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구원받은 목적
시106.32-48
시 작 기 도
주님이 주권자이시고 모든 것을 통치하심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실제 삶에서 염려와 좌절 의혹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기도하게 하소서.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로 기울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않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서 허탄한 것들을 보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이 인도하시는 생명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게 하소서. 폭력과 음란과 불신으로 가득한 매체들에 말려들지 않게 하소서.
본 문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 가에서 주님을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이 일로 모세까지 화를 입었으니,
33 그들이 모세의 기분을 상하게 하여 모세가 망령되이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34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부하신 대로 이방 백성을 전멸했어야 했는데,
35 오히려 이방 나라와 섞여서, 그들의 행위를 배우며,
36 그들의 우상들을 섬겼으니,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올가미가 되었습니다.
37 그들은 또한 귀신들에게 자기의 아들딸들을 제물로 바쳐서,
38 무죄한 피를 흘렸으니, 이는 가나안의 우상들에게 제물로 바친 그들의 아들딸이 흘린 피였습니다. 그래서 그 땅은 그 피로 더러워졌습니다.
39 그들은 그런 행위로 더러워지고, 그런 행동으로 음란하게 되었습니다.
40 그래서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에게 진노하시고, 주님의 기업을 싫어하셔서,
41 그들을 뭇 나라의 손에 넘기시니, 그들을 미워하는 자들이 그들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42 원수들이 그들을 억압하였고, 그들은 그 권세 아래에 복종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43 주님께서는 그들을 여러 번 건져 주셨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계속하여 거역하며, 자신들의 죄악으로 더욱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44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마다, 그들이 받는 고난을 살펴보아 주셨습니다.
45 그들을 위하여 그들과 맺으신 그 언약을 기억하셨으며, 주님의 그 크신 사랑으로 뜻을 돌이키시어,
46 마침내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들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하셨습니다.
47 주, 우리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여러 나라에 흩어진 우리를 모아 주십시오. 주님의 거룩한 이름에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시오.
48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영원토록 찬송을 받아 주십시오. 온 백성은 "아멘!" 하고 응답하여라. 할렐루야.
본 문 의 뜻
므리바에서 물이 없어 불평하고 원망하여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주님을 시험한 일(민20.2-13)이, 중재자 모세에게도 영향을 미쳐 모세는 믿음으로 행하지 못하고 경솔하게 말하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치명적인 손해를 보게 됩니다. 여기까지 모세오경의 사건들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특정 성경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의 불성실의 반복과 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언약의 신실하심을 보이시는 사랑인 헤세드를 보이시는 부분입니다. 그 헤세드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흩어졌던 그들을 모으시는 하나님을 감사,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노래로 이 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벨론 포로의 일만을 말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언약에 불성실하고 죄악과 불순종으로 주님의 진노를 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양태를 일반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사기 2.11-3.6에서 당시 그들의 신앙의 패턴을 요약한 것과 동일한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하여 불순종하고 이방민족의 침략 또는 전쟁 등의 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고, 그들이 부르짖어 구원을 호소하면 주님께서 세우신 자들을 보내서 구원하시고 그러다가 다시 주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이렇게 반복되는 그들의 신앙형태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의 언약관계에 주님은 정말로 신실하시나,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불성실하고 주님을 거역하는 것을 극렬하게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맺으신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헤세드르 보이시사 분노를 거두시고 자비를 베풀어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생각대로 주님께 반역하는 죄악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헤세드의 사랑은 7절에서 보듯 출애굽의 구원의 기초이고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주시는 은혜의 기초이고 타락한 그들을 구원하시는 자비의 기초입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기뻐해야할 것은 오직 이 헤세드의 사랑을 보이시는 신실한 주님이십니다. (시90.14).
그리고 이 시의 맺음처럼, 그렇게 구원하시는 자비를 베푸시는 목적은 그들이 주님의 이름에 감사하고 찬양하고 모든 민족을 향하여 그것을 노래하며 영광을 돌리게 함입니다. 그것이 에베소서 2.510에서 말한 구원의 목적 더 나아가 창조의 목적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5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나 의 묵 상
(비참함)탐욕, 불평, 반역, 우상숭배, 원망, 불순종, 주님을 시험함으로 살면서, 큰 은혜로 구원하시고 언약관계로 부르신 주님을 떠나서 다시 불신의 시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행동했습니다. 그것은 나를 구원하신 목적과 창조목적을 저버리고 산 것입니다. 그리고 힘들 때만 부르짖고 헤어나면 다시 불성실로 되돌아가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목적, 하나님의 구원과 창조의 목적을 버리고 사는 비참함 인생이었습니다.
(구원)그러나, 영원한 언약을 위한 주님 사랑과 신실하심은 헤세드로 나타나서 나를 구원하셨습니다. 주님의 언약을 버리고 불성실하고 불순종한 나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보내시사 십자가 구속과 부활의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선언하시고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불성실하고 불순종하는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 장사되었고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창조되어 태어난 목적을 향해 살아갑니다. 그것은 주님의 영원한 사랑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선한 일을 모든 민족을 향해 선포하기 위해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품)이제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그 분의 영원한 언약 아래 머물며 나의 창조 목적을 향해 기도하며 힘차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기 도
주님의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그 목적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하시고, 그 목적을 위해 더 똑바로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을 찬양하는 나의 모든 삶의 행동들이 더욱 풍성해지고 흠이 없어지게 하사 모든 민족을 향해 그것을 전파하게 하소서.
주님의 모든 교회들에게 예배의 영을 부으사 주님의 헤세드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모든 민족에게 선포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을 창조하신 주님의 목적을 깨달아 알아서 주님께로 돌이켜 나아오게 하소서. 주님의 은혜의 소식을 듣는 자마다 그 영광을 보고 주님께로 몰려오게 하소서.
생 명 일 기 (8월30일 금 일기)
이제 여름이 끝나가는 지 햇볕은 강하게 내리 쬐지만 하늘이 더 파랗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맑은 공기 속으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정상의 바위들과 용암이 타고 흘렀던 깊은 꼴짜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은 그 산을 보며 산 같은 주님을 봅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라도 크고 높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 산 같은 주님입니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주님을 봅니다. 그런 하늘을 정확히 어떻게 표현할지는 몰라도 티없이 맑게 푸르고 높은 하늘 같은 주님을 봅니다.
그리고 나를 보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는 않았습니다. 작고 약하고 부정, 불순한 나를 느끼는 것 이외에 더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 빛이 사라지고 산과 하늘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을 때 두려움과 아쉽고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주님을 보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동차전등과 가로등의 희미한 빛에 의지하여 더듬어 간신히 길을 헤쳐 나갈 뿐입니다. 교만을 넘어지든, 탐욕으로 넘어지든, 공격과 유혹으로 넘어지든, 불신앙으로 넘어지든 간에, 어떻게든 너무나 취약하고 흔들리는 나를 봅니다. 내 안에 가까이 계신 주님을 잊었을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