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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효도와 참 제사[5]
210207(주일오전)
엡 6:1-3
(마 7:16) 『...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것은 당연하고 쉽습니다.
그런식으로 복을 얻으려면 복의 근원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들에게 필요한 복의 근원이 어디인지 여러분은 아십니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 모든 복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사람들에게 복을 선포하시며 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 1:27-28)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을 구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 65:16-20) 『[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18]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복들이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23:25-26) 『[25]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26] 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하나님의 복이 어떻게 오는가? (창 1: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빛을 명하시듯, 복을 명하실 때 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 세계 인류역사를 연구해보면 이 말씀이 진실임을 알게 됩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나라들과 기업들과 개인들이 복을 받았음을 알게 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이와 같은 복을 받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돌아오는 금요일은 우리민족의 고유명절인 구정 설입니다. 가족 간의 아름다운 사랑과 격려가 있는 복된 시간들 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실상 구정인 설명절이 되면 제일 곤혹스러워하며 긴장하는 사람들이 불신자 가족들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정 설명절에 지내게 되는 제사에 동참할 수도 없고, 제사를 외면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사태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가족들이나 이웃들로부터 너희들은 조상들도 몰라보는 쌍것들이냐 하면서 매우 혹독한 공격을 당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언제인가 우리교회에 출석하시는 어르신들 가운데 우리교회 목사는 다 좋은데 제사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 때문에 안 좋고, 그래서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기 힘들겠다는 반응이 있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조상제사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 효도와 효도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하나님의 복에 관한 말씀들을 나누기 원합니다.
제사란 무엇인가?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을 일컫는 말로 사전에 정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조상신제사가 언제 시작이 되었고 그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다만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미풍양속 정도로 알고 있고, 조상들에 대한 효도의 차원에서 행해지는 것 정도로 알고 있으며, 보통의 경우에 습관과 형식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인 듯싶습니다.
그러므로 조상신제사의 정확한 유래가 무엇이고 그것이 갖는 진정한 의미그리고 조상신제사에 대한 성경적인 가르침을 살펴보고, 한 때는 조상신제사를 매우 신봉하였던 박효진장로님이 왜 조상신제사를 그토록 반대하는 사람이 되었는가에 관한 일화를 소개해 봄으로 참된 효도와 참된 조상신제사란 어떤 것인가를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I. 조상신제사의 유래
많은 사람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리민족의 고유한 미풍양속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사는 본래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외래문화(外來文化)임을 아셔야 합니다.
1. 조상신제사의 기원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조상제사의 기원은 중국과 연관된 것입니다. 중국에서공자(중국 춘추 시대의 사상가·학자 B.C.551~B.C.479) 이전, 하나라와 상나라 때 처음으로 제사를 지낸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의 제사는 지금처럼 죽은 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고 살아있는 자에 대한 제사였습니다. 종손을 높은 곳에 앉혀놓고 제사형식의 예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생존해 있는 황제에게만 제사를 지내었고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평민들이 “너희 부모만 훌륭하냐? 우리 부모도 훌륭하다.”고 반발하면서 자신들의 신분을 높이기 위해 제사를 지내게 되면서 결국에는 죽은 조상들에게까지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확대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조상신제사의 원조인 중국에서조차 돌아가신 조상들에 대한 제사는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제사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와 중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민족의 제사의 근본뿌리는 하늘의 하나님께 드리는 성전의 제사의식이었고, 거기에서 여러 가지 종교들이 파생된 것이었습니다.
