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구속사 강해
아브라함의 유업을 약속 받은 이삭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의 성취는 할례를 통해 완성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다. 여호와께서는 할례의 제도를 세우시는 과정에서 아브라함에게 있어 가장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후손의 탄생에 대하여 명확하게 언질해 주신 것이다(창 17:19). 이 말씀에 따라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얻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이삭을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계승자로 인정하시어 친히 그와 언약을 체결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셨다.
1. 이삭의 출생이 아브라함에게 주는 의미
여호와께서 할례의 제도를 세우신 후 아브라함에게 친히 나타난 사건(창 18:1)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브라함이 장막 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선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한 현현의 현상을 표시해 주고 있다. 바람과 같이 나타난 하나님을 발견한 아브라함은 황급히 뛰쳐나가 그 앞에 몸을 굽히며 그들을 영접하였다(창 18:3-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청을 들어 음식을 드신 것은 아브라함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표시이다. 제사란 죄 있는 인간이 피흘림(희생)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상하였음을 상징하는 제도이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사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벨이 드린 제사 제도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아벨은 죄 있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기의 죄를 대속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한 후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양의 생명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드렸던 것이다. 이것은 장차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원수 된 관계를 화목하게 할 것을 예표하는 신앙의 구체적인 행위였던 것처럼 아브라함 역시 아벨의 사상을 이어 받아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이다.
음식을 드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탄생에 대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말씀하신다(창 18:10).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고 자신과 아브라함이 너무 늙었기 때문에 아들을 잉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아브라함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연 아들을 사라에게서 낳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4)고 재차 이삭의 탄생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 아브라함과 사라의 염려를 덜어주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삭의 탄생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후 지금까지 아브라함은 장차 그의 후손들이 새 나라를 건설할 가나안 일경을 두루 다니며 살펴보았다. 이제 그 땅에 새 나라가 건설될 것을 확신한 아브라함으로서는 장차 그 땅에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될 후손들을 기다리는 것만 남아 있었다. 지금 아브라함에게 있어 최대의 관심은 바로 그 나라를 건설할 후손을 얻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이삭이 탄생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소망이 성취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2. 가나안의 주인으로서의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이삭을 얻게 됨으로서 여호와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친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에 의해 신령한 나라가 건설될 것을 예표하는 증거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가나안의 진정한 주인임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 역시 아브라함을 가나안의 진정한 새 주인으로서 인정하고 대접해 주시는 것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 그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먼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강대한 나라를 건설할 것을 재차 확인해 주셨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지금 그 땅에서 행하고 계획하신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신다(창 18:17-1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새 나라를 건설하시는 목적이 이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곧 구원의 도리를 따라 의와 공도가 구현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고 그 땅에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명확하게 구현되는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 땅은 어떤 이유에서든 불의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만이 나타나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하여 아브라함에게 밝혀주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는 표시이다(창 18:20-21).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 첫째 이유는, 그 땅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기 때문이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으로서 하나님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한 곳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도가 구현되는 신령한 나라가 건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 땅은 전 역사의 흐름에 있어 구속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그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됨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가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시고자 한 것이다. 인류는 그 나라를 바라봄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새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을 받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저촉이 되었을 때에는 그 사회는 의당히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됨을 만민에게 선포하기 위함이다. 특히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건설해야 할 나라에서는 불의를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그 나라가 건설되어질 땅에 여전히 소돔과 고모라가 건재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의를 용납하신다는 표가 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불의한 사회에 대하여 심판하심으로서 어떤 형태로든 새 나라 안에는 불의가 용납될 수 없음을 나타내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심판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땅의 주인으로서 그 땅에 거하는 사람들의 생존에 대하여 당연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들의 중보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창 18:25).
아브라함이 의인의 수를 십 인까지 끌어내린 것은 무조건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심판을 어떻게든지 미연에 막아 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 역시 아브라함이 억지를 부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중재에 응낙하신 것이다. 의인 열 명의 수는 소돔이라는 사회에서 적어도 공의를 표시할 수 있는 최하한 선의 숫자였다.
그 사회가 불의한 성격을 띄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모독하는 사회라 할지라도 아직은 공의를 주장할 수 있고 불의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항거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열 명 정도의 의인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하한선이다. 즉 소돔에는 의인이 10명은 있어야 최소한의 규범이나 공의가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그 정도의 숫자가 없다면 그 사회의 성격은 불의하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패역하다는 기준선이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 역사상에서 그 자취를 감춘 것은 장차 이삭이 태어나 건설할 하나님의 나라가 죄와 악으로부터 구별되기 위한 하나님의 각별한 배려였다. 만일 그 사회를 심판하지 않고 여전히 역사 속에 존재하게 하였다면 죄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사람들에 의해 이 세상 전체가 악으로 음식을 삼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들의 특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공의를 무시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서 장차 그 땅에 건설될 새 나라는 죄로부터 구별되어야 할 것임을 역사 속에 증표로 남겨두셨다.
출처: 예장 서울노회 원문보기 글쓴이: 최정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