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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에디타의 대한민국 ・ 2021. 11. 30. 12:31
鳳伊 金先達(봉이 김선달). 조선 말기 평양부에 살았다는 희대의 사기꾼. 김삿갓처럼 비슷한 케이스의 다수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봉이 김선달이라는 사람으로 정립된 듯 하다. 본명은 실제로 전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김인홍으로 나온다. ★출처. 나무위키 *봉이 김선달 최근 수정 시각: 2021-11-14 14:27:49 분류 조선/인물 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영화에 대한 내용은 봉이 김선달(영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블루스트링과 평화선도부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김선달(블루스트링)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2. 설명3. 일화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鳳伊 金先達(봉이 김선달). 조선 말기 평양부에 살았다는 희대의 사기꾼. 김삿갓처럼 비슷한 케이스의 다수가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봉이 김선달이라는 사람으로 정립된 듯 하다. 본명은 실제로 전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김인홍으로 나온다. 2. 설명[편집] 사기꾼 기질이 강한 중년에 비해 젊었을 적에는 무술에 능한 청년이었기에 무과에 급제해 선달 호칭[1]을 받았다 해서 김선달이라 한다. 그런데 판본에 따라서는 이것도 학질 걸린 척하고 시험을 봐서 넘어가는 사기를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내용인즉 한여름에 김선달이 솜옷을 둘둘 껴입고 시험장에 나타나자 시험관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에 학질에 걸렸다고 일러두자, 시험관이 병이 옮을까 무서워서 멀찍이 떨어져서 경전을 외우라고 했고,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도 않는데(이 때 김선달은 대충 아무렇게나 중얼거리고 있었다) 얼른 쫓아버려야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합격(...). 이렇게 해서 초시(初試)에 합격했고, 이후 중앙의 유력자를 찾아가 적당히 선물을 건네면서 말빨로 구워삶아 선달 합격증을 샀다고 한다. 봉이란 별명은 시장의 닭장수에게 닭을 봉으로 아는 듯 바보 짓을 하며 속여넘긴 뒤 사또에게 넘겨 사기친 데서 온 말이다. 판본에 따라 바가지를 씌우는 나쁜 닭장수를 엿먹이기 위해 그랬다고 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낚시꾼이나 사기꾼의 대명사로 쓰이며 실제로도 전문 사기꾼이다. 평양부 대동강까지 이용해서[2] 한양 장사꾼들을 낚은 낚시계의 거성. 김선달의 경우는 상대를 농락하지만 그 이득이 거의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돌아오지 다른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에게 한방 먹였으면 상대가 개과천선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그런 것도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잘못 없이 피해를 보는 사람도 흔히 나온다. 