2. 우리나라에 조상신제사가 들어온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유교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설날아침 일찍 일어나 어버이에게 세배를 올리고 아침밥을 먹었으며, 죽은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특정한 왕에게만 제사를 지내었고 고려말기에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사당을 지어 위패와 신주를 모셔놓고 특별한 사람에게만 제사를 지내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태조 이성계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조상신제사가 민간에 널리 장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조상에 대한 효도를 권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새로운 국가 조선을 세운 이성계였기 때문에, 그의 정권이 정통성을 갖지 못하여 민심이 돌아설 위기를 느끼게 되자, 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때 무학대사가 효를 중요시하는 백성의 효도심을 이용하여 조상신제사를 백성에게 장려하면 백성이 왕의 정권을 인정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상신제사가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상신제사는 이성계의 정권 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정략적인 것이었습니다. 제사상에 올려지는 제물 가운데 세 가지 실과를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제사상에는 대추, 밤, 그리고 곶감 이 세 가지 과일이 필수적으로 올려집니다. 바로 여기에 정치적인 술수가 숨어있습니다. 씨앗이 하나 뿐인 대추는 이 나라의 왕은 오직 이 성계 한 사람 뿐인 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씨가 세 개인 밤은 조선시대의 삼정승을 상징하는 것이며, 씨가 여섯 개인 감은 육판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 나라의 조상신제사는 우리고유의 미풍양속이 아니라 중국에서 수입된 외래문화요 태조 이성계의 정치적인 술수와 무학대사의 아이디어가 토착화 되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는 한국의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건너온 풍속이며 13세기에 억지로 왕의 강요에 의해 민가에 생긴 풍속입니다.
이쯤에서 조상신제사에 대하여 잠시 정리하고 지나갑니다.
첫째,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본래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민족 고유의 제사의식은 근본으로 올라가보면 유일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제사의식이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출 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출 20:25-26) 『[25]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우리나라의 고인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목포대학교 이영문교수의 연구결과는,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 발견되고 있는 고인돌들은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제단으로서의 기능이 강한 것이다.”¹라는 것이었고, KBS역사스페셜 작가인 정종목씨도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²라고 했으며,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박성수교수도 “몇 군데 고인돌 밑에서 유골이 나왔다고 해서 고인돌을 묘라고 단정해 버리는 선입견에는 문제가 있다. 지석묘(支石墓)가 아니라 지석단(支石壇)이라고 불러야 한다.”³는 말을 하였습니다.
¹. 이영문, 「고인돌 이야기」, 다지리, 2001, p.196.
². 정종목, 「역사스페셜」, 효형출판, 2000, p.228.
³. 박성수, 「단군문화기행」, 서원, 2000, p.136.
즉 고인돌들은 무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출 20:25-26에 말씀하신 대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은 계단이 없는 제단”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제천신앙의 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온 우리의 시조 단군조선으로부터 돌로 다듬지 않은 계단이 없는 제사의 제단인 고인돌들이 세워졌고, 그 위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초대 법대학장을 지내신 최태영교수도, 우리 겨레 고유의 종교 및 문화가 ‘제천신앙’이었다는 것을 간파한 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군조선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이 제천행사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이다.” -최태영 교수(서울대 초대 법대학장)-
하늘의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천신앙의 제사가 아닌, 오늘날과 같은 우리나라의 조상신제사는 후대인 조선 중기에 와서야 유학과 샤마니즘의 영향으로 민간에 유행하게 되었으므로 사실 이 조상신숭배의 제사의식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못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둘째, 조상신제사는 미풍양속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미풍양속(美風良俗)이라 하면 그로 인해 우리에게 어떤 좋은 영향이 있어야 하겠는데, 사실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이 역사적으로 어떤 좋은 영향을 받아왔습니까? 물론 이것은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건데, 이 제사제도는 우리 민족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친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특별히 여자들이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 제사의식을 행하는 데 있어, 하나의 미풍양속을 행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내려오는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 행할 뿐이며, 또한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거나 귀신의 저주를 면해보려는 생각에서 이 의식을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II. 효도와 제사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조상들이 아닌 악한 귀신을 초대하는 제사의식을 반대하는 것이지, 조상들의 은덕을 무시하거나, 효도를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레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신 5:16)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 21:18-21)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잠 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마 15:4)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엡 6:1-3)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출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레 20:9) 『무릇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였은즉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막 7:10)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딤전 5: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이상의 말씀과 같이 성경과 기독교는 효도를 가장 중요시 하는 종교이며, 기독교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는 효도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어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며 부모님에게 용돈을 잘 드리는 것이 효도인데,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부모님을 말로만 공경하고 용돈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사람이라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막 7:6-13)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사람이며,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먼저 부모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물질로 부모님을 섬기고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며,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의 헌신과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린 예물', 또는 '하나님께 드림'이란 뜻으로서 히브리어 '코르반'을 음역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단순히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바치는 제물. 혹은 예물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였습니다(레 2:1,4.12).
