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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화 흐린 후 갬
6시 50분에 기침을 하였다.
이상하다 자연이 이런 증세도 병이 아닐까 일어나니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는 않다.
조반을 먹고 가친께서는 과원 시비하러 첫 버스로 넘어가시고 나는 라디오 들으면서 한자쓰기 연습을 하면서 경문도 쓰고 이렇게 종일 보냈다.
오후 내일은 푸른하늘 방송을 듣고 2시 손창호 즐거운 오후 두시 재미있게 듣고 있다.
석식을 하고 TV보며 일기 쓰고 동생은 화장실 지붕 올라가는 계단 층계를 만들었다.
기성이도 함께 거들었다. 녀석 재미있는 모양이다.
부친 5시경 오셨다. 고추 종판을 다 뽑으시고 오셨다 하신다.
족친 덕남이 동창 조모님이 잠깐 집 구경 오셨다 가셨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법화경 약찬계를 다 외웠는데 오늘 외우려 하니 많이 잊어버려 끝까지 외울 수 없다.
공부가 많이 헤이해진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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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수 맑음
허전하고 쓸쓸한 하루를 보내는데 다행히 안동 종형수 백모 상망이 오늘이여서 큰집에 오셨다 가시는 길에 들려서 잠깐 두 시간 정도 절에 다닌 이야기 등을 하고 12시20분차로 나가셨다.
라디오 들으면서 반야심경 쓰며 한자쓰기도 하고 이렇게 하루가 지나가는데 아버지는 과수원을 소로 갈았으며 동생은 발코드를 사가지고 가서 바르고 저녁때 왔으며 석식이 끝나고 TV 100세 퀴즈를 시청하고 나와서 자정까지 TV 계속 시청하고 일기를 쓰고 감사 기도하는 마음으로 취침했다.
3월 23일 목 흐림
강이석 군이 결혼일이라 축의금을 부친 함께 제수씨와 가시라 하고 사진 6장 빼 오시라고 필름 찾아둔 것 천원과 드렸더니 삼촌 사진 5장을 빼나서 다시 나의사진 5장과 기성이 안고 찍은 것 한 장 더 빼가지고 2시50분경 먼저 오셨다.
나는 가신 뒤 라디오 듣고 TV 북한유학생 김모 조모 우리나라로 망명 와서 기자회견 하는 것을 보며 반야심경을 필기하고 한자연습을 하고 MBC 안동문화방송국에 엽서 퀴즈로 즐깁시다에 답 봉정사 엽서가 있으므로 써가지고 선례와 기성이 돈 백원씩을 주어서 우체통에 갖다 넣고 오라 했다.
물을 얹어 놓았다.
머리를 감고 아버지는 박위중어른과 막차로 오신다더니 주기가 많아 석식도 못하시고 그대로 주무신다.
동생 내실에서 석식을 하고 TV 시청하고 나와 자정까지 시청하고 일기를 쓰고 이석이 행복을 불님께 기원하고 낮에는 김실이 안부 전화가 왔다.
농사가 많이 더 생겨 벌써부터 바쁘게 일하는 모양이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3월 24일 금 비 10m
일어나니 비가 와서 계속 누웠더니 8시 반경 조반이 들어온다고 하여 기침을 하였으며 식후 라디오 들으면서 반야심경을 필기하고 한자연습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밖에 나가니 보리 찧어서 갖다 놓고 쓰레기 리어카에 다시 담고 계신다.
여기저기 가래침과 기성이 똥이 있어 물로 씻어 내리고 있으니 종형수 장에 오셨다.
얘기하고 있으니 상철모 장에 왔다 들려서 함께 점심을 먹고 얘기하다 가신후 카운터 보다 나와서 잤다.
MBC 퀴즈로 즐깁시다 듣고 KBS 내일은 푸른 하늘 청취하고 석식 할 때 되어 제수씨 동생 내일 대구 구미 갔다 올 때 오락게임 사 온다고 돈 오만원을 달라하여 아버지한테 가져가시라 하고 식사 끝나고 TV 계속 시청하면서 일지를 쓴다.
