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반장 월례연수] 그 얼굴에서 그리스도가 빛나는 교회
‘교회’하면 맨 먼저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맨 먼저 떠올리는 말은 ‘하느님’, 다시 말해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생겨난 것도, 교
회의 사명도, 그리고 교회가 향하는 목표도 모두 삼위일체 하느님 없이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던 하느님께서는(히브 1,1-2 참조), 마지막 시대에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이 아드님은 우리 가운데에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말씀과 행적, 당신 자신의 현존을 통해 하느님을 알려주셨으며, 결정적으로는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성부께 청하여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심으로써, 당신의 말씀과 행적,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 속에 드러난 구원의 진리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선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그들 간의 일치 안에서 종말에 있을 구원의 충만함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 제자들의 공동체가 곧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일치로 인해 생겨났고 살고 있으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며 인간 역사 안에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 공동체가 역사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특히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받아들이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서로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오직 사람들이 백성을 이루어 진리 안에서 당신을 알고 당신을 거룩히 섬기도록 하셨다.”(「교회헌장」 9항)
하느님이 인간을 개별적으로 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서로 연결된 백성으로 구원하기를 원하셨다는 이 말씀은 구원의 길은 ‘나 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나타냅니다. 구원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요,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 없는 구원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사람들을 불러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것은,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하느님을 알고 또 하느님을 거룩하게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4,6 참조). 교회는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그런데 복음 선포는 단지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은 사실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그것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는 필립보의 요청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으로서, 우리와 함께 사셨으며(요한 1,14 참조),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고, 당신을 ‘보고, 듣고, 만져볼 수 있게’(1요한 1,1-3 참조) 하심으로써 하느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요한 1,1-2)
그러므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에도 사람들이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즉, 말과 삶을 통한 증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보여주고, 들려주고,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누리는 친교, 우리 사이의 친교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1요한 1,3)
이것을 가리켜 「교회헌장」은 교회가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 한 마디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와 같다”(「교회헌장」 1항)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교회가 7성사와 같은 그런 성사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인 성사를 통해 주어지는 것처럼, 교회는 구원의 진리, 친교를 사람들이 보고 체험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표징’이요, 이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 친교로 초대한다는 의미에서 ‘도구’이며, 이를 ‘성사와 같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보여주고 들려주어야 할 것은, 교회 자신이나 개인의 무엇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보았을 때, 또는 성직자이든 평신도이든 수도자이든, 교회의 어떤 구성원을 보았을 때, 그 얼굴에서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자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얼굴에서 빛나는 그리스도의 빛’으로 모든 사람을 비추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교회헌장」 1항 참조)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5년 3월호, 최현순 데레사 교수(서강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