그런데 바벨론 포로기 이후 외적인 의식 및 규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에 의해 이 단어는 하나의 맹세어로서, 스스로 헌신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물건에 확대 적용되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의 진정성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여러 사람 앞에서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라고 맹세하고 예물을 하나님께 바쳤고. 이것이 풍습이 되어 후대에 전해져 왔던 것입니다.
한편 ‘고르반'으로 바친 물건은 비록자신의 집에 소유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종교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으며, 또 다른 사람이 일체 그 물건에 손댈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신앙적인 듯이 하면서 실상은 그 물건들을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는 기만적인 행위도 빈번히 있었습니다. 장로들의 유전은, 심지어 자식이 부모에게 드려 봉양해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즉 ‘고르반’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부모 봉양 의무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가르치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바로 그와 같은 장로들의 유전의 문제점과 그것에 근거한 바리새인들의 외식되고 기만적인 행위들에 대해 엄중하고도 신랄하게 책망하며 꾸짖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듯 부모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듯 부모님을 물질로 섬기는 사람이 참 하나님의 사람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사람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중국 하나라와 상나라에서 제사가 시작된 것도 본래는 살아있는 사람에 대한 제사였고, 성경에서도 살아계신 부모님께 대한 효도와 섬김을 강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참 효도와 참 제사는 살아계신 부모님을 향하여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 사후에 제사용품을 구입하고 제사를 진행하는 일에 힘쓰려고 하지 말고,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 미리 용돈을 드리고 좋은 음식을 대접해 드리며 감사를 표현해 드리는 것이 참된 효도와 참된 제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돌아가신 선조들에 대한 예의는 어떻게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까?
돌아가신 선조들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선조들의 유훈을 따라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며 우애 있게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선조들은 지금 저 세상에서 영혼으로 계시지 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들이 차려놓는 제사음식을 드실 수도 없고, 또 우리들의 절을 받으실 수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2. 조상신제사는 조상의 혼령님들이 아닌 악한 귀신들을 초청하는 일입니다.
제사가 조상님들에게 드려지는 것이고 조상님들이 받으실 수 있다면 날마다 매 끼니때마다 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제사를 강조하는 유교는 원래 내세나 구원도 영생도 없는 현실 중심입니다. 공자는 영혼 불멸이나 내세에 대하여 가르치지 아니했습니다. 그런데 유교 전통이 무속적인 제사와 기존의 불교가 혼합되면서 종교적인 신앙으로 변질 된 것입니다.
더러는 조상제사가 왜 나쁘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손된 도리로써 정성을 다해 음식을 차려놓고 예를 표하는 것을 왜 나쁘다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조상제사의 실제 대상이 조상들의 혼령들이 아닌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0:20-22)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조상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제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상이 아닌 악한 귀신을 가정과 가문으로 불러들이는 어리석은 일이요, 결국에는 가문전체가 망하는 저주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제사 때 가문에 들어오는 귀신들이 바로 그 도둑인 마귀요 귀신들입니다(요10:10).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인간 세상에 오신 목적은 바로 이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요일3:8). 이런 우리 인간을 괴롭히는 원수며 대적자인 귀신을 도대체 우리가 왜 섬겨야 하는 것입니까?