전형적으로 어그로 끌어서 먹고 사는 재담가의 모습에 가깝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당당히 돈 꿔달라는 대인배에 매점매석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허생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허생이 기본적으로 청빈한 기존 유학자의 덕목과 사회경제에 능통하고 사회 시스템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처사라면, 김선달은 철저히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자신의 이득을 위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문제점을 풍자하기도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지 못한다는 차이가 있다[3]. 봉이 김선달 이야기에서는 평양부를 중심으로 한 서북 지역(평안도)가 수도 한양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기호 지방에 가지고 있었던 라이벌 의식을 읽어볼 수도 있다. 거의 다 한양 사람을 골탕먹이는 이야기고, 봉이 김선달은 서북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지역드립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다. 주로 아동 학습만화나 전기에 나올때는 안티 히어로 내지 정의의 사도급으로 묘사되며 못된 짓하는 사람들을 골려주고 속여서 정신차리게 해주는 형태로 등장한다. 그 예로 MBC 뽀뽀뽀에서 인형극으로 봉이 김선달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3. 일화[편집] 한양에 놀러갔다가 과부 팔자인 대감의 딸의 액땜을 위해 납치되었다가 기지를 발휘해 탈출했다. 자루에 담긴 채 절벽에서 던져지려는 찰나, 팔만 나올 수 있게 자루의 입구를 열어달라고 하곤, 신부가 마련해준 금붙이를 한 줌씩 꺼내 보여주고 하인들을 구슬려 도망갈 길을 얻는다. 허리띠에 금붙이를 엮어놨던 하인들이 그걸 풀어서 줄을 만들어 절벽 밑으로 내려가게 도와줬는데, 다 내려온 그가 갑자기 줄을 확 잡아당겨 그대로 금붙이를 먹튀한다. 극적으로 탈출한 뒤 하룻밤 정분을 맺은 그 부잣집 처녀가 수소문 끝에 평양에 와서 김선달과 알콩달콩 살림을 차렸다고 하고, 이 경우 젊었을 적 한양에 과거보러 갔다가라는 전제가 붙고, 후에 나오는 아내가 사실 그 부잣집 처녀였다는 얘기가 있다. 혹은 자기 집안의 죄과를 씻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다고도 한다. 평양 감사의 청으로 뇌물을 겸한 선물인 귀한 벼루(고려청자 버전도 있다.)를 정승에게 대신 가져다준다. 그런데 아들의 장난으로 혹은 주막에서 만난 한 기녀와 검열삭제를 하는 와중에, 또는 가는 길에 술을 진탕 먹었다가 넘어져서 벼루가 떨어져서 깨졌다. 이후 한양으로 간 김선달은 정승집 문지기에게 일부러 시비를 건 다음에 그에게 밀쳐 넘어질 때 이미 깨진 벼루를 땅에 패대기쳐 박살을 내버린 다음 정승에게 벼루를 바치며 문지기 때문에 박살났다고 거짓말했다. 참으로 가장 쉬웠던 사기며 이것은 사기의 범주를 벗어나서 자해공갈죄에 해당된다. 이 때 문지기는 어떻게 됐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무사할리는 없었을 듯. 옛날이야기 시리즈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에서는 정승이 문지기를 나무란 뒤 감사에게 물건을 잘 받았다는 답변을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 돈 한푼 없이 한양으로 갔다가 물에 빠진 척해서 나그네 하나를 낚고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 일화는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속담의 유래가 됐다. 최고 절정은 더 말할 것도 없는 대동강 물 사기 사건. 