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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하게 길지만 별로 재미없는 여행기를 심심할 때 읽으라고
앞으로는 이렇게 써질지도 모르겠고...
[왔다갔다 쿠바 여행기]
지난 1월 20일 밤 쿠바 아바나에 도착했다. 미국 LA 공항을 떠난 게 아침 9시 40분, 멕시코시티에 기착해 입국 심사를 거친 뒤 다시 비행기를 탔다. 쿠바행 비행기를 타기 전 입국 비자를 샀다. 멕시코 페소로 대략 270페소를 지불했다. 아직 환율에 대한 감이 없다. 떠나기 전 미국 달러로는 분명 15달러라고 했는데. 멕시코 페소를 아직 쓰기 전이기 때문에 뭐가 뭔지를 모르겠다. 아무튼 밤 11시에 도착을 하고 보니 돈을 바꾸기가 어렵다. 비행기가 겹쳐서 들어온 탓인지 짐이 나오는데 무려 50분이 걸렸다. 긴장한 상태로 서 있으려니 나중엔 허리가 아프다. 그러나 환전을 하는 줄도 길기만 하다. 그런 나를 겨냥한 택시 기사가 다가오더니 돈은 자기가 중간에 바꿔주겠단다. 그래서 그냥 30쿡(대략 4만원)에 가기로 하고 덜렁 탔다. 숙소가 걱정이 되어서다. 한국에서 미리 메일로 예약을 하고 난 뒤 전화를 계속했으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기사는 가다가 중간에 할리데이인 호텔에 가서 돈을 바꿔 온다. 50유로에 47.95쿡을 준다. 나중에 살펴보니 역시 손해를 보고 바꾼 셈이다. 어쨌든 예약한 카사 앞으로 가서 연락을 취하니 영 불통이고, 어렵게 기사가 전화를 하니 만원이어서 방이 없단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 옆집에서 한국인 학생이 나오더니 걱정을 함께해 준다. 원래 쿠바 사람들이 그렇다나. 그건 그거고 나는 다급해졌다. 그런 내가 딱했던지 거기서 묵으라고 한다. 주인은 자기 집에 가서 없지만 그 집은 한국인 학생들이 주로 묵는 카사로 유명한 ‘요반나의 집’이다. 도미토리 형식으로 침대만 주는데 하룻밤에 10쿡이다. 1쿡은 대략 1200원 정도다, 우리 돈으로 만 원이 조금 넘는다. 마침 새벽 3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해서 일찍 나가는 학생이 나에게 자기 침대를 쓰라고 양보를 한다. 체면 불구하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낯선 곳에서 한밤에 헤매 봤자 좋은 수가 없을 테니. 방에 들어가니 한 방에 침대가 4개 놓여 있다. 맨 구석을 배정받고 들어가 몸을 누이니 몸이 그냥 가라앉는다. 미국과 시차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아침에 출발해서 거의 20시간 이상이 흘렀다. 그나저나 몸을 누이니 침대가 말이 아니다. 스프링이 제 맘대로 노는데 나는 그렇다 치고 돌아눕기라도 할라 치면 아우성을 쳐대는 통에 다른 사람들의 안면을 방해하므로 영 마음이 불편해서 제대로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어찌어찌해서 하룻밤 한뎃잠은 면하게 되었다. 다음 날 1월 21일, 집주인 아리아나에게 숙박비 10쿡을 지불하고 싱글룸을 주문했다. 다른 곳에 소개를 해주면서 25쿡이란다. 비싸긴 해도 어쩔 수 없다. 우선 잠을 자야 사람이 살 수 있으니.
쿠바는 올해 2016년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듯하다. 환율은 거의 20% 정도 상승했다. 쿠바 여행 관련 모든 정보는 다 수정해야 할 판이다.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지불하는 비용이 거의 25배 차이가 난다. 관광객을 봉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진 않겠지만 정부에서 정책을 그런 식으로 추진을 하니 국민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환전한 돈은 도착 당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50유로를 47. 95쿡으로 바꿨고, 그다음 날 은행에서 350유로를 369.20에, 25일 산호세 중앙시장에서 100달러를 97쿡에 바꿨다. 거의 50만원의 돈을 경비로 쓰고 있다. 일주일에 이 정도면 예산을 크게 초과한다.
게다가 숙박비는 20쿡을 예상했다가 25쿡으로 5일, 10쿡 2일, 합계 145쿡이다. 앞으로 15일 정도를 더 있어야 하는데 예상외로 지출이 늘어날 것 같다.
전화는 불통이고 인터넷도 카드를 사서 되는 곳에서만 활용할 수 있다. 카드 한 장에 2쿡, 우리 돈으로 2600원인 셈이다. 그것으로 한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연결이 잘되지 않아서 그냥 돈만 잡아먹고 마는 일이 흔하다. 특히 삼성 휴대폰으로는 잘 안된다고 한다. 삼성이 미국하고 친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정작 애플 폰은 잘된다. 참 뭔 소리인지.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어네스트 헤밍웨이. 오늘의 쿠바를 이끄는 세 남자다.