아무 한일도 없이 그날그날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이렇게라도 글씨를 쓰는 것이 나의 취미니까 한 편 쓰고 취침할까 한다.
불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3월 25일 토 맑음
기침을 다섯 시 50분에 하여 주전자에 물을 내려놓고 뚜껑을 닫아놓고 다시 누웠다.
7시 되어 일어나서 라디오를 듣다 조반을 하고 부께서는 과수원 메러 가시고 동생은 구미 다녀온다고 8시 50분차로 간 후 오늘도 반야심경을 쓰고 한자 익힘을 하고 밖에 나갔다.
고추 해골 팔았다 5500원 인거 제수씨 그냥 쓰라고 했다.
점심은 짜파게티 만들어 잘 먹었다.
마음이 착잡하다.
때가 되면 주는 끼니만 먹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인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날마다 생각하고 연구해도 신통한 대책이 서지 않고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기 이를 데 없다.
TV도 보고 라디오도 듣고 글도 써보고 낙서도 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이렇게 사는 것은 나에 바램이 아닌데 아직도 더 인내하고 기다려 보자.
사노라면 좋은날 즐겁고 기쁜 날도 오리라 희망을 걸고 열심히 살아 보련다.
저녁식사 끝나고 TV보며 일기를 쓰고 오늘 하루를 생각하고 반성하니 나태하고 안일한 삶인 것 같다.
부처님 용기와 희망이 솟아오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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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일 맑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을까 없을까?
요즘은 편지 쓰는 것도 그렇고 오는데도 없다.
6시 40분에 일어나서 8시경 조반을 한 후 아버지는 과수원 갈러 가시고 라디오 듣고 누웠다.
한시간 가량 잠을 잤다.
11시경에 일어나서 반야심경을 쓰고 TV 전국 노래자랑을 보다 점심을 먹고 밖에 나가서 바람을 쏘이고 있으니 오락실 보라고 하신다.
제수씨 한전 담당 직원과 배나들 과수원 관정 파놓은데 현장 답사 갔다 온다고 함께 3시반경 가셨다가
오셔서 OK 하셨다.
약 2주 후라야 된다고 하셨단다.
관정구덩이인데 한개 모타 있는데 한개 이렇게 전주를 두개를 세워야 한다고 얘기하라고 한 후 카운터 보고 라디오 듣다 분무기 짊어지고 하는 것 수리해 가지고 오토바이 타고 가는 것이 친구 진노 같은 데 승민네 집에 와서 수리하고 가는 것이 진노가 아니였는지 누굴까?
저녁먹고 기성이 운동장에서 놀다 박혀서 다리가 아프다며 찔찔 짜다 울고불고 괜히 고집을 냈다.
많이 아플까봐 걱정된다.
제수씨도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여 피곤하다고 하신다.
염려되고 걱정된다.
편안해야 할텐데 온 가정이 편해야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3월 27일(음 2월 20일) 월 흐리고 비가 약10m
오늘도 날은 밝아오고 나도 평소와 다름없이 기침하여 똑같은 일과 옆집 김득수씨 마당에 와서 페인트칠하는데 우리 집 문짝 페인트 하루 한 장씩이라도 손수 칠하면 돈 안 들고 기술자에 손을 빌리면 돈이 들어야 한다는 충고 말씀 해주신다.
박경진군이 왔다.
언제나 하는 말 형님 쾌차하여 우리처럼 자유롭게 활동해 봐야 합니다.
좌절하지 마시고 용기와 희망 잃지 마세요. 하며 빈 말 같은데 듣고 왜 이 사람이 이런 소릴 만날 때마다 할까?
자주 들으면 좋을 것 같으나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더 날 위하여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닐까?
저녁때 동생이 사온 호도 떡을 선례 갖다 준다.
먹고 석식 안부 묻고 경진군 포도주 사가지고 와서 함께 먹었다.
식후 제수씨도 따라 나가시고 함께 나간후 TV보면서 카운터 보고 나와 일기쓰고 취침했다.
1989년 3월 28일 음 2월 21일 화 흐리고 갬
머리를 제수씨 물을 데워 주셔서 감으니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오늘도 전일과 같은 일과로 반야심경을 기록하였으며 라디오 듣는 것이 취미생활이 되고 있다.