대동강 물이 자기 거라고 주장하면서 바람잡이인 물장수들[4]에게 돈을 주고, 물을 퍼갈때마다 돈을 돌려받으면서 상인들에게 보여준 뒤 상인들에게 대금 수천냥[5]을 받고 팔아넘겼다. 이후 상인들은 대동강 물세를 거두려다가 물을 퍼가던 사람들한테 몰매를 맞았다고 전해진다. 현대에도 이 일은 각종 사기극의 대명사 격으로 꼽히며, 악독한 사기죄에 속한다. 아동 소설에서는 먼저 저 상인들이 평양 사람들의 돈을 등쳐먹거나,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는 식으로 정당화할 구멍은 만들어놓았다. 조선시대의 평양은 풍수지리적인 이유로 우물이 없었고 대동강물을 길어서 생활해 왔다고 한다. 만약 저 상인들이 평양의 이러한 사정을 알았다면 김선달의 쇼를 보고 다시 없을 일확천금의 기회라고 생각해 낚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평양 사람들의 생명줄을 거머쥐는 거니까. 정신이 간당간당한 곡물상을 상대로 한 사기 사건. 여러가지 곡물을 파는 노인의 앞에서 옷을 잡아당기더니 "이게 뭐요?"라고 물어보니 노인이 "옷이오(오시오)."라고 대답해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잣을 가리키고 "이게 뭐요?" 하니 노인은 "잣이오"[6]라고 했다고 주장하며 잣을 몇웅큼이나 집어먹었다. 지금도 결코 싼 편이 아니지만, 당시 잣은 꽤나 고가의 식품이었다. 노인은 당연히 값을 치룰 줄 알았지만 김선달은 다 먹은 다음 머리의 갓을 가리키면서 "이게 뭐요?"라고 물었다. 노인은 "갓이오(가시오)."라고 대답했고, 김선달은 그 말을 듣고 진짜 그냥 가려고 했다. 당연히 노인은 김선달을 붙잡으며 값을 치르라고 했고 실랑이가 벌어지자 노인의 아들이 나왔다. 김선달은 아들에게 "오라고 해서 왔고 자시라고 해서 자셨고 가라고 해서 갔더니 이게 무슨 짓이냐"며 역정을 냈고, 정신이 오락가락할 나이인 아버지를 모신 아들은 아버지가 정신이 나간 줄 알고 김선달을 보내줬다. 어린이 판본에서는 김선달이 노인에게 왜 가게를 지키나 궁금해 얘기를 하니 노인의 말에 따르면 아들들이 모두 밥을 먹겠다고 자기 혼자 지키라고 하는 터라 혼자 지키고 있다 하자 괘씸해진 김선달이 머리를 굴려 노인에게 상술한 사기를 쳤다. 당연히 김선달은 노인에게 멱살을 잡히고 소란이 벌어지자 밥 먹던 아들들이 급하게 나왔는데, 김선달은 늙은 아버지에게 혼자 가게를 지키라고 한 당신들 잘못이 크다고 훈계하자 무안해진 아들놈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노인은 기분이 좋아져서 김선달에게 사례로 잣 한봉지를 들려주고 보낸다.[7] 잣을 실컷 먹은 김선달은 드디어 배탈이 났다. 급해진 나머지 한 대가댁에서 뒷간을 쓰자고 하니 문지기가 텃세를 부리며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결국 돈 5냥을 주고 뒤를 본 김선달은 본전 생각이 나서 하루 종일 뒷간에 앉아 있는다.그 댁 주인마님이 돌아올 시간이 되자 애가 탄 문지기는, 결국 강탈한 5냥의 몇 배를 돌려주고서야 김선달을 쫓아낼 수 있었다. 또는 문지기가 아니라 집에 있던 마님이 돈을 받고 들여다줬는데, 의심 많은 서방이 돌아올 때가 되어 애가 탔다는 버전도 있다. 절에 놀러갔더니만 그날 사또가 기생들 데리고 한밤중에 놀러와서(스님들이 곤란하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스님들과 짜고 산신령인 척 해서 사또에게 참기름 바른 음식을 먹였고, 자기 혼자만 배불리 먹고 다른 스님들은 굶기는(자기 대접이 후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던것 같지만) 주지를 놀려먹는 등, 그의 사기질은 높으신 분들이라도 가리지 않아서 단순 비겁한 인물로만 보이진 않은 듯. 좀 긍정적인 케이스로는 친척 잘 만나 지방의 대 부호들의 재산을 강탈하던 인물에게 자신과 친하던 안장자(안부자 - 소설에 따라서는 박광서) 행세를 하면서 "사실은 영의정과 친분이 있다"라고 해서 돈도 돌려받고 노자도 넉넉히 따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그도 한방 먹은 에피소드도 있다. 