피델은 직접 접할 기회는 없지만 쿠바의 일상에 속속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헤밍웨이는 다른 도시에선 별관심이 없지만 아바나에서는 온통 헤밍웨이다. 그가 다니는 술집 두 군데가 성업이고 저택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에 사람이 몰리고 <노인과 바다>의 모티브를 제공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 꼬히마르가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그가 즐겨 앉아 있었던 레스토랑 “라 떼레사”에는 관광객들이 쉴새없이 몰리고 종업원은 끊임없이 모히또 칵테일을 만들어 낸다.
모든 사람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을 사탄시하는 쿠바가 미국인 헤밍웨이 때문에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모습을 본다. 나 또한 헤밍웨이에게 쓴 돈이 현재까지 가장 많다.
라 플로리디타에서 다이끼리인 파파 헤밍웨이 6쿡, 샌드위치 12쿡.
가 보데기타에서 모히또 2쿡, 생선구이 12쿡, 쌀밥 3쿡.
암보스 문도스 호텔 511호 구경 2쿡, 모히또 옥상 라운지에서 3쿡.
박물관으로 꾸민 저택 구경 5쿡, 택시비 10쿡, 8쿡, 꼬히마르 구경
짧은 시간에 가장 돈을 많이 쓴 남자 중 한 사람이다.
그에 반해 체 게바라는 쿠바 전역을 뒤덮고 있다. 모든 곳에서 체 게바라의 티셔츠가 팔리고 있는 것은 물론 거리 곳곳에 그려져 있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다른 아마추어 화가들이 다시 복제하는 그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남단 산티아고데쿠바에 이르기까지 가장 자주 눈에 띄는 남정네가 체 게바라다. 그의 기념관이 마련된 산타클라라에는 그게 관한 모든 기념품을 모아놓은 가게도 성업 중이다.
<쿠바 여행 일정>
1월 20일
밤 10시 무렵 아바나에 도착(아에로멕시코 비행기)했다.
예약한 방은 공중에 떴고, 허름한 카사에서 삐걱거리는 침대에서 자는 듯 마는 듯 어렵게 자리를 잡고 쿠바의 첫 아침을 맞았다.
1월 21일
아침에 주인에게 사정해서 좀 괜찮은 방으로 혼자서 쓸 곳으로 옮겼다.
하루에 25쿡, 무려 3만 원 가량. 어쨌든 5일 동안 있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예산이 다 틀리고 있다. 아침엔 혼자서 아바나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말레콘 제방을 걸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첫 장면에서도 마지막 장면에서도 나오는 아바나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상징처럼 되어 있는 곳이다. 카리브해의 물결을 직접 받는 곳으로 나중에 보니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은 사람이 다닐 수 없고, 차량도 통제되는 곳이다. 곳곳에서 나를 보고 ‘치나’ ‘하폰’을 부르짖는다. 별달리 관심은 없이 그냥 한번 불러보는 것이다. 모른 척하고 응대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간다. 길거리에서 옥수수튀김을 파는 노점상에게서 한 봉지 1쿡(1200원)을 주고 사서 먹었다. 옥수수 가루를 튀긴 것으로 기름진 간식거리. 다 먹진 못했다. 내가 사서 들고 움직이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손을 벌리기에 한쪽 줬더니 맛나게 먹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배고픈 인민에 대한 지원책이 없나? 결코 비아냥이 아니라 자주 눈에 띄는 걸인이나 노숙인들이 궁금해졌다. 뭔가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것 같았다.
1월 22일
역시 혼자서 이리저리 아바나 중심가를 돌아다녔다. 여행 서적에 따르면 이틀이면 볼만한 것, 갈 만한 곳은 다 끝난다. 그래도 혼자서 이리저리 걸어다녀 보니 기분이 좋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아바나는 예전부터 있었던 귀족 봉건사회가 연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고풍스런 건물과 거대한 석조건물들이 이뤄내는 도시 분위기가 결코 사회주의 체제의 인상을 주지 않는다. 길거리에 도열해 있는 올드카만 해도 다른 국가에서 볼 수 없는 분위기인데, 결국 한때 미국이 지배하던 시절의 편린들이 오늘날 쿠바를 먹여 살리는 한 가지 원천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오비스뽀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 같은 느낌. 여러 레스토랑과 환전소, 전통공예품 시장 등 없는 게 없는 거리로 사람은 가득 차고도 넘치는 곳이다. 입구에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던 바인 ‘라 플로리디타’가 있다. 그가 즐겨 마셨던 ‘다이끼리’(럼에 민트와 설탕을 섞은 칵테일)를 ‘파파 헤밍웨이’라는 이름으로 6쿡(7200원)이나 받는다. 다른 물가에 비교하면 거의 바가지 수준이다. 바의 한 구석에는 헤밍웨이의 동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사람들이 연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대느라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다. 그냥 동상 사진만 멀리서 한 컷 찍었다. 점심시간인데도 악사 몇몇이 쿠바 음악을 연주한다. 그냥 들을 수만은 없어서 팁으로 1쿡 내고 나왔다.
