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23]아름다운 사람(39)-아, 신영복 선생님
신영복(1941-2016년) 선생님을 떠올리면, 직접 강의를 듣거나 뵌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그분의 탁월한 저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담론』 등을 탐독한 독자로서, 먼저 무조건 ‘존귀한 분’이라는 생각과 함께, 하늘이 왜 그런 분을 일찍 불렀는지(召天) 원망스럽기도 하다. 민중의 술 <처음처럼> 쐬주를 모르는 분은 없을 테지만, <어깨동무체>로 불리는 독특한 필체의 글씨가 선생님의 작품이다. 서예가이기도 하다.
최근 인문서 출판의 대명사라 할 <돌베개> 대표가 『신영복평전』(최영묵·김창남 지음, 583쪽, 2020년 3쇄 발행, 19500원)이라는 귀한 책을 고향집으로 보내줬다. “야호” 소리가 절로 나왔다. <돌벼개>출판사는 선생님과 처음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을까?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비롯하여 백기완 선생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저서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펴내고 있다. 꼭 읽어야할 책을 미처 몰라서 읽지 못하는 고교후배를 챙겨주는 한철희 대표에게 이 글을 통해 고마움을 전한다. 두꺼운 평전은 공저자들의 선생님을 제대로 기리려는 노력들이 책 갈피갈피마다 빛나고 있었다. 책을 어렵게 다 읽은 소감을 단 한마디로 말하면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는 것. 그리고 많이 아팠다.
숙명여대와 육사에서 경제학 강의를 하던 27세의 교수가 운명처럼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년도, 12년도 아니고 교도소에서 20년의 세월을 복역해서도 아니고, 지금은 고전이 된 옥중서한집 『감옥에서의 사색』를 펴내서도 아니다. 정신적으로 고결한 인간이 엄청난 시련을 겪은 후에 피워낸 업적(후학 양성)과 깊은 사상을 다 펼치지 못한 것같기 때문이다. 내처 책꽂이에 꽂아두고 읽지 않았던 그분의 서화 에세이집 『처음처럼』(신영복 글·그림, 231쪽, 2008년 랜덤하우스 펴냄)도, 『더불어숲』 2권도 읽고, 『강의』 도 펼쳐 보면서, 가신 지 8년이나 된 지금, 새삼 그분의 삶과 사상을 곰씹어볼 수 있어 좋았다. 이런 분들을 접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라는 것이다. 무한히도 지적 자극을 주고 별볼일 없는 삶을 성찰토록 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알게 됐으니 좋은 일이다.
선생님의 동양고전 독법은 단순하다. 사람은 어울려 함께 산다는 것. 그분이 잘 썼던 “더불어숲”이라는 글자와 철학의 의미를 보자. 유교儒敎는 종교가 아닌 ‘관계의 철학’을 집대성해놓은 것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역설하고 강조한다. 너와 나, 너와 우리, 관계를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던가. 사람은 삶의 준말이라며 '삶'이란 멋진 글자도 자주 썼다. '사람'의 분자와 분모를 약분하면 '삶'이 되지 않던가. 우리의 삶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가장 아픈 상처도 사람이 남기고 가고, 가장 큰 기쁨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처럼 말이다. 유배지(장기 복역한 교도소)에서 핀 ‘사색의 꽃’이 바로 선생님이 남긴 몇 권의 저서와 서예작품들이 아니던가. 그분의 해적이(일대기와 경력)는 『처음처럼』의 낱개 표지에 있는 설명으로 충분할 테니 대신하다. 낱개 표지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20대 청년 신영복’의 사진이다. 엘리트 청년의 반듯한 외모에 예리함이 숨어 있는 것같다. 감옥에 가기 전의 사진 속, 그는 그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꿈과 희망을 품고 있었을까? 그의 앞날이 그렇게 굴곡지리라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했었을까?
글도 그 사람이고, 글씨도 그 사람이다(書如其人서여기인)라 하지 않던가. 그 말에 영락없는 사람이, 나는 단연코 신영복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거짓말을 한번도 하지 않으셨을 것같은 선생님, 지천명이 다 되어 한 늦깎이결혼, 사모님을 속깊이 사랑하며 단 한번도 부부싸움을 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 선생님(슬하에 아들이 한 명 있다), 참 깨끗하게 사시고, 좋은 말과 글 많이 남기시고, 따르는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먼 길을 떠나셨다(한 문장에 존칭어미는 한번만 넣어야 하나, 선생님이기에 다섯 번이나 붙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한뉘(일평생)는 ‘베스트 인푸루언서'로서, 아니 우리의 '사상의 스승'으로서 우리의 삶에 두고두고 오래오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선생님이 즐겨 쓰시던 어록을 소개하며 맺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먼 여행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이고, 현장이며, 더불어숲'입니다."
The longest journey for anyone of us is from head to heart.
Another longest one is from to feet.
아무리 따뜻한 가슴이라도 실천과 현장의 세계인 '발'까지 가지 못하면 '말짱 꽝'이겠지요. 정말 선생님스러운 어록이지 않나요?
부기: 선생님을 생각하면 오보랩되는 인물이 시인 박노해이다. 어쩐지 두 사람은 뭔가 꼭 집어 말할 수 없는데, 동일인물로 느껴진다. 왜 그럴까? 실패한 혁명가, 지금은 평화활동가로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은 제3국가를 찾아다니며 흑백사진을 찍고 평화운동을 하는 박노해 시인도 선생님과 똑같은 '선인善人'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올해초 <눈물꽃 소년>이라는 아름다운 자전수필을 처음으로 펴냈다. 어렵지 않고, 우리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소년과 소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일독 강추!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Ⅱ-73]아름다운 사람(20)-‘사상가’ 박노해 - Daum 카페
첫댓글 時代의 희생자, 적대적 공생관계의 희생자인 듯....
< 적대적 동반 관계란? >
https://blog.naver.com/aswind33/223503379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