동문수학했던 옛 친구가 고을 사또가 되어 부임해 왔는데, 자기에게 인사를 늦게 왔던 것을 기분나빠하여 그 친구가 물갈이로 복통이 났다는 얘기를 듣자 쥐똥에 참기름 묻힌 것을 약이라고 속여서 그 친구에게 먹였다. 그 친구는 속았다는 걸 알고는 국화주를 준비해 놨으니 같이 마시자고 김선달을 초대해서는 자기 오줌을 국화주라고 속여 김선달에게 먹여서 복수하고는 허허 웃었다는 이야기. 판본에 따라서는 더 더러운 버전도 있는데, 친구인 사또가 당했다는 걸 깨닫고, 복수를 위해 조금만 힘을 주면 바로 똥이 나올 지경까지 이를 때 국화주를 마시자고 김선달을 초대해서 '나한테 치질이 있는데 괜찮은지 어떤지 좀 봐 달라'고 하여 김선달에게 자기 항문을 들이대고 냅다 얼굴에 똥을 싸지르고는 '자네가 보내준 쥐똥이 든 국화주 맛이 어떤가?'라며 복수했다는 줄거리다. 또 다른 판본에서는 김선달이 자신을 푸대접한 절의 스님들에게 콩을 한말 갈아 먹고 이 짓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8] 한양 선비들과 동행했는데 선비들이 쓸데없이 트집을 잡아 내기를 걸어서 물을 긷던 동네 처녀의 음부[9]를 보는 내기를 한다. 김선달은 포도대장 행세를 하며 '너와 같이 생긴 처녀는 분명 음부가 2개니 몽땅 잡아들인다'며 무섭게 으르대어 결국 처녀의 속옷을 벗겼다. 내기에 이긴 김선달은 선비들의 돈주머니를 몽땅 털어서 평양까지 호의호식하며 갔으며, 어떤 책에서는 받은 돈주머니를 죄다 그 처녀에게 주고 "미안하오. 우리 장난이 심했소. 이걸로 나중에 혼수품이라도 마련하시구려."한 다음 쓸쓸히 길을 가는 버전도 있다. 이 경우 겉만 번지르르한 선비들의 더러운 작태에 대해서 저질이라며 분노하는 그의 속마음이 백미. 어느 복날 동네 가난뱅이들이 둘러앉아 진짜 개고기는 못먹으니 상상으로 개고기를 권커니잣거니 하는 것을 보고 공짜 개고기를 먹여준다고 한다. 모란봉에서는 동네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모여 술상을 차려 놓고 개고기를 삶고 있었는데 김선달은 그들에게 다가가 '미친개를 먹으면 미친놈이 돼서 서로 물어뜯는다'고 슬그머니 겁을 주니까 꺼림칙해진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자 김선달이 먼저 시식을 해보고는 미친개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물어뜯으려고 대드니까 사람들은 몽땅 달아나버렸고 김선달은 가난뱅이들과 같이 술과 고기를 포식했다. 집안에 시량(쌀과 장작)이 떨어지자 마을의 부인들을 모두 불러모아 황해도 구월산으로 단풍놀이를 간다. 단풍놀이 중 한 바위에서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며 자신의 과거 죄를 모두 고백하고는 '여기에서 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구월산에서 해를 입는다'고 위협해 각자 자신의 부정행위며 불륜을 털어놓게 한다. 마을로 돌아온 뒤 귀에 담아두었던 불륜 행위를 빌미로 공갈을 해서 시량을 얻어다 연명했다. 자신의 조카가 장님 고리대금업자 패거리의 돈을 도박(혹은 오입질)에서 날리고 난처한 지경에 처해 김선달에게 도움을 청했다. 김선달은 마을 사람들과 작당하여 평소 악명높던 장님 패거리를 혼내주기 위해 집 한켠에 엉성한 가건물을 세운 뒤 장님들을 초청해 가건물 밑에서 돼지비계를 구워대 냄새만 풍겨서 잔치를 여는 척만 한 다음 장님들이 기다리다 잠들자 가건물 밑에 사금파리(깨진 사기그릇 조각)를 쌓아두고 장님들의 코끝에 똥을 발라놓으니 잠에서 깬 장님들은 악취를 가지고 서로 싸우다가 가건물을 무너뜨렸으며 김선달은 장님들에게 이 그릇은 잔치를 위해 부잣집에서 빌려온 고급 백자인데 어떡할 거냐고 그릇값으로 돈을 잔뜩 뜯어내 조카의 빚을 갚아주었다. 어느 한겨울밤에 산골짜기를 헤매다가 조난당할 위기에 처한 김선달이 간신히 불이 켜진 누추한 집에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들에게 후한 대접을 받는다. 