성경에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세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세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세계로 들어간다고 말합니다.죽음 이후에는 천국이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는 영혼은 천국에 가고, 믿지 않고 죽는 영혼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간 영혼은 거기에서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나 우주에 떠돌아다닐 수 없으며 우리에게 좋은 영향이나 어떤 나쁜 영향도 미칠 수 없습니다(눅16:19-31). 그러므로 조상신이 자손들을 도와주거나 또는 해를 끼칠 수 없는 것입니다.
천국에 간 영혼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최고의 안식을 누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혼을 위해 이 세상의 어떤 음식도 대접할 수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지옥에 들어간 영혼들에게는 손가락 끝의 물 한 방울도 허락되지 않으며 불 가운데서 영원한 고통의 형벌만이 주어지기에 어떤 음식도 전달될 수 없는 것입니다(눅16:23-26).한번 죽고 나면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히9:27). 그러므로 육체를 벗어난 상태에 있는 조상들에게 제사 음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오시지도 못할 뿐 아니라 드시지도 못할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을 가장한 악한 귀신들을 향하여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것은 미련한 우상숭배입니다. 조상신제사의 실상은 조상에 대한 예절이 아니라 여러 잡귀들을 집안으로 불러 들여 불행을 자청하는 일입니다.그리고 귀신에게는 절대로 축복권이 없습니다.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권세는 있으나 사람들에게 어떤 이로움을 주지 못합니다. 똥파리는 더러움과 세균만을 옮기지 그 어떤 이로움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은 사람들을 죄짓게만들고 병들게하며 살인하게만들고 도둑질하게만들고 음란하게 만드는 존재임을 성경이 말씀합니다. 따라서 제사를 자주 지내는 사람들은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독한 시기와 다툼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혼란과 모든 악한 일들이 생겨나며(약3:14-16), 남을 참소하게 되고(계12:10), 악해지고(요일 2:13), 거짓말하게 되며(요 8:44),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제사를 지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는 오직 하나님에만 돌려야 할 영광을 도둑질하고 인간을 불행하게 하려는 마귀의 고도의 술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제사하는 것을 금하는 것입니다.
(시 106:28,29,35,36) 『[28]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29]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35] 그 이방 나라들과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기므로 그것들이 그들에게 올무가 되었도다』
이 말씀처럼 구원받았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은 자에게 제사하고, 또 그 제사한 음식을 먹음으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했고 그 결과 그들 중에 재앙이 크게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제사를 금하는 것이지, 조상들에 대한 은덕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위해서 제사를 금하는 것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조상신제사를 지낼 때에 조상신제사를 지내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실체를 잘 보여주는 청송교도소 교도관이셨던 박효진장로님의 생생한 간증을 소개해봅니다. 박효진 장로님의 책 “하나님이 고치지 못할 사람은 없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앞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을 참으로 만난 후에도 제사 문제는 내 마음 속에 항상 어두운 그림자로 남아 있었다. 누구에게도 드러내 말하지는 못했지만 내게 심각한 갈등이 아닐 수 없었다... 내게는 신앙과 같았던 제사가 갑자기 싫어진 이유를 알 수 없는 것도 답답할 노릇인데, 더 답답한 것은 제사 지내기가 그토록 싫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 아련한 향수처럼 아쉬움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갈등을 어느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하나님을 만난 후, 나의 영이 거듭나고 기적처럼 모든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고 난 후에도 이 갈등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기도에 깊이 몰입하려는 순간마다 마귀가 길목을 가로막고 서서 제사 문제를 내 앞에 내밀었으며, 나는 그때마다 정리되지 못한 나를 발견하고 수없이 주춤거려야 했다.
왜 우리 기독교는 제사문제를 그토록 극단적으로 평가하는가?
