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갑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가을을 느끼는지요?
저는 가을이 왔구나! 라고 느끼는 것은 교정에 있는 은행나무를 볼 때입니다. 수북히 달려 있는 노란잎을 볼 때 가을을 상징하는 색, 노란색을 떠올립니다. 저는 초등교사입니다. 지금까지 일곱 군데 학교를 옮겨 다녔습니다. 그중에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가을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학교 정문부터 가을을 알려주는 노란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동쪽 바다에서 떠오른 해가 살짝 빛을 비추는 아침 등교 시간, 긴 밤을 지새우고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 기지개를 펴는 은행나무에 수북히 달려 있는 은행잎이 그려내는 운치가 그 무엇보다 아름답습니다.
<은행나무 열매>의 저자 미야자와 겐지도 글에서 이렇게 말했죠.
"은행나무 열매들은 한꺼번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늘이 바로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아침마다 교정에서 떨어진 은행나무 잎과 열매를 보면 미야자와 겐지의 은행나무 여행이 떠올라집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슬픔 말입니다.
"은행나무는 어머니였습니다. 올해는 황금색 아이들이 천 명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자식들의 재롱을 채 보지 못한 체 머나먼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노란 은행잎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이라고 합니다. 너무나 슬픈 나머지 노란잎을 모조리 떨어낸다고 표현했습니다. 닭똥 같은 눈물이 어머니의 눈가에서 쉬지 않고 흘러내리듯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나뭇가지에 달린 은행잎이 비오듯 떨어집니다. 어머니의 그윽한 사랑의 눈물처럼.
다 큰 자식은 떠나 보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어머니가 보기에는 다 큰 자식도 여전히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사랑스런 자식입니다. 천 명의 자녀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은행나무 어머니. 차가운 삭풍이 불어오는 겨울이 그다지 반갑지 않아 보입니다.
학교에서도 이맘때면 부모가 다 큰 자녀들을 떠나보내듯 졸업을 앞둔 학생들을 떠나보내야 하고, 상급학년 진학을 위해 떠나보내야 합니다. 은행나무가 은행 열매를 떠나보내듯 말입니다. 그게 자연의 순리이며 이치인가 봅니다. 떠나보내기 싫다고 붙잡아 놓는다고 능사가 아니듯 말입니다. 떠나보내고 나면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야 하지만 훌쩍 커 버린 제자들을 다시 만날 때면 왠지 뿌듯한 느낌이 듭니다. 얘기만 같다던 자녀들이 어느새 훌쩍 커 자립심을 보이며 부모 품을 떠나가는 모습을 볼때면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들도 장차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마냥 슬퍼만 할 수 없는 것이죠.
<은행나무 열매>의 저자 미야자와 겐지는 누구든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자연 현상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이입하여 자주 표현했다고 합니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다가올 이 시점에 자녀들과 함께 읽어보면 어떠실까요? 교실에서 진학할 제자들과 그림을 보며 '떠남' 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