고향이 어딘지 밝히던 중 평양에 산다는 말에 이 아버지가 "그럼 혹시 김선달을 아시오?"하고 묻는데 알고 보니 이 아버지는 김선달의 팬이었다. 겨울이 지나가면 노부를 모시고 김선달을 뵈러 갈 예정이라는 효자 아들의 말을 듣고 낯이 붉어진 김선달이 신분을 밝히자 아버지는 거의 영웅 대접하듯 자기가 캐낸 산삼주까지 꺼내 김선달을 대접하면서 그의 재미난 이야기를 청해 들으며 긴긴 밤을 재미나게 보냈다.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 '봉이'가 생긴 이유. 시장에 갔다가 닭장수에게 어수룩한 척을 하며 접근한다. 그리고 유독 큰 닭 한 마리를 가리키며 "혹시 이것은 전설속의 봉(鳳)[10]이 아닌가?" 하면서 놀라는 척을 한다. 닭장수는 이 어수룩한 시골양반을 등쳐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1냥짜리 닭을 봉이라며 10냥에 팔아먹었다. 김선달은 닭을 사서는 바로 고을 원님에게 가서 "봉을 바치러 왔습니다!"라고 고한다. 봉이라는 말에 기대하던 원님은 알고 보니 걍 일반 수탉이라는 것을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고 자기를 능멸한다며 곤장을 치는데, 김선달이 곤장을 맞으면서 "이놈의 닭장수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라고 하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원님은 곤장을 멈추게 하고 사정을 캐묻는다. 김선달은 "다른 닭보다 훨씬 크고 빼어난 닭이 있어 '그게 무슨 새냐'고 물으니 닭장수가 봉이라고 했습니다. 몇번을 물어도 닭장수가 봉이라고 하길래 귀한 새를 원님께 바치려고 샀습니다다."라고 고했다. 원님은 갸륵한 백성의 마음을 못 알아준 자신을 탓하며 사기꾼을 잡아오라고 명을 내린다. 그 뒤에는 닭장수가 곤장을 흠씬 얻어맞고 김선달에게 닭값을 잔뜩 물어줬다는 결말. 빼앗은 금액은 판본에 따라 다른데, 닭값 환불+깽값을 물어줬다는 판본이 있고, "내가 아무리 멍청해도 그 귀중한 봉이 고작 10냥이라는 말에 속았겠냐?"라면서 수백냥을 빼앗았다는 얘기도 있다. 어린이용 도서에는 그 닭장수가 원래부터 악덕 상인으로 악명이 자자해서 혼내주려 했다는 정당화 명분 이야기가 추가된다. 한겨울에 얼어붙은 호수에다가 젖은 짚단을 잔뜩 깔아놓고 추수한 이후의 논인 것처럼 속여서 팔아먹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봄이 되어서 매수자가 다시 찾아와보니 논은 없고 웬 호수만 덩그러니 있었더라는 이야기. 일부 판본에서는 위의 대동강 물 사기극과 연결해서 대동강 유역의 기름진 땅을 한양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곤, 봄에 와서 보니 대동강물이었더라는 이야기도 있다. 한 번은 겨울이 다가오는데 장작이 부족하자, 김선달은 시장통에 나가 장작 상인이란 장작 상인들은 죄다 만나고 다니면서 돈은 나중에 주기로 하고 장작을 자기 집에 가져오라고 시켰다. 상인들이 장작을 잔뜩 짊어지고 김선달의 집에 도착하자, 김선달은 "지금 돈이 준비되지 않았으니 장작은 마당에 던져 놓고 내일 다시 오라"고 시켰고 상인들은 그렇게 했다. 다음 날 상인들이 돈을 받으러 오자, 김선달은 "돈을 구하지 못했으니 미안하지만 그냥 장작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자, 상인들은 또 어쩔 수 없이 자기 장작을 찾아 집어들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상인들이 떠난 후에 장작이 상하고 부서져서 생긴 잔부스러기가 마당에 한가득 남아 있었고, 그걸 죄다 모아 겨울을 났다고 한다. 모 1990년대 만화판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야기인데, 한 부자(정확히는 '좌수'로 표기)가 지인들을 초대하여 술판을 벌이면서 "10만 냥이나 되는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하자 김선달이 발끈해서 "나는 아무리 돈을 받아도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한다. 