왜 우리나라의 제사를 꼭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이나 이방신에 대한 제사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한국 전통문화로서 조상에 대한 경애와 뿌리 찾기의 한 방편으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성경에도 많은 족보가 있으며 혈통의 문제가 때로는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그 맥락에서 유교적 전통과 제사문화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상에게 절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한 번 시작된 불신과 회의는 좀처럼 꺼질 줄 모르고 내 가슴 깊은 곳에 고집스러운 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기쁨의 노래가 점점 사라지고, 신앙의 열정이 식기 시작했으며, 목사님의 피를 토하는 설교마저 마음에 와 닿는 강도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한 영적 침체와 스트레스가 극한에 다다른 어느 날,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놀라운 해답을 주셨다.
그 날 나는 평소에 가까이 지내던 믿음의 동역자 한 사람과 밤늦도록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새벽 1시를 넘긴 무렵이었다. 텅 빈 도로 한 중앙을 같이 걸어오던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간증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은혜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옹기도마(옛날에 옹기를 굽던 동네라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진 것 같다) 앞을 지나쳐 오는 순간에 썩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엄청난 악취였다. 마치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태우는 듯했다. 동역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인 무언의 교감. 옹기도마 안에 틀림없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 봅시다!”
옹기도마 안으로 들어갈수록 독한 냄새는 한층 더 코를 찔렀다. 사냥개처럼 냄새를 따라 걸어 들어가는 우리 눈앞에 이윽고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이 나타났다. 활짝 열린 대문, 환한 전등불 아래 대청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니 제사지내는 집이 분명했다.
“더 가까이 가 볼까요?”
“예 그랍시더.”
사람들은 빨랫줄을 풀어 마당에 늘어놓고(귀신이 들어오다가 빨랫줄에 걸리지 않게) 젯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젯상 위에는 갖가지 제물들이 진설되어 있었고, 젯상 중앙에는 지방과 함께 돌아가신 내외분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다소 긴장하며 다시 한 번 대청 안을 살펴본 순간!
나는 그때까지 귀신이나 악령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영적 존재도 동일한 범주에 국한시켜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눈앞에서는 기상천외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내용은 나의 개인적 체험이므로 신학적인 논쟁거리나 오해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젯상 위는 물론이고 젯상 아래에도, 천장에도 빌로드처럼 진한 흑색의 영체들이 온통 북적대고 있었다.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아무리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수백을 헤아리는 엄청난 귀신 떼들이 온 집을 누비고 있었다. 육신을 가진 제한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여서인지 그들은 마치 공간이동 하듯이 젯상의 위아래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여름날 강물 속의 숱한 피라미 떼처럼 한꺼번에 무리를 지어 종횡으로 방향을 바꾸어가면서 사람들의 몸속에까지 들락거렸다. 수백의 떼거리들이 사람의 입으로 한꺼번에 들어가 그의 온몸을 휘젓고 다니다가 옆구리로 빠져나오질 않나, 다시 젯상 위로 올라가 제물들을 밟아대면서 춤을 추다가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질 않나, 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오늘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기에도 섬뜩한 귀신들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북적대고 있을 뿐 정작 제사를 받는 사람의 영혼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셨다.
