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새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 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겠느냐 밭 가생이로 돌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컬컥 코를 찌르고 머리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들리는 산골자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속 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봄이 나른하고 몸살이 나려구 그러는데 가슴이 울렁울렁 하고 이랬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봄봄"의 나오는 글이다. 올봄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린다. 비만 자주 내린 것이 아니라 돌풍도 잊을 만하면 몰아친다. 시골지방이나 산에서만 부는 바람이 아닌 도심이나 변두리 할 것 없이 때도 없이 불어댄다. 모처럼 맑은 주말에다 며칠 전 약속한 장로 친구 한 분과 약속한 춘천의 금병산 산행이다. 산행이라기 보다는 올봄 활짝 핀 벚꽃도 제대로 보질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 한 두 그루 심어 놓은 홍매화가 소품으로 대신하는 듯했다. 홍매화가 들으면 "뾰루뚱" 하며 삐지겠지만, 아무래도 봄의 대명사는 벚꽃이기에 말이다. 매스컴에는 진해 군항제와 여의도 윤중로 벚꽃 소식을 전했지만, 단발성 기사로 막을 내린 거 같다.
오전 열 시가 넘어 김유정역에 도착했다. 아마 오늘까지 여덟 번은 족히 온 것 같다. 옛 이름 남춘천역이다. 마치 김유정역에 오는 것 부터가 한 해를 시작하듯 이젠 해마다 다녀가지 않으면 처음이 없는 것처럼 그만 김유정기념관과 이곳을 둘러보는 편한 곳이 없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정이 들었다. 현대가 언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일제 강점기 그 시대에 농촌에 모습과 삶의 모습들을 되새기며, 한창 소설로 꽃피울 시기에 생을 마감한 김유정 소설가의 애틋한 삶의 모습 또한 그리고 상상해 보고 싶다. 데릴사위로 들어가 장인의 마음을 사 점순이와 성례를 치루는 한가지만을 목표로 사는 한 청년의 사랑에 꿈을 향하는 글을 음미하면서 말이다.
화창한 봄 날씨 만큼 마음도 발걸음도 가볍다. 김우정역에서 올려다 본 금병산 정상주변은 아직 봄이 닿지 않았는지 가을에 벗은 나무들이 아직 봄 옷으로 갈아 입지 않은 듯 뿌연 모습이다. 문학관 앞을 지나 왼쪽으로 꼬부라지면서 여정을 시작했다. 여정이라기 보다 가벼운 산행이다. 그것도 아닌 산책이라는 마음이다. 재작년 봄 카페의 회원들과 움막 같은 비를 가릴 비닐천막을 치고 십여 명이 안에서 매생이 떡국을 먹던 곳을 지나며, 둘이 산책로 벤치에서 잠시 땀을 시켰다. 준비한 것이라야 빵 두 개와 사과 두 개, 그리고 식수 두개 냉장고에서 꺼내 배낭에 넣고 온 떡 두 개가 오늘 간식이다. 작은 배낭에 항상 준비되어 있는 과도로 풀린 몸을 보충하며 땀을 식혔다. 몇 걸음 오르면서 이따금씩 보이는 진달래꽃과 쭉뻗은 팔등신의 낙엽송을 비롯해 사방에 나무친구들이 박수치며 잘 왔다고 하는 듯 반기고 있었다.
먼지 한 톨 없는 잘 정리된 등산로를 뒤로하고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며 산책은 계속 되었다. 이십 분 쯤 그늘진 등산로를 오르니 정상으로 향하는 삼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왼쪽방향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 본 김유정역 일대와 의암호 뒤편 삼악산 정상이 우뚝 솟아있다. 삼십 여 년이 지났을까! 구 강촌역에서 배를 타고 삼악산 입구에서 내려 등선폭포를 지나 삼악산을 오른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경사가 급해 식식거리며 많은 땀을 흘려 정상에 도달했던 기억이다. 정상에서 본 춘천시내는 말 그대로 호반의 도시다. 서북방향에 귀목봉과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높이를 자랑하는 명지산 정상과 아들선 처럼 내려 앉은 운악산의 정상도 뽐내며 허연 배를 들어내며 보인다. 셋째 날 창조주 하나님이 나무와 식물을 자연의 모습 속에서 인간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다.