1월 23일
오늘도 헤밍웨이와 함께했다. 우선 아침에 오비스뽀 거리로 다시 나가서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 갔다. 문도스 호텔 511호에 머물렀는데 그 방은 노크를 하면 열어서 2쿡을 받고 보여준다. 정말 장삿속이 대단하다. 그 뒤에 6층을 거쳐 옥상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전망이란다. 모히또 칵테일 한 잔에 3쿡을 받고 역시 악사들이 연주를 한다. 바라보는 풍광은 나쁜 편은 아니다. 호텔을 나서 다시 거리를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이 주는 안정된 분위기가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 저녁에는 다시 대성당 광장 한쪽 구석에 있는 ‘보데기타 델 메디오’에서 생선요리와 함께 모히또를 마셨다. 역시 악사들의 연주가 곁들여지고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몰려 가게 앞은 거의 북새통이다. 어렵게 직원에게 부탁해서 모처럼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 뒤 숙소로 돌아왔다.
1월 24일
같이 머무는 한국인 여행객들과 아멜 거리에서 열리는 룸바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10시쯤 길을 나서 쁘라도 거리라는 산책로를 따라 말레꼰까지 갔다가 계속 걸었다. 거의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아멜 거리에 도착을 하니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서 어디로 접근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관광객들도 대거 몰려와선 정말 사람 구경이 더 먼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공연은 좋았다. 춤도 잘 추고 노래도 들을 만하다. 라틴계의 열정을 가득 담은 공연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애환을 담은 탓일까. 격렬한 몸짓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난장의 활기를 가득 전해 준다. 저녁엔 재즈 공연을 보러 갔다. 모든 여행 서적에서 추천을 하고 있는 재즈클럽이다. ‘라 소라 이 엘 쿠에르보(여우와 까마귀)’라는 곳이다.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연주자가 이끄는 밴드인데, 이름은 확인을 못했다. 세련된 연주에 가수로 나오는 흑인 여가수의 노래도 좋다. 세상은 좁다고 10시부터 입장을 하는데 일찍 가서 서 있으려니 앞에서 한국인이 반색을 하면 반긴다. 그 사람은 박사과정 중이고 한국에 못 간 지 3년이 넘었다면 무척 반긴다. 나는 멕시코에 교환학생으로 온 대학 4학년 여학생과 함께 구경을 갔다. 같이 올 사람을 구하지 못해 입장료 10쿡을 내줄테니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그 학생도 여행 막바지여서 공짜 구경을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흔쾌히 따라나섰다. 늙은 몸으로 여행을 다니려니 돈이 확실히 많이 들긴 한다. 연주는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잠깐 동영상을 찍기도 했으나 연주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냥 듣기로 했다. 중간에 계속 찍기만 하는 미국인(?)이 있어서 옆눈으로 흘겼는데, 그 사람이 나가면서 ‘안녕하세요’ 하는 바람에 놀랐다. 한국인 부인과 온 것 같았다.
1월 25일
유명한 빠따르가스 시가 공장 견학을 갔으나 하지 못했다. 방법이 달라졌다고 한다. 다른 곳에 있는 호텔에서 입장권을 사서 다른 관광객과 함께 오란다. 그래서 다음에 가기로 하고,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우선 산티아고데쿠바로 가기 위한 버스표를 사야 했다. 두 사람이 가기로 했기에 버스 터미널에 가서 먼저 예약을 했다. 오후 3시 출발. 요금은 무려 51쿡, 우리 돈으로 6만원이 넘는 거금이다. 시간도 12시간에서 16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다들 추우니까 담요를 가지고 타야 한다는 둥 말들이 많다. 나중에 보니 역시 지나치게 에어컨이 강해서 무척 추웠다. 다른 이동 수단으로는 ‘까미욘’이라는 게 있는데, 트럭을 개조한 것으로 사람을 가득 태우고 다닌다고 한다. 일단 사람이 다 타야지 출발한다고. 그러나 요금은 10쿡으로 5분의 1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은 많이 찾는다고 한다. 다만 승차감은 포기해야 한다. 버스표를 예약한 뒤 헤밍웨이 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고 시간도 어중간해서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4명이 함께 타서 12쿡으로 흥정을 했다. 가 보니 규모가 대단하다. 3층에는 전망대 겸 작업실이 있는데 멀리 볼 수 있는 망원경까지 설치해 두었다. 타고 다니는 배도 그대로 전시해 두었고 집의 규모도 상당히 크다. 그가 추방된 뒤 겪었을 상실감이 이해가 된다. 모든 방에서 내다보는 전망도 압권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한때라도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었던 그가 정말로 부러웠다. 그런 다음에 오늘은 헤밍웨이를 다 떼기로 하고 꼬히마르로 갔다. 택시비는 8쿡이다. 시간이 꽤 걸린다. 한적한 어촌에 헤밍웨이의 동상이 있다. 그러나 같이 간 일행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사진 몇 장 찍고 아바나 시내로 돌아왔다.
