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제이@, -너의 여자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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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외로 잘 버텼다.
2년이나 만난 남자친구와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지고 나서도
난 예전보다 밥도 꼬박꼬박 더 잘 먹고 잠도 많이 자고 놀기도 더 잘 놀았다.
물론 혼자지만…. 예상외로 평화로웠다. 무슨일이냐며 이틀동안 쉬지않고
계속 전화를 해 대는 나영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나에게 지쳤는지 곧 잠잠해졌다.
시끄럽게 하던 나영이의 전화도 없으니 내 핸드폰은 물론 잠잠했다.
몇 일 전까지 핸드폰을 쥐고 살던 나를 떠올리니, 웃음이 났다.
얼굴을 쓸어내렸다. 잘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삭제하지 않은 보관함에 있는 그의 문자를 보니
의도하지 않은 눈물이 뜨겁게 타고 내려왔다.
역시나 괜찮지 않은거였다. 감성을 이성으로 억지로 짖누르고 있었던 것 뿐.
나의 이성은 끝내 지치다 지쳐 버텨내지 못하고 감성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두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아…. 밥이나 먹자.”
우울하거나 화날때는 밥 먹는게 최고다. 어른들도 밥이 보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별에도 밥이 보약이라고 믿고 싶다. 반찬이라곤 달랑 김 몇장이었지만
김과 밥을 싸먹는건 언제나 질리지 않는 내 스페셜 메뉴였다.
5분정도 지났을까. 밥을 한 숟가락 남겨놓고 엊그제 이상한 햇소리를 짓껄이던
그 아이의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 아이를 만나야 할 것 같은
묘한 기분이 엄습해오자 저 멀리 침대 모서리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아…. 번호를 모르는구나.”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번호도 모르는 그 아이.
단지 얼굴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는것과 키가 훌쩍 컸던 것 밖에는.
엊그제의 일은 내용모를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궁금해지는 그런 영화.
침대에 앉아 이리저리 엊그제의 일을 떠올리려 애쓰는 찰나,
핸드폰을 쥔 손 안에서 강력한 진동이 울렸다.
사람의 직감일까, 여자의 육감일까,
모르는 번호였다. 그 아이였다. 이건 분명히….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실 전화 올 곳도 없었다.
“여보세요.”
“안녕.지민씨.”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명함이 있을리 만무했고, 번호따위 가르쳐 준 적도 없었다.
“그 정도는 기본이죠. 나인 줄 용케도 아네?”
“내가 원래 목소리 하나는 잘 기억하거든.”
“그래?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왠지 그 아이의 전화를 기다린 것 같아 뜨끔해졌다.
내 속을 다 들여다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저번에도 그랬었다. 추운 날씨에 꽁꽁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 앞에선 벌거벗고 있는 것 마냥 불안했다.
“오늘은 일단 그 둘의 데이트 장소를 탐색하는거야.”
“뭐? 미행하자는 소리야?”
“노노. 미행이 아니지. 그저 우리는 조사하는 것 뿐이야.”
그게 그거지. 뒤따라 가는게 미행이지. 그것도 들키지 않게 몰래.
말꼬리 잡고 늘어져봤자 더 피곤해질 것 같아 더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일단 자주가는 장소를 알아놔야 계획에 도움이 되거든.”
“계획이 있긴 한거야?”
“날 믿어요. 아가씨. 오늘은 아마 둘이 연극을 보러갈꺼야.
그러면 우리는 조심스레 그 둘의 뒤를 밟으면 되는거지.”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
“..원래 오늘 소연이랑 나랑 보러 가기로 한거였으니까.”
소연이.. 내 남자의 여자친구 이름이 소연이구나.
웬지 예쁠 것 같아.
“그건 너 혼자 해도 되잖아?”
“안돼!”
“왜?”
“그건.. 너도 소연이 얼굴 궁금하잖아.”
내 마음을 정확히 꿰뚫고 있구나.
미치도록 궁금했지만, 혹시나 들킬까 하는 조바심이 더 앞섰다.
“들키지는 않을꺼야. 한참 사랑에 빠질때면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그래. 좋아. 몇시에 만날껀데?”
그 아이는 진지했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풋 하고 터져 나오는걸 참은 뒤
로데오광장에서 5시로 정했다. 유치하고 또 유치했다.
정말 이게 뭐하는짓인가 하며 몇번 마음을 돌렸지만
역시나 2년동안 채워져있던 진태의 방은 쉽게 허물어질리가 없었다.
