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절 우전왕의 감화
1 부처님이 도를 이루신 지 십여 년 뒤의 일이다. 존자 빈두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얻고 고향의 은혜를 갚고자 교상미국에 돌아갔다. 자기 힘으로, 그 나라에도 차츰 부처님 법의 종자를 심을 밭이 마련되었다. 교상미 들 밖 항가 하수 언덕에 우거진 우다가 숲은 그 나라 임금의 동산이다. 줄지어 선 장엽수의 나무들은 어디까지 연속되어, 양양한 항가 하수 물결은 시원한 바람을 불어 보냈다. 한낮 뜨거운 햇볕을 피해 빈두로는 이 나무숲 그늘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마침, 이날 우전왕은 그 왕비와 궁녀들을 데리고 이 동산에서 놀다가 피로하여 서늘한 그늘에 잠자고 있었다. 왕비와 궁녀들은 왕이 잠든 사이에 이곳저곳 거닐다가 문득,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빈두로 존자를 발견하고 설법을 청했다. 그들은 존자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깐 뒤에 잠을 깬 왕은, 왕비와 궁녀들이 보이지 않음을 괴이하게 여겨 뒤를 밟다가, 여자들에게 두러싸인 비구를 발견하고, 음락에 지친 왕은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이 질투의 불길이 타올라 소리쳐 말했다.
"그대는 집을 떠난 사문의 몸으로서, 부녀들에게 접근하여 잡담으로 희롱하니, 해괴하지 않는가?"
존자는 눈을 감은 채 잠자코 말이 없었다. 미친 듯 성난 왕은 칼을 빼어 존자의 목을 겨누었다. 존자는 그래도 아무 소리가 없었다. 왕은 불개미집을 헐어 불개미 떼를 존자의 몸에 흩어 물게 했으나, 존자는 오히려 털끝도 까딱하지 않았다. 그때 왕은, 자기가 함부로 횡포했음이 부끄러워 정상의 태도로 돌아갔다. 다음에 그가 거룩한 석가모니의 제자 빈두로임을 알게 되자, 부끄러운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여인들과 함께 사죄하며 존자의 양해를 얻었다. 이 일로 말미맘아, 왕비의 한 사람인 사마바티는 독실한 신앙을 얻게 되었으며, 따라서 우전왕도 부처님께 귀의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2 며칠 뒤 우전왕은 빈두로 존자가 거처하는 숲을 찾아와 물었다.
"대덕이여! 젊은 비구가 청춘의 몸으로, 새파랗게 머리털을 깎고, 주어진 오욕락을 맛보지도 않으며, 깨끗한 생애의 몸을가져 나감은 무슨 힘에 의함입니까?"
"대왕이여, 이 세상의 눈이신 석가모니께서는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기를 '비구들이여! 나이 않은 여인을 어머니로 보라. 나와 비등한 나이의 여인은 나의 누이로 보라. 그리고 나이 어린 여인은 딸로 보라' 고. 그러므로 젊은 비구들은 청춘의 몸이지마는, 애욕을 좇지 않고 깨끗한 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 아니오. 어머니 같은 여인에게도 비열한 생각을 내는 것이고, 누이 같은 여인이나 딸 같은 여인에게도 불결한 음심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오. 어찌하여 젊은 비구로서, 붉은 피를 몸에 담아 있으면서도 깨끗한 몸을 지킬 수가 있겠소?"
"대왕이여, 이 세상의 광명이신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비구들이여, 이 몸은 발꿈치로부터 이마에 이르기까지 부정한 것으로 채워져 있다. 터럭, 손톱, 발톱, 이빨, 콧물. 눈물, 침, 담, 피, 땀, 대소변 등이 가득 차 있다' 고. 그러므로 젊은 비구는 젊은 몸이지만 깨끗한 행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몸과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를 연마한 비구로는, 혹 그렇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미숙한 비구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오. 부정하다고 관해도 어느새 깨끗하다는 생각을 낼 것이며, 불결한 쪽만을 보고자 해도 어느새 아름답다는 마음이 붙어 다닐 것이오. 젊은 비구로서 몸을 깨끗이 가지는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지 않겠소?"
"대왕이여, 바른 지혜와 바른 눈을 지니신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감각기관의 문호를 잘 단속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눈으로 빛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며, 몸으로 물건에 부딪칠 때에, 그 상을 취하거나 그 경계에 집착하지 말라, 감각기관의 문호를 단속하라. 탐욕ㆍ번뇌는 바로 그 단속 없는 틈을 타서 들어오느니라' 라고. 그러므로 젊 은 비구는, 청춘의 몸이지만 그 욕을 따라가지 않고 깨끗한 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덕이여, 부처님의 교훈은 실로 기특하십니다. 진실로 그것이 젊은 비구의 몸으로 붉은 피가 움직이고 있으면서도, 깨끗한 금욕 생활을 하는 소이로구려. 대덕이여, 나의 경험으로서도 몸과 말과 뜻을 잘 단속하지 않고, 바른 생각을 지니지 않고 감각기관에 맡긴 채 후궁에 들어가면, 곧 비루한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감각기관을 잘 단속하고 바른 생각을 지니게 되면, 결코 거친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진실로 밝고 거룩하신 말씀을 하여 주셨습니다."
라고 찬탄했다.
3 부처님은 차츰 나아가 교상미국에 들어가시어 구사다 장자가 새로 세운 절에 드셨다. 미간디야는 이제 우전왕의 졔일 왕후로서, 보복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처님이 행차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거리의 악한들에게 뇌물을 주어 여러 가지로 부처님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비구들은 걸식하러 시내에 들어갈 때마다 부처님을 비방하는 소리를 귀담아 듣기가 곤란 했다. 아난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우리는 시내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마을로 옮겨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난아, 만일 다른 마을로 옮겨가도, 그 마을에서 또 비난이 일어나면 어찌할 것이냐?"
"부처님이시여, 또 다른 마을로 옮겨 가옵지요."
"아난이여, 그렇게 되면 어디까지 가더라도 한이 없지 않은가? 나는 비방을 받는 곳에서, 진득이 그 비방을 받다가, 그 비방이 그친 뒤에 다른 데로 옮겨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아난이여, 여래는 이로움과 해로움, 훼방과 칭찬, 성하고 쇠함, 괴로움과 즐거움, 이 여덟 가지에 움직이는 것이 아니니라. 이 비방도 이레를 지나면 없어지리라."
미간디야 왕후의 계획은 거짓이 되고 부처님을 믿는 사람은 더 많게 되자, 그 비방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