 일본에서 돌아온 덕혜옹주(德惠翁主)가 77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거처하였습니다.
수강재의 대청 분합문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낙선재 뒷편으로 돌아가면 헌종이 사랑하는 경빈김씨(慶嬪金氏)를 위해 조성한 아름다운 화계(花階)가 있습니다.
지금 작약(芍藥)이 제철을 만나 활짝 피었습니다.
화계에는 도교(道敎)의 신선사상(神仙思想)과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의미하는 괴석(怪石)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낙선재 누마루는 네모문-만월문(滿月門)-네모문으로 중첩(重疊)되어 이어지는 차경(借景) 너머로 작약이 활짝 피어납니다.
뒷쪽 화계에서 본 모습
괴석(怪石)을 받치는 석함(石函)에는 소영주(小瀛洲)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는 신선이 사는 삼신산(三神山)인 봉래산(蓬萊山, 금강산), 방장산(方丈山, 지리산), 영주산(瀛洲山, 한라산) 중의 하나인 작은 영주산을 표현한 것으로 이곳이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또다른 괴석의 석함에는 봉황이 날고 있습니다.
기와지붕 위에 세 개의 연가(煙家)를 올린 굴뚝의 앞면에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수(壽)자가 씌어져있는데 중간 부분에 만(卍)자 두 개를 교묘하게 연결하여 놓았습니다.
정원(庭苑)에는 연못을 조성하여야 하지만 좁은 공간에는 돌로 연못을 만들어서 배치를 합니다.
네모난 석연지(石蓮池)에는 '금사연지(琴史蓮池)'라고 적혀있습니다.
이는 '거문고(琴)를 타면서 역사(史)를 읽는 벼루(硯) 모양의 연못(池)'라는 뜻으로 한가롭기를 바라는 염원입니다.
작약이 활짝 피었습니다.
함박꽃이라고도 부릅니다.
헌종이 사랑하는 경빈김씨를 위해 조성한 아름다운 화계의 모습
낙선재 누마루 아래 아궁이 벽면에는,
깨진 얼음조각 모양의 빙열문양(氷裂文樣)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화재를 예방하는 상징성을 표현합니다.
누마루 문창살은 크고 작은 아(亞)자를 새긴 아자살을 달았습니다.
낙선재 대청마루 위의 광창(廣窓)에는 아(亞)자살과 빗살을 혼합한 문살을 설치하였습니다.
안방문은 화려하게 장식하였는데 가운데 큰 네모의 각 모서리에는 박쥐 문양을 장식하였습니다.
대청마루와 안방을 가로지르는 창살에도 박쥐 문양을 넣었습니다.
문창살의 네 모서리에는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을 넣었는데 박쥐는 한문으로 편복(蝙蝠)이라고 하므로 발음이 같아서 복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만(卍)자살 문양도 넣었습니다.
행랑채에는 세로살은 꽉 채우고 가로살은 위•아래와 중간 부분에만 채운 가장 일반적인 세살창(細箭窓)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가로와 세로살을 꽉 채운 문간채의 만살(滿箭)은 교묘하게 다이아몬드를 만들었습니다.
낙선재에서 안채인 석복헌(錫福軒)으로 가는 협문 내외담은 거북이 등껍질문양인 귀갑문양(龜甲文樣)으로 장식하였는데 장수(長壽)의 상징입니다.
석복헌의 서측면은 다락방 아래에 부억을 설치하고 환기를 위한 살창을 두었습니다.
왼쪽의 낙선재와 오른쪽의 석복헌 사이에 후원으로 가는 협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대청마루 옆 안방문은 아자살창(亞字箭窓)으로 장식하였습니다.
건넌방문도 아(亞)자문살 입니다.
행랑채에는 돌로된 팔각기둥을 세우고 교란(交欄, 난간)과 헌함(軒檻, 쪽마루)을 설치하였습니다.
'복을 내리는 곳'인 석복헌의 아(亞)자 문양의 난간에는 복(福)을 상징하는 박쥐와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호리병 문양을 장식하여 경빈김씨의 출산을 염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과 2년 뒤에 헌종 임금이 23살의 젊은 나이로 승하함으로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끝이 나고 맙니다.
안방 옆에는 간단한 음식을 조리하는 부엌이 있고 판문(板門)과 환기창살을 설치하였고 윗쪽 다락방에는 세살창을 달았습니다.
행랑채의 세살창
석복헌에서 동쪽 수강재(壽康齋)로 넘어 가는 문은 접이식 판문(板門)으로 되어 있습니다.
수강재 대청마루의 광창(廣窓)은 빗살문양입니다.
안방문은 아(亞)자살 문양입니다.
수강재의 헌함은 장주초석(長柱礎石) 위에 낮은 각기둥을 세워서 올렸습니다.
수강재 행랑채는 간격이 넓은 만살창(滿箭窓) 입니다.
행랑채 창호의 문살도 만살창 입니다.
판문 위에는 숫대살로 장식하였습니다.
살창 장식(裝飾)
문을 여닫는 용도의 문고리와 문고리를 고정시키는 배목(排目)과 국화정 장식을 달았습니다.
문고리에 자물쇠를 채워서 출입을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문고리 위, 아래에는 판문 부재를 고정시키는 정자쇠(丁)와 국화꽃 모양의 국화정(菊花釘)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문짝을 고정시키는 돌쩌귀
문간채 벽에 설치된 두 개의 굴뚝과 화단의 두 그루 감나무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낙선재의 모습입니다.
# 아름답고 넓은 후원 때문에 다른 궁궐보다 왕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창덕궁(昌德宮)의 가장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낙선재 일원은 최근까지 대한제국 왕실의 가족들이 살아온 곳입니다.
한번쯤 방문하여서 그들의 체취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참고자료
[문화유산해설과 궁궐-궁궐문화원]
[알기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김왕직]
첫댓글 강호인선생님 창덕궁 낙선재의 다양한 창살문양과 내실 후원 구경 잘 했습니다. 한옥용어사용도 유려하시고 사진각도도 훌륭하십니다.
설명과 사진을 맞춰보며 낙선재권역 다시 공부합니다.
인생도처 유상수라더니 강호인선생님께 어울리는 말인가봅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안내 설명문을 옮겨 적은것 뿐입니다.
잘 보아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창덕궁 낙선재를 구석구석 아름답게
보여주고 설명까지 해주셔 감사합니다
좋은공부 됩니다^^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가 내려서 작약이 더욱 차분하게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자세한 설명과 훌륭한 사진
덕분에 낙선재 공부를 다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화려한 작약이 핀 계절이고 비까지 내려서 더욱 운치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