*
“원래 너랑 보기로 한거였다며. 그럼 어딘지 알잖아! 거기로 가있으면 되지.
뭐하러 집 앞까지 와서 고생하냐구.”
“어. 나왔다. 나왔다. 조용해!”
5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우리는 맞은 편 빌라에서 그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잠복근무라도 스는 기분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예뻤다. 이럴때 여자답다라는 말을 쓰는걸까.
호리호리한 몸매에 치렁치렁 허리까지 오는 까만 생머리.
쌍카플은 없지만 또렷한 눈. 하지만 스타일은 꽝이다. 꽝.
패션감각하고는.
“이제 저 녀석 차에 탈꺼야.”
그 아이의 말은 최면을 거나보다.
그녀의 조그만 스니커즈가 몇 발자국 움직이니 바로 앞에 차 한대가 세워져있다.
익숙한 차였다. 외제차라던가 그리 좋은 차는 아니었지만
조수석에서 잠을 청하기엔 딱 좋은 차였다.
“자- 우리도 출발!”
“응?”
차가 출발하고 1분 뒤, 그 아이가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하이힐때문에 고꾸라질뻔 했지만 다행히 그 녀석이 손을 잡고 있어줘서
꽈당 넘어지거나 발목이 삐끗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버스정류장.
“뭐야. 넌 차도 없냐.”
“너도 없잖아.”
“그래도 남자가 차 한대정도는 근사하게 있어야지.”
“다 지네 아부지 차 끌고 다니는거잖아.”
“어쨌든.”
높은 하이힐에 앞꿈치가 욱씬거리자 차 타령을 하면서 입을 삐죽거렸다.
미행이라면서 당사자들은 차를 타고 부릉부릉 가는데.
우리는 버스에서 덜컹덜컹이라니.
27번이 오자 다시 내 손을 잡고 버스에 오르는 아이.
사람이 텅텅 비었다. 맨 뒷 자석으로 가더니 풀썩 앉는다.
당연히 나도 그 옆자리에 앉게 됐지만.
“이거 좀 놔줄래?”
“꼴에 빼는 척은.”
앉은키가 나보다 큰 그 아이를 위로 흘기면서 손을 뿌리쳐보았으나
이상하리만큼 손을 놓지 않는 아이. '손 시렵단 말이야' 라는 말을
덧 붙이긴 했지만 지금 버스 안엔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히터가 빵빵하단걸 이 아인 모르는걸까. 나도 굳이 손을 빼내려 애쓰진 않았다.
정말 그 아이의 손이 차가웠기 때문에.
“근데 니 남자친구 말이야.”
“뭐?”
“그게 얼굴이냐. 정.말 못생겼더라. 마빡이가 훨씬 잘생겼어.”
“얼씨구. 니 여자친구는 어떻고! 머리만 길어서 찰랑이면 다냐.
옷 입은 꼬라지 하고는. 아주 촌티가 팍팍 나더라! 그 꼴로 어디
우리 태진이를 꼬셨대!”
그래도 내 남자친구였다. 내가 아플때나 슬플때나 달려오는 남자친구였다.
물론 잘생긴건 아니었지만 꽤 근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내 남자친구였었다.
흥분한 나는 그 아이의 여자친구였던 소연이란 아이를 마구 씹어댔고.
녀석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더니. 조용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긴 생머리. 내가 제일 좋아했었는데….”
그 아이의 한마디로 나는 웬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미안할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안해졌다.
나는 더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그 아이도 창밖만 바라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동정심이랄까. 동지심이랄까. 나와 같은 처지인 그 아이가 가여워졌다.
“근데 소연이가 너보단 훨~씬 예뻐.”
라는 말을 내 귓가에 속삭이고는
버스에서 홀랑 내려버리지만 않았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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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릿말 달아주신 님들 고마워요! 다 제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어요.
어제 친구들과 송년회 하느라 아침까지 달려서 피곤했는데.
몇분께서 달아주신 꼬릿말 보고 힘을 내서 쓰긴했는데.
딱히 맘에 들게 써지지가 않네요. 흑
초반에는 좀 지루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시고 읽어주세요.
다음편부턴 길게 길게 쓰도록 하겠습니당.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첫댓글 재밌어요 ^^ 한 편 길이가 긴데도 짧게 느껴져서 아쉬워요ㅠ
아 진짜 재밌어요 ㅋㅋ진짜 짧게 느껴진다는 ㅜㅜ 3편 기다리고있을게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