옷도 갈아입고 한자도 쓰고 앞으로 일을 연구하며 석식 후 동생과 과수원 자동 모터 설치할 것과 저장고를 금년에 짓나 명년으로 미루느냐 얘기하고 금년에 앞당겨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의견이 일치했다.
조반 후 영국 4종숙께 전화로 멀칭 저장고에 있는 것 각자 가지고 갔는지 아니 가지고 갔는지 문의 한후 삼촌 함께 가져가도록 해달라고 얘기했다.
사주 명리학을 독서하며 연구하고 TV보며 일지를 정기하고 오늘하루도 이렇게 마무리 한다.
부처님 나의 전생 현생 무거운 죄업을 참회합니다.
바라옵건데 건강을 주옵시여. 소망성취
1989년 3월 29일 수 맑음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삶이며 바른 삶일까?
날마다 탐욕 속에 번뇌 망상 들끓여 가면서 36년 동안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만고풍상 겪어 왔다 해도 지나친 말 아닐 테지.
오늘은 장날인데 아버지께 과수원 공터에 한 20평짜리 저장고를 지으면 어떨까요?
상의를 하며 설계도 그려 보이니 반대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하시겠다며 점심 싸 달라 하셔서 넘어가셨다. 터를 닦으시다 오셨다.
큰집형수 장에 오셨다 종형님과 들러 가시고 삼촌도 들러 놀다 가시고 오후 드럼통과 물 좀 실어다 놓으라 했더니 소가 새끼 놀 때 곧 되어 실지 않고 삼촌이 오후 6통 갖다 놓으셨다고 했다.
드럼통 동생이 가서 걸어놓고 오고 배나들 안호 사형이 콜라 되병 하나 사가지고 오셔 큰일 때 와주어
고마웠다면서 들러 가시고 이제 걱정을 덜었습니다. 하니 왜래 걱정을 덜었네 하셨다.
누나와 동생들도 다 왔다 갔다 하셨다.
아마리 이재식모 도장 파러 오셔 앉아 놀다 가시고 귀단 정원탁 집안어른도 도장 파러 오셨다.
이렇게 오고 가는 분들과 한마디씩 대화하고 학교 소사 모친도 우연히 놀러 오셔 얘기하고 놀다 가시고 옆집 면직원 부인 기조씨 댁도 놀러 가끔 잘 오시고 처음으로 대화 인사말을 전했다.
기조 어른 내외분이나 부인 친정 부친도 알고 있으니 다 알고 보면 모를 사람이 없다.
제수씨 붕어빵 사오셔 두 마리 먹으라고 주시고 다듬다 남은 배추 하우스에 것 뽑아온 것 다듬었다.
저녁때는 요구르트와 아이스크림을 아침에도 요구르트 오늘 먹은 것이 삼백원어치 더 될 것 같다.
어린애처럼 이런 것을 먹어도 될까? 저녁식사를 하면 주식에 대한 얘기 농가 목돈 얘기 내일 과원 유황 끓이러 간다고 아버지한테 헌옷 갖다 불 넣으라하고 첫 버스로 가신다고 밥 해달라고 했다.
TV를 보면서 오늘 일기를 쓰면 지난날 마음으로 지은 죄업이 너무나 크고 많아서 몇 평생을 용서를 빌고 참회를 해야 할지 앞으로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어려움과 괴로움이 분함이 닥치더라도 참아야 한다. 참고 또 참으면 복이 되리라.
이 마음에 쌓인 한도 많지만 그것은 오직 부처님이 알아서 다 해결하시리라.
나는 오직 남은 삶을 더 이상 욕되지 않게만 살아야 한다.
부처님 인욕 정진을 잘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와 희망을 주소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1989년 3월 30일 목 맑음 차차 흐림
새날일 밝아왔다.
오늘은 6시 40분에 기침을 하여 7시에 조반을 한후 부친 첫 버스로 유황 끓이러 넘어가신 후 반야심경을 필기하고 옆집에 나가 처막이 일어서기 알맞아 일어서 보니 되는데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으며 세 번 일어섰다 앉았다 한 후 들어왔으며,
세수도 하고 점심은 김밥을 먹었다.
