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금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모든 일정을 십자가에 연합된 마음으로 임하게 하옵소서.
연약한 자를 돌아보지 못한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보게 하셔서 긍휼히 여기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오늘도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14.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5.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 끝으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퍼져 나가 영광스럽게 되고
2.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
3.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
4. 너희에 대하여는 우리가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본문 주해)
13~15절 : 바울 사도가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러한 감사는 바로 앞의 내용(1~12절)과 비교되어 나오는 것이다.
앞의 내용이란, 악한 자의 임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들을 따르는 것은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증거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감사한다.
첫째, 하나님의 택하심을 감사한다.
그들이 복음에 대해 반응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들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인하여 감사한다.
“이렇게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복음으로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14절, 새번역)
‘우리의 복음’(14절)이란 예수께로부터 받은 복음 즉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서 네 가지 구원 사건-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현현하심-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14절)이란 최후의 심판때에 나타날 영광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든든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15절, 새번역)
이를 위해 성도들은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굳게 지켜야 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은 ‘사도들의 전한 복음’이다.
16~17절 :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굳세게 해주시기를 기원한다.
성도들을 향한 권면은 성도들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로와 소망을 주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이루셔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들의 일과 말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된다.
3:1~2절 : 바울 사도가 간절한 중보기도를 요청한다.
먼저는 진리의 영으로 복음이 증거되어 듣는 자들이 생명에 이르도록 기도 요청을 한다.
그리고 복음 전파에는 언제나 그것을 훼방하는 세력(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이 현존하는데 그로부터 구해지기를 기도 부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를 믿는 믿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진리를 믿는 믿음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누구인지, 사도들도 모른다. 다만 복음을 선포한 결과, 진리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자를 통해 분별할 뿐이다.
3~5절 : 다시 성도들을 향하여 격려하고 기원한다.
이는 2:16~17의 기원과 병행한다.
성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 그 증거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인내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기를 기원하고 기도한다.
(나의 묵상)
@ “이를 위하여 우리의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4절)
‘복음과 영광’이란 제목을 달고 싶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한 복음을 ‘우리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물론 동역자들과 함께 전한 복음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여기서 우리의 복음이란 예수께로부터 받은 복음이니, 곧 그의 십자가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의 사건을 가리킨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고전15:3~5)
나를 영원한 죽음에서 건지시는 예수님의 이 메시아적 행위를 믿는 것이 바로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영광은 무엇인가?
그것은 장차 종말의 때에 부활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누리며 사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현재 삶에서의 영광을 누리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영광은 언제나 ‘세상에서 잘 되는 나’이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 땅에 밀착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죄인이 생각하는 영광은 당연히 세상 속에서의 형통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오해한다. 즉 예수님을 잘 믿어서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아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십자가의 영광’인 것을 안다.
이 땅에서 주님 가신 길은 십자가를 향한 길이었다.
그러니 그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을 믿는 자, 즉 주님을 따르는 자는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것을 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연합되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인 것도 알게 된다.
하지만 십자가에 연합됨은 이 땅에서는 고난의 삶으로 나타난다.
세상에서 가장 잘 난 줄 알았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임을 알게 되는 것이 고난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죄인됨을 철저히 알게 되어 고백하는 자가 되니, 그 보혈의 은혜가 있는 십자가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그 보혈이 태산보다 크고, 바다보다 깊은 나의 죄를 덮어주고도 남음이 있고, 잡초처럼 질기디질긴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죄를 깊이 아는 자는, 그 초라하고 비참하고 무기력해 보였던 십자가가 눈부신 영광의 십자가임을 알아보게 된다.
바울 사도를 통해 복음을 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결국 이 눈부신 십자가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나로 이 영광을 보게 하시고, 그것을 사모하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다.
@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3:3)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을 굳세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켜 주십니다.”(새번역)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3주 복음을 들은 그들이 오늘날 30년 믿은 자들보다 복음에 올바른 반응을 보이게 하신 분도 주님이시다.
바울은 그 신실하신 주님께서 장차도 그들을 굳세게 하시고, 악한 자들로부터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한다.
복음을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나였다.
이 무감각한 자에게 오셔서 복음을 듣게 하시고, 생명의 삶을 살게 하셨다.
그리고 매일 진리의 말씀을 듣게 하시는 주님이시니, 나의 종말의 때까지 나를 굳세게 하시고 악한 것들로부터 지켜 주실 것을 믿는다.
(묵상 기도)
주님,
복음을 알게 하시고,
십자가의 영광을 바라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의 고백은 거창합니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또 움츠리고 오그라들고마는 비참한 자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세월이 흘러 육체는 연약해지지만
십자가로 달려가는 걸음만은 더욱 힘차길 원합니다.
성령님, 이끌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