갈림길은 중턱쯤 된 듯하다. 숨이 가쁘다. 오랜만에 오르니 단련되지 않은 육체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산책이 등산을 지나 고통이 다가오는 듯하다. 조금씩 가파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오른 등산로는 그늘만 있었다. 햇빛이 능선 나무사이를 강하게 비추고 있어 더웠다. 왼편으로 춘천호반과 시가지 중심의 봉의산이 봉긋 솟아 있다. 강원도청 춘천시청이 있는 춘천의 중심지다. 의암댐 상류 중도와 소양교가 보이고 굽이굽이 오봉산 구 국도가 화천을 향하고 있다. 시야를 동편으로 돌리니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안정효 작가의 소설무대다. 춘천시는 다른 도시처럼 아파트도 많이 들어서 있지만 시가지에 많은 녹지와 야산이 있어 쾌적한 도시다. 의암호와 공지천 중도 위에 춘천호를 위시하여 인제 양구를 향하는 소양호가 북쪽에 정위치 하고 자리 잡은 호반의 도시의 부족함이 없다.
뚜벅뚜벅 오르니 어느새 8부 능선에 이르렀다. 몇 분 쉬며 숨을 골라야 했다. 고지대라 그런지 진달래가 아직까지 피어 있다. 푸름이 아래 쪽 보다 덜 하다. 연두색 이파리들이 점점 진해져 가는 봄의 높은 지역 생명들의 모습이다. 원추리는 고개를 삐쭉 내밀고 지금 나와도 되는지 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두리번거리듯 하다. 참나무들은 아직도 늦은 가을이다. 생동감이 없다. 아마 제일 늦게 녹음을 책임지겠노라고. 깔딱 고개를 오르는 것처럼 숨이 계속 가빠졌다. 반대편에서 오른 등산객들 여러 명이 내려오는 모습이다.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말해 주곤 내려갔다. 정상이 가까워지나 보다, 통신안테나가 세워져 있는 옆을 지나니 햇빛이 나무사이를 가르며 비추며 힘을 내란다.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들린다.
휴우……. 높지 않은 금병산인데, 652m라는 표지석이 선명하게 보인다. 반대편에서 오른 열 댓명의 등산객이 정상 아래 펑퍼짐한 곳에서 쉬며 간식을 먹으며 즐거움을 발산하고 있는 중이다. 전망대에 오르니 동서남북이 훤히 펼쳐진다. 홍천가는 고속도로가 원창고개를 향해 힘차게 오른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차량들이 홍천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함께 오른 친구 장로와 함께 인증 샷도 했다. 남은 과일과 음료수를 마시고 잠시 이얘기 저얘기를 나누며 가슴을 확 펼쳤다. 산으로 둘러싸인 춘천 시내가 한눈에 아래에 펼쳐져 있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다. 정상보다 조금 아래 그늘에서 몇 팀의 등산객들이 다 쉬었는지 정상을 향해 오르는 모습이다. 금병산을 늘 뒤에 두었던 소설가 김유정이 어렵푸시 생각났다. 작가는 금병산을 오르내리지 않았겠지. 산 보다 실례마을 주변과 고달팠던 삶의 소재는 늘 있었기에 말이다.
하산을 하기 시작했다. 높은 산이 아니어서 이십 분 가량 내려오니 졸졸 계곡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역시 산은 물이야. 비록 퍼런 이끼긴 돌들이었지만 청량감을 더했다. 계곡은 시원함을 아끼지 않았다. 장로친구가 발 좀 담그고 가자고 했다. 그럴까!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등산화를 벗고 이내 계곡물에 발을 담갔다. 이크...... 발시려. 와... 얼음장 같은 물이 이내 발을 물에서 빼게 했다. 시원하다못해 차가웠다. 언젠가 명지산 용추계곡에서도 그랬다. 그땐 10초도 못 견디고 놀란 모습으로 뺀 기억이 있다. 기분 상쾌다. 피곤하진 않았지만, 온 몸이 새 옷을 입듯 상쾌하다. 내 딛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마치 새로운 기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단번에 쭉 오르는 상기된 기분이다. 이런 맛에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것이다. 내려 올 것을 힘들게 오느냐고?
조그만 저수지가 실레마을을 다 내려와서 있었다. 또 무엇을 지으려는지 저수지 옆에 터를 닦는 중이다. 무슨 카페나 막국수 집은 아닐는지? 요즘 김유정 문학관 주변과 김유정역 주변이 수년 전에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유명세를 치르는 중이다. 사람이 꽤 웅성거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춘천 막국수, 닭갈비, 메뉴가 다양했다. 끓여 먹는 순두부 찌개 2인 분을 시켰다. 어묵, 열무김치, 도라지무침, 배추김치와 나물반찬과 함께 나왔다. 그런데 반찬이 맛있다. 열무김치는 세 번을 추가로 시켰다. 주방아주머니가 식탁 옆을 지나며 뭐 더 드릴까요 한다. 아닙니다. 추가로 시켜 먹었어요. 열무김치이야기를 하니 홍천 밭에서 직접 재배했단다. 아마 주방아주머니는 그 식당에 사장인거 같았다. 아무리 유명 식당이라도 주방장이 손님 식탁까지 와서 말하는 경우를 처음이니까. 금병산 산행을 마친 그날의 하이라이트다. 서울행 청춘열차에 오른 시간이 저녁 5시 40분. 낮이 많이 길어졌다. 서쪽하늘에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다.
