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상통보관 1호 김동완 기상캐스터 별세
45년간 날씨해설가로 날씨따라 인생 살아간 인물
1967년 어업 기상통보관으로 방송전파 타기 시작
우리나라의 기상통보관 제 1호인 ' 노루(老淚) 김동완(35년생,金東完) 전 기상청 기상통보관이 지난 9월 15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故 김동완 통보관은 7,80년대 하늘과 구름과 바람을 풍미했던 기상 캐스터로 어느 연예인보다 인기가 높았다.
김 통보관은 1935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전두환 전 대통령의 2년 후배)를 졸업하고 공군하사관학교를 나와 공군복무를 했다.
서울대 사대 원서를 접수하러 서울로 상경하던 중 우연이 국립중앙관상대 모집 공고를 보고 관상대 시험에 응시 15대 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기상통보관으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58년12월,중앙관상대 공채 8기,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 1기 수료)
우연은 인간의 삶을 이렇게 궤도를 돌려놓기도 한다.
국제대학 법학과를 졸업(63년)하고 1982년까지 예보분석관,통보관,예보과장을 지냈는데 일기예보와 해설은 1967년부터 KBS라디오 어업 기상통보관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했으며 본격적으로는 1970년대였다, 기상통보관으로 국민훈장을 받았다.
김동완통보관으로 기상청 최초의 인기스타가 되면서 방송국들이 치열한 영입공방속에 23년간의 기상청을 떠나 1982년부터 10년간 문화방송 보도국 보도위원으로 활약한다.(70년대 후반에는 동양방송(TBC)에서 날씨에보를 맡기도 했다) 199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한국일기예보회장(97-99년)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김종필 총재의 적극적인 권유로 자민련 김천지구당 위원장으로 선거에 돌입했으나 결국 30억원의 재산만 탕진하게 되었다.
기상정보 케이블 TV웨더뉴스채널의 기상뉴스를 진행하기도 했다.(2000-2002년)
통보관이란 호칭은 기상청조직에서는 없었으나 팀장,사무관,서기관,과장등의 호칭이 대중과 거리감이 있어 KBS방송국에서 임의로 개칭한 호칭이 통보관이었다. 기상청에서는 예보국 산하에 예보관 직제를 사용하고 있다.
故 김동완통보관이 평소의 기상인으로서 남긴 날씨와 관련한 소신발언을 모아보았다.
◾일기예보는 뉴스가 아니라 정보가 돼야 한다◾기후는 사람의 외모,성격,말씨도 바꾼다◾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과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날씨는 하루에도 서른여섯 번씩 변한다. 봄 날씨는 하루에 세 번 변한다◾요즘의 일기예보는 너무 단조롭다. 시청자들이 날씨를 활용할 수 있게 안내를 해 주어야 한다◾우리나라는 미모의 여성 캐스터들이 일기예보를 담당하고 있지만 선진국은 전문가들이 나와 정보를 준다◾날씨의 변화가 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에는 형용사가 많다◾느낌이 달라지니까 표현도 달라진다. 노란 것을 ‘노랗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노리끼리하다로 표현하고, 빨간색은 빨갛다, 벌겋다, 불그스름하다, 새빨갛다로 다양하게 표현한다.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에 장마철이라는 계절이 하나 더 있다. 1년이 5계절인 셈이다. ◾기후 변화가 심하면 머리를 많이 쓰게 된다. 생각을 많이 함으로써 사고력이 풍부해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것이 변화무쌍한 기후 덕이다◾각종 기기를 제작할 때 건조한 곳에서 만들어야 불량품이 덜 나온다. 미국은 기기 제작소를 사막에 설치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구에 섬유공업이 발달했던 이유가 대구의 기후가 그 산업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상청은 중요한 기관으로 인정을 못 받았다. 우리 일은 양지에서 하는 것이 아닌 음지에서 하는 것처럼 느꼈다 ◾ 예보는 100%가 없다. 확실하다면 확보라고 하지, 왜 예보라고 하나◾우리나라 기후로 볼 때 5월이나 10월 중에 휴가를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람은 섭씨 20도부터 더위를, 30도 부터는 고통을 느끼며 더위는 빙과류로, 고통은 차가운 음료수로 해결하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무더운 여름을 지혜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날씨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불쾌지수가 높다고 하지 말고 상쾌지수가 약간 낮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여름철에는 부부싸움이 많기 때문에 각자 말조심하는 것도 가정에 도움을 준다◾겨울철 실외온도가 섭씨 0도일 경우 무릎위 20㎝가량 올라간 미니스커트를 입었다면 체감온도는 영하 4도이며 1㎝씩 올라갈 때마다 체감온도는 0.5도씩 더 떨어진다◾겨울철에 미니스커트를 자주 입는 여성은 생리적 부담으로 임신했을 때 순산하기가 어렵다◾여름철 복날은 노동자의 보건일로 경륜이 높은 정치가가 노동자를 위해 베푼 선정에서 비롯됐다.
기상통보관으로서 숨겨진 일상의 에피소드중에는 1950년대 후반 기상 업무가 생소하던 시절 관상대 다닌다고 하면 시골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이 관상 보는 일을 한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조선시대 기상업무를 담당한 정부 기구는 관상감이나 서운관이 있었다. 영의정 산하의 고위 관서로 대우가 높았다. 1948년 국립중앙관상대가 발족했다.)
예보관 시절 퇴근한 뒤에는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매일 1시간 정도 하늘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예보가 적중할지 궁금하고 불안해서이다. 이에 부인으로부터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햇다.
가방에 우산을 항시 넣고 다녔는데 그것은 기상통보관이 비 오는 날씨도 모르고 비 맞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서이다.
45년 동안 ‘날씨해설 인생’이라는 흔치 않은 길을 걸었던 김동완통보관에게 묻고 싶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래 생활의 지혜를 알려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후배기상인들은 김동완 통보관은 어려운 기상과학 정보를 알기쉽게 대중화를 이룬 분이라고 말한다,
유족은 1남4녀로 김정선·김정경·김정미·김미경·김수영(아들)씨와 사위 강동수·구수회·윤성우·론씨, 며느리 이경민씨 등이 있으며 김포 문수산 나무 곁에 안장되었다.
(환경경영신문www.ionestop.kr김승배 기상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