자존심이 상한 부자는 "과연 숙이나 안 숙이나 보자"면서 손님들은 다 무시하라고 했지만 자존심이 어딜 가나 3천냥을 바로 줬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자, 이제 고개를 숙이시게나'라고 하지만 김선달은 "3천냥이나 있는 내가 고개를 숙일 이유가 없다"고 하며 거절했다. 그러자 부자는 1만냥을 주지만 김선달은 당연하다는 듯이 무시했다. 그러자 부자는 전 재산의 절반인 5만냥을 내놓으며 고개를 숙이라 했지만 김선달의 대답은... '좌수님과 저의 재산이 같은데 제가 무엇하러 고개를 숙입니까?' 마지막에 욱한 부자가 5만냥을 마저 내놓았더니 그걸 태연자약하게 먹어버린 김선달은 '전 10만냥 부자이고 좌수님은 알거지신데 제가 왜 고개를 숙입니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한 다음 유유자적하게 빠져나갔고, 대문을 나서고야 자신이 알거지라는 현실을 자각한 부자는 버선발로 뛰쳐나가다 문턱에 걸려 볼썽사납게 뒹구었다. 그리고 김선달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이다. '좌수님이 제게 10번 절을 하신다면 이 10만 냥 짜리 전표를 돌려드리겠습니다.' 가게 주인이 팔다 남은 쉰 죽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중에 김선달이 판매를 도와주겠다고 자청했다. 이 때 시골 양반이 죽을 주문하자 김선달은 죽을 줄 때 "이 사람이 식초 맛은 모를 테니 초는 치지 말라"고 했더니 그 양반은 거드름 피우는 성격이 있어서 '나도 초맛은 아니 초 좀 쳐오게'하니까 김선달이 '죽에 초를 쳐서 먹는 건 서울 사람들 식성'이라고 얘기하자 그 손님은 "잔말 말고 초나 더 쳐오라"고 했다. 그 다음에 나온 죽은 쉬었던 데다가 초까지 쳤으니 맛이나 오죽하랴. 그래도 시골 사람은 '역시 죽은 초를 쳐야 제 맛이군'이라고 말하면서 억지로 한 그릇을 다 비웠지만, 그 뒤 그 사람의 속은 아마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판본에 따라 그 시골양반이 평소 자기네 집 농군들을 마구 괴롭혀서 농군들 사이에 인심을 많이 잃어 그를 한 번 제대로 골탕먹일 작정으로 쉰 죽을 파는 걸로 나온다.[11] 이것들은 모두 성인 판본 기준들일 뿐, 아동 판본에선 대동강 에피소드에서 한양 상인들이 평양을 물로 봐서 그랬다는 둥 오시오, 자시오, 가시오 에피소드에서는 손님을 막 대하는 or 차별 대우하는 장사꾼이 아니꼬와서 그랬다는 둥 뭔가 변명을 해주려 한다는 식들로 순화(?)하지만, 어쨌든 하는 짓이 악질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4. 대중매체[편집] 1980년대부터 MBC 마당놀이에서 여러차례 봉이 김선달 마당극을 공연했으며 김선달 역은 윤문식이 맡았다. 2016년 7월 봉이 김선달을 다룬 영화가 개봉했으며 봉이 김선달(영화) 문서 참고. 김선달 역할은 유승호. 다음 웹툰에서 봉이 김선달을 다룬 만화를 연재했다.[12] 여기서 나오는 김선달은 태생 사기꾼이 아닌 무과, 문과 둘 다 급제를 했으나, 부패한 조정 때문에 관직을 얻지 않고 서당을 운영 중인 걸로 나와있다. 2019년 10월 태진아의 노래 '김선달'이 발매됐다. [1] 선달이란 호칭은 무과에 합격한 뒤 아직 벼슬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 주어진 호칭을 말한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는 이런 과거 급제자가 아닌 일반인에게 붙이는 별명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좌수, 진사 등의 호칭이 본래는 고을 수령의 자문을 맡는 벼슬이나 과거 시험인 진사시에 합격한 자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단순히 지식이 있고 주위 사람들에게 명망이 있는 일반인에게도 붙이는 호칭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와 유사하다.