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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眞/繪畵 스크랩 `천년학`의 고장 `선학동 마을`과 `소설가 이청준 생가`에도 봄은 오고 있었다.
isunamana 추천 0 조회 1 14.04.09 23: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봄이 오면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천년학의 고향 선학동 마을이었는데

봄이 시작되고 여기저기 꽃 소식이 들릴 때여서 달려가 보았다.

노란 유채꽃이 아직은 이르고.. 몇 군데 피어있었지만

듬성듬성 피어 나름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이곳의 유채꽃은 4월 말이면 무척 장관을 이룬다고 하였다.

나는 일찍 다녀와서 그런지 유채밭 장관은 담지 못하였지만

선학동 마을과 이청준 생가, 천년학 촬영지를 돌아보고 왔다.

 

 

 

 

 

전남 장흥의 끝... 바닷가 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임권택 감동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이 바닷가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천년학은 고 이청준 선생의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명작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2007년에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곳이 바로 고향 마을 선학동 마을이다.

 

 

2012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돌아보면서 실감할 정도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여유롭고 한가롭게 마을을 거닐어 볼 수 있었던 느낌은

정말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이곳 선학동 마을은 봄에는 유채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온통 하얀 메밀꽃이 온 마을을 감싸 안은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올가을엔 메밀꽃을 보러 다시 달려가야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선학동 마을 유래

고려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조양임씨가 지금의 이회진에서 입촌하였고, 조선후기에 청주한씨 사경이 회진에서 이거 하여

마을이 크게 번성 하였다하여 회진면에서 가장 높은 공지산 아래에 위치하여 산저라 부르다가

2011년 산저를 선학동으로 개칭하여 불리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패밀리가 떴다''일지매''화첩기행'등의 tv방송 촬영이 이뤄지고

각종 매스컴과 선학동 마을 인터넷카페를 통해 소개가 되어 많은 분들이

이곳 선학동 마을을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선학동을 방문하여 체험로를 걸으면서 소설'선학동나그네'를 읽을 수 있도록 100개의

표지판에 나누어 적어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선학동:고 이청준 선생의 작품'선학동 나그네'의 작품 배경이 된 마을로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은 한 마리 학으로 물 위를 떠돌았다

선학동은 그 날아오르는 학의 품 안에 안겨진 마을인 셈이다

동네 이름이 선학동이라 불리게 된 연유이다.

 

 

 

 

 

유채꽃이 듬성듬성 핀 언덕에서 내려다본 선학동 마을 풍경과

미세먼지로 약간은 흐릿한 날씨였지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봄 빛깔이 파릇파릇 예쁜 들녘도 눈앞에 안기고...

저 멀리 바다도 보이고, 봄 향기와 바다향기가 어우러져 묘한 어지럼증을 주고 있었다.

아마도 봄에 취한 이 느낌이 아니었나 싶었다.

 

 

 

 

 

이청준 생가로 가는 길에...

 

이청준의 단편 '눈길'에 등장하는 집이 선학동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청준 생가는 산자락에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을 더 깊이 들어가야 보였다.

 

'눈길'의 줄거리는 도시로 공부하러 나간 아들이 고향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달려온다.

집은 사람의 흔적 없이 썰렁하고, 알고 보니 어머니가 아들에게

'저녁밥 한 끼를 지어 먹이고 마지막 밤을 지내게 해주고 싶었고'

'하룻밤만이라도 옛집의 모습과 옛날 같은 분위기 속에 맘 편히 눈을 붙이고 가게

 해주고 싶어 집주인의 허락을 얻어 빈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청준은 고교 시절 이미 팔려버린 집에서 어머니와 하룻밤을 보낸 뒤

십여리 눈 오는 산길을 걸어나가 어머니를 어둠 속에 세워둔 채 혼자 훌쩍 버스로 올라

떠나가고만 쓰라린 이별이 소설의 배경이 된 셈이다.

 

 

 

 

 

문림의 향- 장흥의 문학인

남도민의 한과 소리를 담아낸 소설가 이청준

이 동네는 남도민의 한과 소리를 소설로 담아 한국 문학계의 큰 획을 그은

이청준 선생께서 태어나신 동네이다

선생은 1939년 이곳 진목리 472번지에서 출생하여 1594년 봄 회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이 마을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1960년을 전후하여 가세가 몹시 기울어 집까지 남에게 넘어가고

가족이 흩어진 바람에 20년 가까이 고향 마을을 찾지 못하다가, 1979년 동네 아래 해변인

갯나들에 새 가옥을 마련하고, 그동안 인근 양하리등으로 거처를 옮겨다니던

어머니와 남은 가족들이 옛마을로 돌아 오면서 방문길이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소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은 이후 그의 고향 나드리길이 현장 배경을 이룬 작품이며

특히 그의 눈길은 팔려버린 그의 생가에서 어머니와 마지막 하룻밤을 보낸 정황과 모처럼

양하리 임시 거처의 어머니를 찾은 사연을 소재로 삼아 쓴 단편소설이다.

이 밖에 이 마을 안팍 풍정과 일화가 소설의 무대나 소재가 된 나무위에서 잠자기,

아랫동네 팽나무, 심지연(마을 동쪽 고갯길가의 지봉 선생 송덕비), 침몰선, 석화촌,해변아리랑, 여름의 추상, 갯나들 앞바다,

 축제, 갯나들 가옥, 개백정(마을과 집) 등의 작품이 있다.

-마을 입구에 쓰여있던 안내문 글-

 

 

 

 

 

'눈길'의 단편 소설의 배경이 된 이청준 선생의 생가 입구..