1월 26일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특이한 지형의 비냘레스에 하루 일정으로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 30쿡씩 4인이 총 120쿡을 줬다. 지형이 독특한 것은 알겠는데 시간을 갖고 그곳에 머물면서 두루두루 살피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는 일정이었다. 택시기사는 별로 열정이 없다. 우리가 어디 가자고 해도 거긴 안 된다는 소리만 한다.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은 담배를 직접 경작하고 말리기도 하는 농장에서 할아버지가 직접 시가를 말아서 주었다. 서로 돌려가며 한 모금 빨아보니 진짜 향기가 좋았다. 그래서 아바나 시가 공장 견학은 5쿡이나 들여야 하기에 그냥 포기했다.
1월 27일
오후 3시에 아바나에서 산티아고데쿠바로 비아술 고속버스를 타고 출발하기로 했다. 같은 집에 묵던 멕시코 교환학생은 오늘 떠난다. 그래도 2, 3일 함께 다녔기에 헤어진다니 서운했다. 인사를 하고 나는 오비스뽀 거리로 가서 돈을 바꿨다. 유로로 바꾸다가 달러로 바꿨는데, 수수료를 엄청나게 떼는 통에 손해를 많이 봤다. 1시 무렵에 까사를 떠나서 비아술 버스를 타러 갔다. 터미널에 도착을 한 뒤 한참을 기다렸고, 3시도 넘었는데 정작 버스는 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직원이 뭐라고 하긴 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같이 가는 일행도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가 없단다. 그 아가씨는 파라과이에서 교민 자녀를 2년간 가르친 선생님이기에 어느 정도 말을 할 줄 아는데, 쿠바 말은 너무 빠르고 발음도 생략하는 게 많아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무조건 맥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거의 5시가 되어서야 버스가 들어온다. 어렵게 타고서 출발을 했다. 정말 춥다. 그래서 쉬는 곳마다 화장실을 가야 했고 갈 때마다 1모네다(50원)를 내야 한다. 새벽 2시에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모든 화장실에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직원이 지키고 있다가 볼일을 보고 나오면 즉시 물을 들고 들어가서 내리는 것이다. 추운(?) 밤을 어렵게 버티면서 산티아고데쿠바를 향해서 내려갔다.
1월 28일
정말 1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아침 9시 무렵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택시를 타라고 사람들이 몰려든다. 짐도 있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갈 만한 곳으로 정해 둔 까사가 있는 쪽으로 갔다. 문을 두드리니 방이 다 찼단다. 자기 조카가 하는 집으로 소개해 준다고 하는데, 따라가다 보니 중심가에서 멀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찾겠다고 하고 돌아섰다. 레스토랑을 함께 하는 곳으로 바로 길가에 있다. 방 하나에 25쿡이다. 배가 고프기에 아침을 4쿡을 주고 먹기로 했다. 푸짐하게 잘 차려준 밥상을 받고 밤새 굶주린 속을 채웠다. 밥을 먹고 난 뒤 시내 구경을 나섰다. 다른 도시도 그렇듯이 광장을 중심으로 한나절 둘러보면 거의 끝이 난다. 그래도 이곳은 쿠바 혁명에서 나름 의미를 가진 곳이다. 그러나 역시 일행은 관심이 없다. 아바나에 비해 사람들이 더욱 귀찮게 구는 바람에 자꾸 화만 낸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짜증이 나긴 한다. 보행자 거리로 되어 있는 쇼핑 거리가 화려하다. 맛있는 츄로스를 5모네다(200원 정도)에 먹었다. 정말 맛있다.
1월 29일
혼자서 산티아고데쿠바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다른 곳보다 몬까다 병영을 찾아갔다. 쿠바 혁명의 중요한 전투가 일어난 곳이다. 박물관으로 바꿔서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 옆은 학교로 상요하고 있다. 일행은 광장에서 인터넷을 하겠다고 하기에 그냥 혼자서 찾아갔다. 시내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그런 대로 잘 꾸며놓았다. 당시 있었던 총격의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 그곳에 다녀온 뒤 다음 날 트리니다드로 떠날 준비를 했다.
1월 30일
트리니다드로 출발하는 버스가 오후 7시 30분이기에 오늘 하루도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다시 한 번 시내를 돌면서 걷다가 쉬고 걷다가 쉬곤 했다. 날씨는 무척 덥다. 이런 데 대한 치유책으로 쿠바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그것도 맛있고 아주 싸다. 게다가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 준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밥은 싼 피자로 때우기로 했다. 맛도 그런 대로 괜찮다. 저녁 7시 30분에 타면 12시간의 여정이다. 참으로 나라가 길어서 그런지 이동하는 데 시간이 무척 많이 걸린다.
