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왕기상 서론
(1) 제목
고대 히브리어 정경에는 본래 열왕기서가 상하 구분없이 한 권으로 취급되었다. B.C. 3세기경 70인역 번역자들은 70인역의 편집 과정에서 상하 두 권으로 분리했다. 그리고 오늘날 처럼 열왕기서가 분리된 것은 1517년 봄베르그에 의해 출판된 히브리 성경 초판(the Rabbinic Bible, Venice, 1516-1517) 이후부터 였다.
(2) 저자
저자에 대한 견해는 (1) 선지자 예레미야로 보는 견해와, (2) 예레미야와 동시대 인물인 익명의 선지자적 역사가로 보는 견해가 있다.
(3) 기록 연대
기록 연대는 대략 B.C. 562/561~537/536년 경이다.
(4) 주제
열왕기서는 결코 세속사나 민족사가 아니라, 선민을 통치,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신정사요 종교사란 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성실도 여하에 달려 있었으며, 열왕들의 통치 성공과 실패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 여부에 따라 결정됨을 보여준다.
1-4절. 다윗 왕의 노환(老患)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본서 저자가 초두에 다윗 왕의 노환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다윗 왕이 노환으로 인해 더 이상 국정(國政)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아도니야가 다윗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반란을 꾀하게 되는 배경을 알려 준다. (2) 같은 맥락에서 다윗 왕의 서거(逝去) 이전에 솔로몬이 급히 즉위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제공해 준다(J. Hammond). 한편 노환으로 인한 다윗의 나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 본문은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느끼게 해준다.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윗은 실로 파란 만장한 세월을 살았다. 이스라엘의 왕이된 이후에도 다윗은 많은 날들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고 성전 건축의 기반을 다지는 등 명군(名君)과 성군(聖君)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 그러나 그 영화로웠던 세월들도 유수처럼 흘러 지나가고, 이제 다윗은 칠십 노인이 되어 바야흐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되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므로(2:11, 대상 29:27). 이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 ‘나이가 많아’(히, 바 바야밈)와 ‘늙으니’(히, 자켄)는 종종 같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관용어이다(창18:11, 24:1, 수 13:1).
이불. ‘이불’로 번역된 히브리어 ‘베가드’는 원래 ‘덮개’(covering)란 뜻을 가진 단어로서 의복, 겉옷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창 39:12, 왕상 22, 10) 침상이나 탁자를 덮는 어떤 것이란 뜻으로 사용되기 한다(삼상 19:13, 민 4:6). 여기서는 침상을 덮는 이불로 사용되었다(Hammond, Keil). 왜냐하면 다윗은 쇠약하여 침실의 침상에서 줄곧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15, 47절).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몸의 온기가 떨어진 것은 단순히 나이 많음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다윗의 젊은 날의 고생 때문이기도 하다(Keil). 혹 병이 들었는지도 모른다(Hammond). 여하튼 다윗은 초기에는 외부적으로 망명 생활, 숱한 전쟁 등으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었으며, 말년에는 내부적으로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다. 더욱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징계로 겪었던 집안의 불화는 결정적으로 다윗을 노쇠케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말년에 노환(老患)이 되어 다윗을 쇠약케 만든 듯하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한편, 본서 초두에서 이처럼 다윗의 몸의 증세를 상세히 알리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라를 통치하기에 어렵게 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