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염불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면의 신앙이 우리의 외적 행위를 이끄는 것이 바로 염불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빠도 염불하고 한가해도 염불합니다. 한가하면 좀 더 많이 염불하고, 바쁘면 염불을 조금 적게 할 수 있습니다. 바쁜 일을 멈추었을 때 생각나는 즉시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는 것을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라고 부르는데요. 아무리 바빠도 염불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을 “순경, 역경”이라 부를까요? 어떤 사람은 순경에서는 염불합니다. “좋아요! 몸도 건강하고 날씨도 좋은데 염불이나 해볼게요! 아미타부처님께서 가지(加持)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러다가 역경이 들이닥치면 번뇌 속에 매몰되어 염불을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서 염불을 의심하며 “나는 불교공부를 시작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고,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도 하고 있는데, 왜 난 여전히 병에 걸릴까? 아미타부처님은 영험이 없는 게 아닌가?”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역경이 오면 더욱 염불해야 하는 것은, 자기의 업장이 두텁고 사바세계가 아주 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한 부류 사람은 역경이면 염불하고 순경이면 염불하지 않습니다. 병고라는 역경이 오면 “아미타부처님, 저는 좀 더 일찍 왕생하고 싶습니다. 아미타부처님!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하다가, 병이 나으면 손자, 아들⋯⋯을 보고는 또 잊어버리고 염불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경에는 염불하고 순경이면 염불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두 부류의 사람입니다.
대사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순경이든 역경이든 서방정토에 왕생하는 것을 잊지 말라”: 조건이 좋을 때, 예를 들어 몸이 편안하고 틈이 있고 여력이 있을 때는 염불하기가 딱 좋고, 몸에 병고가 있어 괴로울 때는 염리심을 일으켜 염불하기 딱 좋습니다.
아무튼, 순경이든 역경이든,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언제나 명호를 여의지 않고 서방정토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