1월 31일
아침 7시 30분 무렵에 트리니다드에 도착했다. 그야말로 12시간의 장정이다. 도착하자마자 까사를 찾았으나 역시 방이 찼단다. 그 사람이 다른 집을 소개해 줘서 자리를 잡고 즉시 잉헤니오스 계곡으로 가는 증기기관차를 탔다. 사탕수수 농장 지역으로 옛날 노예들을 감시하던 탑이 유물처럼 남아서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증기기관차는 정말 느리게 간다. 비용은 10쿡. 한 시간 반 정도 달려서 사람들을 내려놓는데 공예품을 팔러 나온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노예감시탑에도 1쿡을 내고 올라가 본다. 전망은 좋지만 그 용도가 사람들 잡는 데 쓰인 것이니 씁쓸할 뿐. 내려와 다시 기관차를 타고 1시 무렵 하차시킨 곳은 레스토랑이다. 점심을 먹을 곳이 그곳뿐이다. 게다가 무조건 메뉴는 한 가지 닭요리로 한 사람에 음료 포함해서 12쿡이나 받는다. 배가 고파서 먹긴 하는데 정말 심하다. 툴툴거리면서 다 먹지도 못했다. 원래 좋아하지도 않지만 그다지 맛도 없었다. 트리니다드로 돌아오니 오후 3시 정도 되었다. 일행은 아침에 잡은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내일은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한다. 마침 한국인에게 호의적인 할아버지가 하는 까사가 있는데 내일은 방이 빈단다. 저녁에는 광장에서 연주를 하며 술도 파는 곳에서 한 잔 하면서 연주를 즐겼다. 관객들이 나와서 춤도 추는데 쿠바 사람은 물론 관광객도 스스럼없이 합류한다. 그러나 쿠바 사람들의 음감과 몸놀림은 아무도 못 따라가는 듯하다. 나는 태생이 그러니 별로 부럽지도 않다. 그래도 보고 있으면 즐겁긴 하다. 저녁을 알차게 보냈다고나 할까.
2월 1일
아침에 짐을 싸고 숙소에서 나와 어제 가고 싶었던 곳으로 갔다.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방값이 비싸다. 30쿡이란다. 지난밤은 25쿡이었는데, 그리고 아침도 3쿡을 받는다. 그렇지만 이제 물릴 수도 없다. 그래도 방이 크고 깨끗해서 다행이다. 물론 물도 잘 나온다. 그다음 혼자서 거리를 걸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도시답게 길이 독특하다. 바닥에 조그만 자갈들이 깔려 걷는 기분이 좋다. 그러나 차들이 다니기에는 별로 좋지 않다. 타이어에 손상도 많이 갈 것이고 울퉁불퉁한 길을 달릴 수도 없고. 승차감도 안 좋을 것이고. 어쨌든 혼자서 멀리까지 가면서 도시를 한 바퀴 돌고 왔다. 내일은 동행과 헤어져서 혼자서 산타클라라로 간다. 같이 간 사람은 별로 쿠바혁명에 관심이 없다. 체 게바라는 알고 있긴 하지만 <모토사이클 다이어리>가 전부고, 쿠바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으로 알고 있는 정도다. 나도 그다지 많이 아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시대에는 게바라 평전도 읽고 쿠바혁명과 그 시기 미국의 대응 등 조금은 알고 있는 지식이 있으니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동행자는 그냥 아바나로 먼저 돌아가겠다고 한다.
2월 2일
오전 느지막이 밥을 먹고 산타클라라로 오후 3시에 출발했다. 동행은 4시 1ᅟᅡᆫ이어서 버스 터미널에서 좀 더 있다가 가야 한다. 도착하니 저녁 6시 무렵이다. 자전거 택시를 타라고 한 사람이 와서 권한다. 일단 아바나로 돌아가는 비아술 버스 예약부터 해야 한다. 자기가 기다리겠단다. 2쿡에 가기로 하고 예약을 한 뒤 택시를 탔다. 가는 길에 석양 속에 어스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체 게바라의 동상이 보인다. 기사가 사진을 찍겠냐고 묻는다. 그냥 가는 길에 대충 몇 장 찰칵거렸다. 힘들게 땀을 닦으면서 페달을 밟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 자기한테 좋은 운동이라며 웃는다. 그러더니 어느 까사 앞에 자전거를 세운다. 주인이 즉시 나오는 것을 보니 서로 연락을 했나 보다. 25쿡을 달란다. 비싸다고 했더니 아침을 그냥 주겠다고 해서 그러라며 이틀을 묵기로 했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 하겠기에 혼자 나와서 볶음밥을 시켜서 먹었다. 거리에 내놓은 테이블에서 먹고 있노라니 지나가는 한 남자가 휘파람을 분다. 모른 척하다가 돌아보니 체 게바라의 얼굴이 들어간 3모네다(120원 정도)짜리 돈을 사라고 흔든다. 나는 산티아고데쿠바에서 거스름으로 받은 게 하나 있어서 별로 더 가질 생각이 없었다. 그냥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별말 없이 간다. 죽은 게바라가 산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도시다.
2월 3일
산타클라라는 그야말로 체 게바라의 도시다. 어제 도착해서 석양 속에 맞아 주던 체가 도시 곳곳에서 살아 있다 기념관을 찾아가니 대단히 넓은 규모로 조성이 되어 있다. 1987년 널찍한 광장을 만들고 체 게바라의 동상과 함께 시체를 안치한 곳에 영원의 불꽃이 점화되어 추모객을 맞고 있다. 박물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진과 출생증명서 등 그에 관한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생애 전반에 걸쳐 관련된 자료와 모아둔 사진만 해도 상당하다. 대부분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다. 전투를 하면서 쓰고 다녔던 상징이 된 모자도 있다. 시설도 현대적이지만 관리도 최첨단이다. 모든 사람이 가방을 맡기고 들어간다. 추념관은 숙연한 분위기가 넘친다.