‘지금 네가 보는 것이 바로 사탄의 실체이며 귀신의 실상이다. 인간의 영은 육신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그 날까지는 임의로 이 세상을 들락거릴 수 없다. 영계에 들어간 인간의 영이 제삿날이라고 외출하여 제삿상 앞에 찾아온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일 뿐!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 윗대 조상들도 죽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 낙원과 음부로 구분되어 들어간다. 제삿날에 후손들이 벌여놓은 이 제삿상에는 조상의 영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저 더러운 귀신들이 대신 몰려들어 무지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외에는 그 어느 제사라도 귀신들의 놀이터요, 인간을 더럽히는 사탄의 유희임을 알라!’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이 정리되고 있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가르치심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전율했다. ‘그랬구나! 내가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그때에도 하나님은 나를 살펴보시며 나를 사랑하셔서 저 더러운 제사자리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셨구나! 나는 아내에게 진 빚을 갚아 보겠다는 단순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교회에 첫발을 내디뎠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나를 구원해 주시려는 구원의 경륜 안에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 결과였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천주교에서는 제사를 지내도 괜찮다는데 왜 기독교에서만 그렇게 기를 쓰고 안 된다는지 모르겠어요. 제사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교회에 갈 텐데!” 이 말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제사라는 것이다. 더럽고 사악한 귀신들은 제사라는 걸림돌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옹기도마 제삿집 문 앞에서 목도한 현실을 바탕으로 이 거대한 비밀의 세계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성경이 밝히고 있듯이 귀신은 거짓과 기만의 천재들이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과 전통과 충효의 아름다운 사상을 이용하여 하나의 계략을 만들었다. 곧 조상을 잘 섬겨야 한다는 인간의 근본 윤리를 이용하여 제사라는 의식을 만든 것이다. 그들은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조상의 혼백이 오신다.’는 거짓 사상을 심어놓고는 누구보다 조상을 잘 섬기기를 원하는 백성들의 제사 자리에 자신들이 찾아와 지옥의 동반자로 사로잡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엑소시스트(영매 혹은 무당)들의 접신하는 귀신들은 어김없이 조상신들이다. 특히 그 귀신들은 그 가문과 가정의 모든 것들을 그야말로 '귀신같이', '족집게처럼' 알아맞침으로서-영물인 귀신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이므로 인간역사의 과거를 알아 맞칠 수 있다-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옭아맨다.
그런데 미국이나 서구 쪽의 영매들이 접신하는 귀신들 중에는 “조상”이라고 자칭하는 것들이 거의 없고, 대부분 친하게 지내다가 먼저 죽은 “친구”를 빙자하여 나타난다. 그네들의 의식세계에서는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보다는 친한 친구와의 우정이 더 깊고 우월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 쪽에는 조상이나 친구가 아니라 “장군신”이 나타난다. 중국인들에게는 장군숭배사상이 있어서 가는 곳마다 관우, 유비, 조자룡 등 장군들의 사당을 지어놓고 숭배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귀신들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 어느 개인 할 것 없이 그들이 노리는 대상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치고 들어와서 그곳에 영적 갈고리를 꿰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효도사상은 극히 칭찬받아야 하고 장려되어야 할 미덕중의 미덕이다. 그러나 귀신들이 이것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지 못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안 이상 그대로 있을 수 없어서 개인적인 체험을 덧붙인 것이다. 이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오늘의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사란 무엇인가? “신령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냄. 또는 그런 의식.”을 일컫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리의 고유한 미풍양속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제사는 본래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외래문화입니다. 제사는 중국에서 공자 이전에 하나라와 상나라 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는데, 죽은 자에 대한 제사가 아니고 살아있는 자에 대한 제사였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중국에서 유교의 주자학이 전래되면서 설날아침 일찍 일어나 어버이에게 세배를 올리고 아침밥을 먹었으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이르러 이성계가 유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그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조상제사를 민간에 널리 장려시킨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와 성경은 악한 귀신을 초대하는 제사의식을 반대하는 것이지, 조상들의 은덕을 무시하거나, 효도를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조상제사는 조상의 혼령님들이 아닌 악한 귀신들을 초청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조상들에게 기쁨이 되고, 부모님께 효도를 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면, 살아계신 부모님을 하나님 섬기듯 섬겨야 하고, 선조들의 유지를 받들어 아름답고 복된 생활을 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잘 섬김으로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죽어서도 지옥이 아닌 천국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구정 설 명절은 가족들, 특별히 부모님을 잘 섬기고 선조들의 유지를 기리며 가족모두가 사랑으로 하나되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선조들에게 기쁨이 되며 자손 천대에 복이 흘러가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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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