제수씨 김밥 싸가지고 선례랑 과수원에 같다 오시고 기성이는 동생과 일찍 9시반경 넘어가서 약을 두통 끓이고 약칠 물도 실어놨다고 했다.
밖에 나가서 아는 사람도 여러분을 만났다.
오후 카운터 보는데 3천원을 바꿔 주었으며 전화 대구 오상원이 엄친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하여 위로 겸 잔디회보도 알아보고 기락이네 사무실에 있어서 다행히 직접 대화했으며 안동재활원 총무하고 정부 임대 주택 입주는 어떻게 도움이 있는지 알아보고 몇 살까지 함께 기술 익힐 수 있는지 시내 장애자협의회가 조직되었는지도 알아봤다.
해동사 부전스님과 대화 5월1일 법회 때까지 간부임명을 내려주신다고 하여 대밭골 유기원 어른께 상의한즉 다른 분을 선임해 달라하여 안호 사형을 선임 서류 좀 해달라니 그렇게 하신 다고 했다.
태익 조모께 중규네 전화번호를 문의하였다.
박경진 군이 치아 때문에 문하여 가르켜 주기 위함 이였다.
석식이 끝나고 동생하고 저장고 어떻게 하면 돈이 적게 들고 필요하게 쓰도록 할 수 있을까 의논했다.
좀 더 연구하여 하도록 하기로 하고 오득 형님이 주임 동장이여서 저장고 융자에 대하여 문의하니까 면으로 한 두건 나오는 것은 별 따기와 같고 농협으로 나오는 것 지금 알아보고 신청해 놓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TV를 시청하면서 기록하고 감사 축원을 한 후 취침을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3월 31일 금 맑음.
집 앞에서 처음 흰나비를 봤다.
허망하고 쓸쓸하게 오늘 또 하루해를 맞이하고 보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 직업이 현재 아무것도 없으니 놀고먹는 격이니 이래도 어쩔 수 없는 나의 건강 때문이지만 정말 한 많은 생활이다.
오늘은 7시 반이 넘어 기침을 하고 조반을 하고 부 앞산에 나무 심는데 부역을 오후 2시까지 하시고 점심은 식당에서 잡수고 오셨다.
앞집 정인석이네 기열이 외사촌이 엄종락이네 집으로 이사를 하는 모양이다.
밖에 나가 이웃 아줌마들과 인사도 하고 인석엄마도 인사를 먼저하고 누구 부인이고 누구 엄마인지 아직은 모르지만 먼저 인사말을 벌써 더워서 그늘에 앉으셨냐고 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뜻밖에 그렇게 물으셔서 대답을 하고 어디 나갔다 오십니까? 하고 기열 외숙모도 먼저 인사를 하신다.
인사하고 점심은 반찬을 많이 하여 두시 넘어서 출출하여 맛있게 잘 먹었다.
오후 오락실에 나가 놀다 들어오고 안동 김실이 전화가 온 모양이다.
내일 제수씨 법회도 가고 꽃 만든 것도 갖다 주고 병원약도 타고 갔다 오신다며 내일 시부께 돈을 좀 얻어 가서 랑현이 분유 한통 사주고 와야 하신다는 것 뭐 그럴 필요 있냐고 저 돈으로 사먹어도 될 텐데요 하고 부친께서 수고하시는데 약 주 한병 사드릴 생각은 없으면서 부께서 요즘 뭔가 허전해 하시며 쓸쓸 해 하시는 느낌을 느낀다.
돈이 무엇이냐 하면 화근을 불러일으키는 요괴와 마찬가지 됨. 그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가 없다.
석식을 한 후 나와서 TV를 시청하면서 일기를 쓰고 있으니 자정이 넘어서 오택이가 휴가 왔다며 전화를 했는데 인사말도 없이 덮어놓고 누구라고 얘기도 없이 이따 갈테니 술 한상 차려놓으라고 하면서 내가 받으니 들어가고 끊었더니 다시 하여 오택이란다.
교양이 어찌 그 모양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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