철저하게 사진 촬영을 금하고 있다. 바깥의 동상밖에는 찍을 수가 없다. 산타클라라에는 다른 볼거리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체의 사진이 들어간 3모네타 지폐를 팔러 다니고 체의 사진이 들어간 동전으로 만든 열쇠고리가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다. 아침에 나가 반나절 정도 돌아다니니 도시 관광은 끝이다. 사람 사는 모습을 속속들이 살피려면 시간의 한계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게바라 부분을 떼고 나면 그냥 평범한 일상의 삶이 연속될 뿐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다른 도시처럼 극성스럽지는 않다. 비달 광장에 앉아 해를 피하고 있자니 젊은 남자 하나가 다가와 옆에 앉는다. “치나? 하뽕?” 나는 “꼬레아”라고 대답한다. 그 즉시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이어서 “마이 프렌드 인 꼬레아”란다. “흥칫뽕!” 그다음에는 살사에 관심이 없냐고 묻기에 가만히 대꾸하지 않고 있었더니 자기도 멋쩍은 듯 그냥 툴툴 털고 일어나서 가버린다. 간만의 젊은 남자의 관심이긴 한데, 목적이 너무 분명하다.
2월 4일
산타클라라에서 아침 11시 30분에 아바나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렸으나 12시나 되어서야 나타났다. 다른 곳에서 오는데 연착된 것이다. 오후 4시가 지나 아바나에 도착하니 택시 기사들이 다가온다. 그런데 까삐똘리오까지 무려 10쿡(12000원 정도)을 달란다. 나는 3쿡을 부르짖었으나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기에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 가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서툰 스페인어로 물었더니 27번을 타란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1모네다(50원)를 내고 탔다. 그야말로 돈을 제대로 번 듯한 뿌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아바나 사람이 다 되었다! 도착을 하고 까사에 짐을 풀고 지방에 함께 갔던 동행과 6시에 만나기로 했기에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타나질 않는다. 다른 곳에 갔는지 안 오기에 그냥 일본 음식점에 저녁을 먹으러 혼자 갔다. 그곳에서 일본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데, 만나기로 한 사람이 들어온다. 자기가 조금 늦었다고. 그래서 일식집에 있을 것 같아서 왔단다. 이 집은 한국인들에게 정말 중요하다. 쿠바인과 결혼한 일본 여성이 하는 음식점인데, 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쌀은 그다지 찰기가 없다. 그렇지만 장국도 있고, 레모네이드를 500원 받는데 맛이 기막히다. 갈 때마다 마시게 된다. 아무튼 무사히 아바나에 재입성했다.
2월 5일
새벽에 자는 데 엄청난 기세로 비가 내렸다. 정말 건기라는 계절에 맞지 않게 쿠바 여행 동안 비가 상당히 자주 온다. 밤에만 오고 다행히 아침에는 말끔히 개었고 하늘은 청명하진 않지만 바람도 불어서 무척 선선한 날이다. 걸어다니는 데 아주 알맞은 날이다. 공예품 시장인 ‘산호세’로 가서 체 게바라 티셔츠를 사려고 했다. 그러나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으로 하나를 샀다. 지난번에도 갔던 가게 주인의 딸이 이민호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가지고 갔던 사진을 한 장 줬더니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무척 좋아한다. 무거운 것을 들고 간 보람을 잠깐 느꼈다. 쿠바에서 한류는 역시 상당하다. 가게 종업원들도 드라마에 대해 아는 척하고, 한국 영화를 봤다며 이야기를 거는 사람도 간혹 있다. 언젠가는 한국 부부가 딸 둘과 왔다가 여학생들에게 그 딸들이 붙들려 얘기하고 사진 찍고 하느라 거의 30분 동안 잡혀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어쨌든 티셔츠를 한 장 쿠바 기념품으로 샀다. 변명 같지만 시가를 사려고 했으나 너무 비싸고(중간이 15개 정도에 30만 원?), 보내기도 쉽지 않단다.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귀국하면 모르겠으나 쿠바에서는 부쳐도 분실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2월 6일
혼자서 국립미술관을 찾았다. 쿠바의 예술 세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상당히 좋은 작품이 많았다. 영어 설명이 붙어 있지 않아서 충분한 이해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작품만을 두고 볼 때 상당한 수준이 느껴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초현실주의 작가 위프레도 람(Wifredo Ram)의 작품은 역시 이름대로 다소 기괴한 분위기를 보였으나 매력적이었다. 5쿡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았다. 의외로 만화적인 발상의 작품들이 재미있었고, 사회 풍자적인 작품들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일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서 다소 아쉬웠다. 그다음에는 맞은편에 있는 혁명박물관에 갔다 입장료가 무려 8쿡! 이곳은 다분히 쿠바의 체제 선전적인 곳이다. 과거 바띠스타 정부 시절의 관저를 활용한 곳으로 미국 대통령을 희화화한 표현물도 있다.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이후 오늘의 쿠바를 일구기까지의 단계를 시대별로 정리했다. 역시 영어 설명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다소 지루하다. 일일이 읽을 수도 없고, 글이 많은 전시관이다. 체 게바라에게 특별히 헌정한 방도 있고, 그가 쓰던 베레모, 기관총 등 관련 물품을 전시해 놓기도 했다.
