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8.9) 오후에 아내가 소리를 쳤습니다.
생쥐가 방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파리채 2개를 들고
바퀴벌레 스프레이를 책장밑, 침대밑 등 구석구석 뿌리며
생쥐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약냄새인지 책장 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파리채를 휘둘렀지만 방을 빠져나와
옆에 있는 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독안에 든 쥐" 라는 말이 생각이 나서
내 방문을 닫고 스프레이를 뿌리며
주변에 널려있던 옷가지, 작은 상자 등을 치우고
생쥐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긴 막대(목검)도 동원했습니다.
침대와 장농밑을 훑기 위해서 였습니다.
하지만 생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구입해 놓은 쥐덫(끈끈이)을
몇 군데 설치하고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 창틀(주방과 연결된)로 무언가 어른거려 보니
생쥐였습니다.
그래서 잡으려고 거실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지만
역시 생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청소기를 들고 방과 거실을 청소했습니다.
작은 물건들을 옮긴 자리와
구석구석 목검으로 쓸어내린 먼지 등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잠을 자는데도 맘이 편치않고
생쥐생각이 계속 났습니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자 내 방 구석에 놓인 쥐덫을 가지고
주방에 놓으려고 장소를 찾던 중
냉장고와 냉장고 사이에 놓으려고 본 순간
가느다란 꼬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아내가 놓은 끈끈이 덫에 걸린 것입니다.
꺼내서 사진을 찍고 어떻게 처리할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된 쥐는 징그럽고 혐오스럽지만
어느 동물이나 그렇듯이 생쥐는 불쌍해보이고
귀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꺼내서 밭 주위에 놓고 꺼내주려고 하였지만
너무 단단히 붙어있어 불가능했습니다.
불쌍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잠시 쥐를 귀엽게 형상화했던 미키마우스가 생각나서
사진 몇 개를 찾아보았습니다.
한때 즐겁게 시청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주택을 짓고 전원생활을 하다보니
집안에서 귀뚜라미 소리도 자주 듣습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잡아서 밖으로 던져 살려주지만
또다시 들어와서 노래를 합니다.
그냥 같이 사는 것이 편해
요즈음은 그냥 둡니다.
그런데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몇 년전 눈이 내린 아주 추운 겨울에는
예쁜새가 우리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지요.
문을 열어보니 문 앞에 새가 있었는데
유리문에 부딪쳐 잠시 기절한 것입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어 집안으로 갖고와서
정신이 들게한 후 살려준 적도 있습니다.
도시에 살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요즈음은
하느님의 창조물인 동식물과 가까이 접하게 됩니다.
전에는 해로운 곤충들은 죽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잠시 망설이기도 합니다.
몇년 전 포스팅했던 글을 공유합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
지난 8월에 개밥을 주다가
거미줄에 잡혀있는 매미 한 마리를 보았다.
날개를 퍼덕여도 보고 애절한 울음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살려주려고 다가갔다.
손을 뻗치는데 거미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그래도 거침없이 매미를 떼어내고 날개를 깨끗하게 닦아 주자
매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아갔다.
"한 생명을 구했구나!" 생각하며 손을 씻는데
마음이 영 편하지가 않았다.
하느님의 일에 내가 개입한 게 아닐까 싶어서
자꾸 뒤가 켕겼다.
매미가 걸렸을 때 거미는 이렇게 기도했으리라.
"주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대로 매미는
"주님, 이 죽음의 구렁에서 저를 빼내 주소서." 하고 기도했으리라.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끼어들어 매미를 떼어내자
거미는 "주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탄식을 기도를 바치고
매미는 "주님께서 나를 죽음의 올가미에서 풀어주셨다."하며
찬미의 기도를 올렸으리라.
생각해보면 그들이 바친 기도는
모두 한 분이신 같은 하느님이었다.
여기에서 나의 편치 않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었다.
내가 한 일은 과연 옳은 일이었나 잘못한 일이었나?
마음은 가지를 뻗고 뻗어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까지 이르렀다.
그들이 애원하며 도움을 청하는 하느님이 바로
우리가 감사와 찬미를 바치는 같은 하느님인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미어져 왔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과 판단으로
하느님의 뜻을 재단하고 요구하며 더 나아가
우리 입맛에 맞는 하느님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가?
그 거짓 하느님 앞에서 예배드리며
자기의 신앙적 만족만을 쫓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참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싸매어 주고 돌보시느라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계시는데....
우리의 헛된 찬미의 노랫소리에
하느님의 절규는 공허한 메아리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경험 후에 나의 기도는
<하느님, 당신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에서
단순히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로 바뀌었다.
첫댓글 아멘 🙏🏼
동물,곤충 들 까지 생각하고 염려하시고 하느님 마음까지 헤아리시는 형제님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