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1장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
위 말씀은 참으로 유명한 말씀이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그 자체가 어려운 표현이기도 하고, 믿음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므로 본질은 원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 떄문입니다.
Now faith is the substance of things hoped for, the evidence of things not seen.
KJV 히브리서 11장 1절
faith
발음미국/영국 [feiθ]
뜻① 신앙 ② 믿음 ③ 신념
믿음은 곧 형식이 아닌 소망들로 구성되는 것들이며, 그것은 보이지 믿음을 증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faith는 신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신념)으로 순교자들이 목숨을 거는 일을 우리는 보게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것인 믿음과 소망이 우리의 눈앞에 드러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본질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나 미움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의 행동으로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본질도 이러한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원로들이 그것으로써 좋은 평판을 얻었느니라.
For by it the elders obtained a good report.
KJV 히브리서 11장 2절
말씀보존학회의 킹제임스 번역에서 the elders를 원로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보통은 이것을 한국교회에서는 장로로 번역하는데 원로라고 번역하니 어떤 분리된 어떤 집단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the elders는 원래 직분이 아닙니다.
직분은
제사장 priest
감독 bishop
집사 deacon
성도 the saint 이렇게 나뉩니다.
the elders는 여기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들이나 연장자들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우리는 성도( the saint)이면서 동시에 선배(the elders)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도입니다. 그러다가 초신자보다 경험이 많고 나이가 많으면 the elders가 되는 것뿐입니다.
어떤 특수한 집단으로 느껴지게 하는 것은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인 소망의 믿음으로 우리의 선배들이 좋은 평판을 얻었으므로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선배(the elders)가 되므로 우리도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는 것들로 된 것이 아니니라.
어제 이단연구소의 탁지일이란 분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탁명환소장이라는 분의 아들로 탁명환소장님은 이단연구소를 운영하다가 이단 추종자에게 살해당한 분입니다. 그의 아버지를 이어 이단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분의 이단에 대한 깊은 통찰로 한 말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그것은 이단은 어떤 잘못된 사실을 믿는 착오로 이단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시키는 것에 빠지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즉 노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논리나 이성으로 설득하려해도 그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설득이 먹히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진 시각의 문제는 영적인 영역입니다. 즉 무의식과 가치관의 영역이기에 아직 모르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사탄의 조력을 받아서 이 부분을 가지고 사람들을 공격하여 자신들의 노예로 삼아서 사용하고
끝에는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 온전히 진리를 바라보는 맑은 눈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과 이단들이 권하는 안경을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대로를 가지고 분별하여 그들의 협박에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렵지만 그리로 가지 않으면 이단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죄악을 일삼는 자들이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이 모두 하나님의 진노앞에 서게 됩니다.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이겨내고 지혜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사람은 약하고 약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작은 것부터 인내하는 자세가 우리를 영광스러운 구원까지 인도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카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의로운 자라고 증거를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을 인정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아직 말하고 있느니라.
아벨은 우리가 본받을 최초의 모델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우리의 삶이 곧 제사입니다. 그는 하나님앞에서 합당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아벨의 삶은 우리에게도 아직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
우리의 삶의 자세는 곧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껴집니다.
그것은 곧 본질의 믿음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존재하시는 것과 그분이 자기를 열심히 찾는 자들에게 보상하시는 분이심을 마땅히 믿어야 하느니라.
히브리서 11장 1절 ~ 6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필요로 하시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 그자체를 우리에게 의로 여겨주시는 분입니다. 이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보상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