2월 7일
일요일. 어제 아바나에 와서 오늘 한국에 들어가는 여행자를 한 명 만났다. 저녁 8시 비행기여서 오늘 하루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함께 다시 아멜 거리로 가기로 했는데 밤새 비가 쏟아지고 아침에도 비가 오락가락이다. 그래도 일단 집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우선 코펠리아 아이스크림 집 앞으로 갔다. 날씨가 궂은 탓인지 오늘은 줄도 많이 서지 않았고 그동안 먹지 못했던 딸기 아이스크림도 있다. 역시 싸다 우리 돈으로 250원 정도면 5숟가락을 담은 것을 먹을 수 있다. 거기다 맛도 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난 뒤 아멜 거리에서 하는 룸바 공연을 보러 갔다. 관광객들이 뒤엉겨 정신이 없다. 그래도 공연은 좋다. 춤꾼을 보면 정말 신들린 듯이 춘다. 흉내도 낼 수 없다. 어느 정도 공연을 보고 나와서 동네 맛집으로 유명한 곳을 찾아가 피자를 먹었다. 역시 맛있다. 그런데 너무 기다린다. 40분 정도 기다렸다가 10분 만에 해치웠다. 다시 버스를 타고 센트로로 와서 일행이 선물용 커피를 사는 데 따라갔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문제가 좀 복잡하게 얽혔다. 페인트칠을 하는 바람에 냄새가 많이 난다. 그래서 다른 집으로 옮기기로 했는데 현재 집 주인은 서운해 한다. 그렇지만 돈도 비싸고 해서 그냥 옮기겠다고 했다. 쿠바 일정상 비용을 과다지출해서 절약해야 한다. 오늘 떠나는 여행자는 경주에 사는 데 프랑스 파리를 거쳐 집으로 간단다. 택시를 타고 떠나는 사람을 전송하고 나와 다른 일행은 저녁을 먹었다. 그 식당은 그동안 랍스타(랑고스따)를 싸게 먹은 집이다. 우리 돈으로 9000원 정도면 푸짐한 랍스타를 먹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매일 한 번씩 먹는다고도 한다. 오랜 만에 쇠고기 요리와 맥주 한 병을 시켜서 먹었다. 밥을 말아서 불고기처럼 먹었다. 맛은 괜찮았지만 간이 짜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니 일본인 여행객이 새로 왔다. 요시카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일본인 평균보다 키가 큰 여성이다. 언제 돌아가냐니까 아직 일정을 정하지 않았단다. 자기는 내일 트리니다드로 까미욘을 타고 떠난단다. 현재 방에는 침대가 모두 3개. 여자들만 받겠다고 주인 할머니가 말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든다.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이제 쿠바에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2월 8일
아침에 일어나 일본인 요시카와 먼저 아침을 먹었다. 오늘 떠날 한국인 일행은 아직 한잠이다. 요시카는 아침에 곧장 떠난단다. 무려 70리터짜리 배낭이다. 씩씩한 여성이다. 행운을 빌어주었다. 12시에 떠나는 한국 여행객은 그동안 나와 지방 여행을 함께한 파라과이 근무 교사다. 거의 2주 동안을 함께했으니 일행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계약기간이 끝나 한국으로 2월말에 귀국한단다. 쿠바 여행의 고독을 많이 메워준 고마운 젊은 여성이다. 12시에 택시가 오기로 했기에 준비하는 동안 나는 아침에 일찍 슈퍼에 가서 7년산 럼주를 17쿡을 주고 샀다. 먼젓번 럼 박물관에 갔을 때 정말 술이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한국에 보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는다. 12시에 내려가 공항으로 떠나는 일행을 배웅했다. 떠나면서 나에게 엽서를 남겼다.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내년에 한국에 가서 맛난 것 사 주기로 했다. 어쨌든 거의 2주를 같이 보내다가 떠나보내니 서운했다. 혼자서 아바나 복습 여행을 했다. 그동안 못 탔던 바지선도 타고 건너편 산 카를로스 요새로 갔다. 입장료만 7쿡이나 받는다. 너무 한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게다가 도중에 봉변을 당해 억지로 마차를 1쿡 주고 탔다. 나쁜 마부가 날 태우려고 개를 두 마리 풀어서 모른 척하고 위협했다. 속상하고 기분이 무척 나쁘다. 그래도 버스는 1모네다를 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또 일식집에서 저녁을 생선까스로 맛나게 먹고나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숙소에는 한국인 여행객 1명이 새로 등장했다. 대전에서 사는 28세의 아가씨. 직장을 그만두고 바꾸는 동안 쉬려고 여행을 왔단다. 아무것도 모르고 준비도 안 한 채로 쿠바에 왔다고. 저녁을 못 먹고 있기에 즉시 데리고 나가서 우선 밥부터 먹게 했다. 나를 만나서 무척이나 안도하는 모양새다. 이렇게 나는 서서히 여행 초보자에서 선배로 위치 전환을 이루어 가고 있다.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나와 같이 다니기로 했다. 내일 일정을 잘 짜야겠다. 그동안 못 본 것 중에서 빠진 것을 같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2월 9일