 

 

 

 

마당 한쪽에 서 있던 이청준 선생에 대한 이야기들...

 

 

 

 

아무도 없이 텅 빈 집 마당에 서서 한동안 서성거렸다.

이청준 선생의 수많은 작품을 떠올리면서....

이 생가는 2005년 장흥군이 매입해 복원한 것이란다.

 

 

 

 

생가 마당에도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이청준 생가를 돌아보고 천년학 세트장이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이곳 회진면 선학동 마을에는 이청준 작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만든 2006년 작 '천년학' 속 주막 세트가 남아 있다.

언덕 위 빨간 슬레이트 지붕의 주막집은 낡고 주인을 잃은 채

쓸쓸한 모습이었다.

마당 앞까지 포구에 물이 출렁이는 풍경과 정말 잘 어울렸다.

 

 

 

 

나는 저 포스터 속 장면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어디론가 떠나가는 그 쓸쓸하고 아픈 뒷모습....

 

 

 

 

세트장 바로 앞에는 바다가 있고

물이 빠지고 있는 풍경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 천년학을 본 소감은 오래전이라 기억은 가물거리는데

나는 영화 속 아름다운 풍광에 반했던 기억이 더 난다.

천년학은 서편제를 보는듯한 느낌이 강했던 기억과

서편제의 모든 인물이 되살아난 느낌이 들었던 영화였다.

 

시대적으로 제주 4.3사건으로 고아가 된 송화가 홀아비 유봉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또 다른 고아인 동호와 남매도 아닌, 연인도 아닌

서로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는 대상으로 남게 되고, 동호는 많은 세월을

송화를 찾아 떠나는 것으로 보내고 송화는 두 눈을 잃었기에 더욱 소리에 매달린다.

한을 심어줌으로 더 좋은 소리를 하기 위해 송화의 눈을 멀게 했다는 홀아비 유봉,

 사실이든 아니든 예술에 대한 슬픔이 시작된다.

나는 이 천년학을 보면서 남아있는 장면들이 있다.

어딘가 늘 떠나는 뒷모습은 꿈에서도 꿈을 꾸는...

오로지 꿈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그려나간 영화였다.

 

 

 

 

천년학 이 영화의 줄거리는...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에게 맡겨져 남매가 된 동호(조재현 분)와 송화(오정해 분).

서로의 소리와 북장단을 맞추며 자라난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에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된다.

하지만 동호는 마음속의 연인을 누나라 불러야 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어 집을 떠나버린다.

 

 

 

 

 

그리고 몇 년 후, 양아버지가 죽고 송화는 눈이 먼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 송화를 누나가 아닌 여자로서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동호...
  송화를 찾아 다시 한 번 그녀의 노랫소리에 북 장단을 맞추며 눈이 되어 주고 싶은 동호는 연인의 자취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엇갈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람은 가슴 아린 잠깐의 만남과 긴 이별로 자꾸 비껴가기만 한다.

 그러던 중 동호는 유랑극단 여배우 단심(오승은 분)의 유혹에 흔들리고 마는데.

차마 동호앞에 사랑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선학동 선술집 주인 용택(류승룡 분)의 한결같은 외사랑도 뿌리치며

판소리가 동호인 듯 노래에만 열중하던 송화는 이 소식에 충격을 받아 모습을 감춰버린다.

그리고 마침내 용택의 선술집을 찾아온 동호는 자신이 미처 몰랐던 송화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영화 속에서 봤던 그 주막집....

그 풍경 앞에 서성거리는 나...

많은 생각이 오갔던 시간이기도 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그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 거나.

- 남도소리 <흥타령> 부분

 

 

천년학 세트장을 돌아보고 회령진성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나는 또 한가로이 회령진성이 있는 마을도 거닐어 보았다.

 

 

 

 

회령진성: (전남 문화재 자료 제144호)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마을의 뒷산을 이용하여 쌓은 부정형 성으로. 현재는 육지에 이어진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등의 섬들로 둘러싸여 있다.

 회령진성은 성종 21년(1490) 4월에 쌓은 만호진 성으로 남해에 출몰하는 왜구를 소탕하는 수군진이었다.

회령진이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조선 초기에 진이 설치되었다.

전쟁시에는 수군의 집결장소로 사용되었고, 평상시에는 군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의 역할을 하였다.

남아있는 성벽의 총 길이는 616m이며,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으나 지금은 모두 없어졌고, 다만 동문터가 확인되었다.

북벽은 높이 2.3∼2.5m, 너비 1.5∼2m로, 돌로 쌓은 성벽 150m와 흙과 돌을 섞어 새로 쌓은 성벽 220m로 이루어져 있으며,

너비 4.4m의 북문터가 남아있다. 서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는데, 지금 안쪽높이 2m, 밖높이 3.5m, 너비 2.2m, 길이 122m 정도이다.

남벽은 대부분 없어지고 길이 40m, 너비 2∼4m 정도의 석축이 남아있을 뿐이다.

 

-문화재청-

 

 

 

 

조선 성종 시절 최경지는 장흥을 이렇게 기록했다고 한다.

"아득히 넓은 바다로 삼면이 물인데, 푸르고 두터운 땅에는 얼마나 산이 많은고,"

장흥은 그랬다.

돌아보는 동안 두터운 산과 아득히 넓은 바다가 넉넉하게

빛났던 것을 만나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푸르고 두터운 땅 장흥에서 살아 숨 쉬는 역사와 문학을 만나고

저만치 빛나던 봄,

봄을 실컷 만나고 왔다.

 

찬란하다 못해 오히려 슬픈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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