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장 1-2절『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제자들이 세례를 베푼 것은 물세례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세례를 베푸셨다면 성령세례였을 것이다.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일어날 일이며, 현재는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제자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4장 3절『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싫어했다. 남유대와 북이스라엘이 분열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은 앗시라아의 점령 하에서 혼혈된 사람들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자기들과는 다른 존재(이방인)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히 사마리아 사람들은 산에서 그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북이스라엘은 그리심산에서 황금 송아지를 두고 예배하도록 명한 것이다.
4장 5절『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예수님이 사마리아에 가셨으며 수가라는 동네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데, 이 여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여인이었다. 구원은 간절히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손길을 내미는 것을 말해주려고 하는 것이다.
4장 6절『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야곱의 우물은 율법을 상징한다. 오후 여섯시는 하루가 저무는 그 시점이다. 세상의 관점에서 율법은 저물고, 생명의 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는 시점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섯시는 로마의 시간을 따르는 것이다.
4장 8절『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사러 동네 안으로 보내시고 혼자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대화하도록 하셨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하심을 알고 대화의 장면을 보지 못하도록 피하신 것이다. 나중에 이방인 전도를 하는데, 제자들이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면 이방인 전도에 도움이 될 텐데 왜 이렇게 하셨는가? 아직은 제자들의 눈에 이방인 전도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4장 9절『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사마리아 여인조차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과의 벽이 있음을 말해준다.
4장 10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에이)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에데이스)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휘도르 존)를 네게 주었으리라』사마리아 여인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메시아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연인이 간절히 바라던 메시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에이라는 헬라어는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가정법이다. 네가 메시야를 알고 있는데, 만일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메시야라는 것을 알았다면 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에데이스는 지금 당장 확인해서 알았다는 말이다. 휘도르 존은 살아있는 물이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는 하늘의 생명을 의미한다.
4장 11절『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사마리아 여인이 말하는 생수는 우물로부터 얻을 생수를 의미한다. 예수님과 영적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물은 율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4장12절『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에피엔)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야곱은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솔로몬의 아들 때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졌을 때, 북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야곱의 우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에피엔은 아오리스트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개입하신 우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마리아 연인이 예수님께 당신은 물길을 통도 없고, 우물은 깊은데, 야곱보다 신통한 능력이 있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4장 13-14절『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예수님이 주는 물은 단순히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다시 샘물이 되어 계속 솟아오르는 물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마실 수 있게 하는 영생의 물이 된다.
4장 15절『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여인이 생각할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비상식적인 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대꾸한다. 당신이 기적이라도 베풀어서 그런 물을 한번 만들어보라는 것이다.
4장 16-17절『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칼로스)』칼로서는 좋다 라는 말로 영어로 good이라는 단어다. 그런데, 아가도스라는 단어는 좋다 선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칼로스는 가치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가도스는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좋다는 것이다. 아가도스는 하나님 입장에서 사용하는 것이고, 칼로스는 사람 입장에서도 사용될 수 잇다. 여인이 말하는 것이 가치있는 답변이라는 것이다.
4장 18-19절『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미리 말을 하니, 그녀는 예수님을 신통력이 있는 선지자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4장 20절『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서 질문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산(그리심산)에서 예배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말이다.
4장 21-22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모이)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모이는 나와 라는 여격이다. 즉 나와의 영적 관계를 통해서 나를 믿으라는 것이다. 세상에 건물로 세워진 성전이라는 것은 이제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 때가 온다는 말이다. 그 때는 예수님이 있는 지금이라는 것이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의 예배는 금송아지를 만들어 예배하므로 하나님이 임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예루살렘도 형식적인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들였다고 말을 하지만 예배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이 유대인에게 난다는 말에서, 유대인의 히브리어는 이브리이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히브리로 되었다. 이브리의 의미는 강을 건넌 자라는 의미다. 세상의 강에서 하나님 나라로 건넌 자라는 의미로서 임마누엘의 사상이 깔려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이다. 예배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임재의 예배가 아니면 참 예배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늘날 의식과 형식을 강조하는 교회에서 임마누엘의 예배가 아니면 참 예배가 아닌 것이다.
4장 23-24절『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예배할지니라』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는 영과 진리 안에서 라는 말이다. 영과 진리로 라고 번역하면 주체가 나이지만, 영과 진리 안에서 라고 번역되면 주체가 성령이 된다. 진리의 성령 안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