[2] 지금 대동강 물은 팔아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수질이 오염되어, 김정은 등 권력층들은 낭림산맥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기타 주민들은 그냥 오염된 물을 마신다. 따라서 통일 후 대동강 물을 팔아먹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 맞다.[3] 애초에 김선달의 일화들은 구전되어오는 민담들의 모음인데 비해 허생전은 박지원이라는 한 저자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쓴 작품이다. 즉 당대의 진보적 지식인이 자신의 개혁적 비전을 상징하는 인물로 조형한 허생에 비해 김선달에게는 명확한 주제의식이 없고, 단지 당시의 서북 사람들이 유쾌하게 받아들일만한 일종의 다크 히어로나 피카레스크적 주인공상에 더 가깝다.[4] 판본에 따라 실제 물장수들을 섭외했다는 이야기와, 원래는 대가집에서 쓰는 물을 퍼가는 일꾼들을 김선달이 평소에 '물장수'라고 불러주다가 진짜로 물장수 노릇을 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5] 5명의 상인이 각자 1천냥씩 가지고 평양에 와서 재미지게 놀다가 4천냥이 조금 넘는 정도만 남았다는 버전도 있다.[6] '자시다'는 '먹다'의 높임말로, '들다'보다 존대의 정도가 높다.[7] 어떤 책에서는 관리를 사칭해 노인(아버지)에게 가게를 혼자 맡기는 아들을 꾸짖는 버전도 있다. 다른 판본에서는 김선달이 노인의 아들에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 아버지에게 일을 떠맡기냐고 일갈하자 양심에 찔린 아들들이 노인에게 저희들이 잘못했다며 이제 자기들이 가게를 볼 테니 아버지는 들어가 쉬시라고 안으로 모시는데, 노인은 아니 저놈한테 잣 값부터 받으라고 소리치지만 그대로 씹히고 안방으로 끌려가는(?) 개그 엔딩도 있다.[8] 이 이야기는 '꿀방귀 똥방귀', 혹은 '단방귀 장수'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줄거리는 형에게 유산을 몽땅 빼앗겨 가난한 동생이 나무를 하다가 벌집을 발견해서 꿀로 포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뒤 밥을 먹다가 방귀를 뀌자 먹던 음식들이 꿀처럼 달아진 능력을 통해 동생은 꿀방귀를 팔아서 형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그 뒤 배가 아파진 형은 꿀 대신 콩을 한말 갈아 먹은 다음 동생 흉내를 내 방귀를 팔러 갈 때 잔칫집에서 부탁을 받고 떡반죽 위에 힘을 준 후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9] 어린이판에서는 배꼽으로 순화된다. 어찌됐든 여성 한복에는 반팔도 없던 시절이니 상황 자체가 여성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수치스러웠을 것이다.[10] 봉황의 수컷. 수컷의 이름이 '봉(鳳)'이고 암컷이 '황(凰)'이다.[11] 판본에 따라서 김선달이 죽집을 운영하거나 하는데 손님인 이 시골 양반은 근방 멧갓을 보유한 인물로 평소 성격이 상당히 오만하고 도도해 죽집에 올때마다 여러 생트집을 잡고 나서야 먹고 자기는 옹근 한그릇짜리를 먹으면서 같이온 농군들에게는 반그릇 짜리를 사주거나 그나마도 안 사주는 일이 많아 김선달이 언제 한 번 혼을 낼까 벼르고 있는 걸로 나온다.[12] 현재는 서비스 종료되어 볼수없다. 작가가한성 1905, 브이, 스틸레인등을 그린 제피가루이다.이후 2020년에 네이버 웹툰과 시리즈에서 올라왔다.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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