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슐라오바타CrassulaOvata*
정용기
나의 서식지는 11층 벼랑, 천길 낭떠러지
통유리에 갇힌 거리에는 파도가 몰아쳐요
물보라 너머로 은행과 버스정류장이 일렁거릴 때
잠시 물멀미를 앓기도 하지요, 그래도
쾌청한 오전은 햇빛을 골똘하게 긁어모아
은행에 차곡차곡 적금을 부어요, 그러면
공항이나 항구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지 몰라요
앞 건물이 햇빛을 가리는 오후가 되면
내 몸을 통통하게 불리는 것이 물인지 불인지,
희망인지 절망인지 종잡을 수 없더라도
스스로 몸피를, 키를 재어 보기도 하지요
내가 사는 곳은 우두커니와 물끄러미 사이
목질의 기다림과 다육질의 그리움 사이
해 지고, 긴 밤 홀로 우두커니 견디는
가로등과 남몰래 외로움을 나눠 가져요
풍랑이 잦아든 길모퉁이 꽃집의 뿌리 잘린 꽃들이
이종교배를 꿈꾸며 밤새 발바닥을 간질일 때
물 냄새에 몸이 달아오르곤 하지요
수평선 너머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금씩조금씩 발돋움을 하지요
*건조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줄기와 잎 그리고 뿌리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는 다육식물의 한 종류로 원산지는 남아프리카이며, 흔히 ‘염좌’ 혹은 ‘염자’로 불림
약력-시집 하현달을 보다, 도화역과 도원역 사이, 어쨌거나 다음 생에는.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제8회 웅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