어제 함께 묵게 된 한국인 여행자와 오늘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침대 3개 중에 하나는 일본인 여성이 들어왔는데, 샤워가 고장이 나서 물을 데워서 써야 한다니까 난감해 하더니 밖에 나갔다 돌아오니 나가버리고 없다. 우리는 할머니가 너무 열심히 살펴주셔서 그냥 불편해도 참고 있는데 역시 일본인들은 다르다. 우리 둘은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데워주는 물로 겨우겨우 씻고 있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다음 혁명광장을 향해 걸어서 가기로 맘을 먹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고 알려줘서 P5번이라는 버스를 탔는데 거꾸로 탔다. 가다가 점점 도시 외곽으로 나가기에 내려서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인 꼬뻴리아를 먼저 가기로 했다. 거긴 사람들이 다 아는 곳이어서 쉽게 안내를 받고 무사히 도착을 해서 값싸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또 먹었다. 먹고난 뒤 혁명광장까지 멀다고 해서 택시를 타려고 했더니 이 기사들이 무려 15쿡을 달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버스를 타고 어찌어찌 해서 걸어서 도착했다. 쿠바사람 들이 점점 정이 떨어지게 한다. 물론 다 그런 것도 아니고 한국의 경우에도 그런 사람이 없으란 법은 없으니 다 그러려니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이 나라에서도 비교적 잘사는 부류에 속한다는데 사람이란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까. 겨우 15분 정도 가는 거리를 15쿡을 달란다. 공항까지 가는 데도 그 돈이면 가는데 말이다. 일단 불러놓고 당하면 이익이라는 심뽀다. 어제 오비스뽀 거리에서 성냥을 파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성냥을 하나 사면서 1모네다를 줬더니 뭘 더 달라고 손가락 두 개를 내미시기에 가진 동전을 다 보여줬더니 자기가 가질 것 두 개만 갖고 나머지를 아주 작은 돈인데도 다시 돌려주셨다. 순간 짠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지극히 비교되는 경험이다. 삶은 이렇게도 생각하게 만든다. 여행을 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싶은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이것 또한 별스런 교만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무사히 혁명광장에 도착해서 호세 마르티 기념관을 무려 4쿡이나 되는 입장료를 내고 관람을 했다. 역시 설명은 전부 스페인어다. 지극히 불친절한 관행. 앞으로는 좀 달라질까.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드넓은 광장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바라를 배경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은 버스를 알고 있었기에 12번을 타고 무사히 숙소로 왔다. 점심을 설친 탓에 배가 고파 랑고스따를 먹었다. 마지막 음식인 만큼 무척 맛이 있었다. 돈도 거의 바닥이 났고. 이렇게 쿠바 여행의 막바지를 장식하고 있다.
2월 10일
오늘도 거의 하루를 아바나에서 보내야 한다. 어제 온 한국 아가씨와 헤밍웨이가 머물렀던 한적한 어촌 마을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먼젓번에 갔다가 유명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나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버스가 자주 오지 않아서 오래 기다렸다. 그런데 도착을 하니 이번에는 지난번과 아주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해외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연방 도착해선 사람들을 풀어내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안쪽 전망이 진짜 기가 막혔다. 레스토랑도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분위기가 좋았다. ‘라 테라사 데 꼬히마르’다. 모히또를 3쿡에 마시고 이곳저곳에서 사진도 찍고 나름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그러다가 레스토랑에서 식사 권유를 하기에 비싸도 그냥 먹기로 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식사하는 기분도 괜찮았다. 결국 또 헤밍웨이에게 돈을 쓴 셈인가? 아바나 시내로 돌아와서는 저녁을 간단히 먹고 까사에서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 이야기하다가 7시 30분에 도착한 택시를 타고 고항으로 향했다. 페루로 가는 비행기가 밤 11시 50분이다. 다행히 8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는데 이미 수속을 하고 있다. 공항에서 무려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책도 보고 나름 편안한 시간이었다. 좀 졸립긴 했지만. 5시간 20분 정도 비행한 다음 페루 리마에 11일 아침 5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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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길다. 나중에 천천히 읽어봐야겠다. 일단 재미는 있는 것 같다. 고생하십니다.
쿠바 여행에 동행한 느낌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쿠바가 아닌가벼.ㅋ
하여간에 무사히 쿠바여행을 마치고 페루로 간다니 다행입니다.
화이팅 하세요~~
여행기 잘 봤습니다, 쿠바의 삶이 조금 느껴지네요!
재밌게 잘 읽었어
용감하게 잘도 다닌다. 계속 순항하길ᆢ
16시간, 12시간 버스여행, 이리 이동하는 데만도 대단한 체력이 요하겠어요.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별하고, 또 새로운 여행자를 만나고. 행복한 여행 쭉 이어가시길요.^^
무려 세 번에 나누어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왜 세 남자인지 이해가 안돼네요 ㅎ. 건강하게 즐거운 여행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