첫댓글 새벽부터 종일 비가내리는 저녁시간 입니다.
주말에 비가 내리면 군에 입대하여
기초훈련 받을 때가 생각나네요
1974년 인데 4월 중순에서 6월 말까지였는데,
여산 하교대 교육장은 모두 시뻘건 진흘기더라구요
거의 주말마다 비가 내려 그냥 흙투성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언제 빨아 입었는지 기억조차 없습니다.
청춘방 친구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맹호
금병산이야기 잘보고갑니다 한여름에등산하고 게곡물에발담가보기는 많이했는데 요즈음은 안해보았네요
한주가 시작되는월요일이네요 좋은 한주되세요
산행 후 시원하게 해주는 단순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오랫만에 짜릿함에
순간이었죠. 맹호
나도 가본 금병산 포기하기실어서 쉬엄쉬엄 올라갔었죠 ..
잠깐 수정할 말과 참고의 말을 써도 될까요?
저위에 김유정역의 옛이름이 남춘천역 이라고 쓰셨는데요.
남춘천역은 지금도 그대로 위치만 조금 옮기고 그대로 있구요
김유정역은 신남역 이었답니다.
제가 중학교3년 고교3년을 개교기념일만 되면
전교학생 모두가 춘천시내 모교에서부터 신남역까지
마라톤을 뛰었는데 중간에서 되돌아가는 양심 불량자가 있을까봐
신남역앞에서 팔뚝에다 도장을 찍어주었답니다.
학창시절부터 다리운동을 시켜서 그런지
지금도 전국의 어느산이던지 산행할때 저보다 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네요. ㅋ ㅋ ㅋ
그리고 김유정역에 레일 바이크가 생겼습니다.
예. 경운산님! 맹호
신남역을 까맣게 잊고 남춘역으로 잘못 표기했네요.
맞습니다. 신남역으로 있을때도 다녀왔지요.
구 강촌역에서 레일바이크도 초반에 타보고요.
몸관리를 마라톤으로 하시는구요
아무리 오랫동안 해 온 운동이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직장 다닐때는 회원으로 많이도 다녀건 만
현재는 가끔 편한 마음으로 쉬운 곳에만 다닙니다.
설안산 용아장성릉도 차 보셨는지요.
어렵고 힘든 곳이라 기억에 많이 님습니다. 공룡능선도 그렇구요.
맹호~~~
감사합니다.
마라톤은 중고교 학창시절에 전교생을 개교기념일날 뛰게 해서 뛰었구요
30년전부터는 등산을 다녀서 전국 웬만한산은 거의 다가보았지요.
레일바이크가 김유정역에서 강촌역으로 강촌역에서 김유정역으로 연결되어 있답니다.
참고적으로 김유정역에서 출발하면 내리막이니까 조금 수월하구요
강촌역에서 출발하면 오르막이라서 조금 힘든편이지요.
어제는 국립현충원에가서 저의 27사단 전우 두사람을 참배하고 왔습니다.
두전우 다 자대배치 받은지 6개월도 안되었을때인데
화천에서 보전포 훈련중에 순직한 전우인데 전우애가 남달리
아주 가까운 사이였답니다.
경운산 선배님! 맹호
전국의 산들은 거위 섭렵하셨겠군요.
레일바이크도 초창기에 교회성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문학기행도 하구요.
수기사는 808에서 근무하셨군요.
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맹호!~
경운산 선배님! 맹호
전국의 산들은 거위 섭렵하셨겠군요.
레일바이크도 초창기에 교회성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문학기행도 하구요.
수기사는 808에서 근무하셨군요.
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맹호!~
오래전에 한번 다녀온 산이기도 합니다.
김유정역에서 조금 걸으면 김유정 시인의 유적지가 있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금병산은 특별한 산은 아니고 평범하고 일반적인 작은 산이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나 김유정이라는 특출한 인물을 배출한 산이어서 좋은 느낌으로 산행하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산행 하셨군요.. 인문학과 자연이 어우러진.. 마음이 풍요로운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유, 선배님! 안녀하세요.
이제서야 인사드립니다. 맹호
그렇습니다. 특별한 산은 아닙니다.
그더 작가가 활동하던 신동리에 있어 문학관 들릴 겸 다녀오는 산이죠.
그래도 오랫만에 오르니 언쳤던 것이 쫙 내려가는 홀가분한 기분입니다.
선배님 건강하시고 뵈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시간이 안되는군요. 저에 핑게죠!
감사합니다. 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