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靈魂)있는 것이 인간을 인간이라고 규정하게끔 하는 조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차원적인 혼(동물도 혼은 있다. 단지 동물이 본능대로 생활하지만 살아있는 것 자체를 혼이라 할 수 있다.)과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는 지각 등을 가리키는 영이라 할 수 있다. 이후에 사용되는 혼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수준 높은 것을 말한다.
동물의 희생이나 이타행동, 협력, 모성행동 등은 각 개체의 의지로 선택되기보다 유전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으며 심지어 개체는 유전자 증식을 위한 기계나 운반자에 불과하다고 한다(지문내용참고).
신채호가 말하는 대아는 혼(魂)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채호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면모를 알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타난다. 동물처럼 욕구에, 본능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은 진짜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어느 공원에서 밤이 맞도록 그런 고민 가운데 있었는데, 공원지기가 “당신 누구요?” 하고 묻자 그는 “내가 그걸 알면 이렇게 고민하고 있겠소?”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자신을 찾아가는 것, 그것은 어떠한 일보다도 선행되어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어디를 가볼 형편(시간적으로)이 못되어서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월영대를 찾았으나 잠겨져 있어 들어가 보지도 못한 터라 좀 막막했다.
생각 끝에 가상으로 방문해보기로 결정한 것이 3.15탑이다. 마산시청 홈페이지에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때의 상황들을 가상적으로 체험도 해보았다. 교수님의 의도에는 좀 부합되지 않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 하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 이렇게 밝힌다.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이 장기집권 유지를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하자 마산시민과 학생들이 이에 항거하여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3월 15일 1차 의거에 이어, 4월 11일 그 동안 행방불명되었던 김주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시체로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오르자 격분한 시민들이 다시 2차 의거를 일으켜 싸웠다. 이 항쟁에서 12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경찰이 쏜 총에 맞거나 체포 구금되어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마산시민과 학생들의 의로운 투쟁은 전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4 · 19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드디어 4월 26일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 그 상황 속에는 참혹함과 무자비함, 그러나 그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정의가 들어 있었다. 나도 그 상황 가운데 있었다면 저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각자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신채호의 말대로 ‘나’라는 사람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데, 그것을 잘 모르고 있으며 많은 사람은 그것을 잊고 살고 가끔 생각해보다가도 다시 묻어두곤 한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인간에게는 혼과 함께 영이 있다. 혼은 앞에서 언급했던 3.15의거와 같이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 같은 것이다. 언어를 이해한다든지 고등의 정신지능을 가진다든지 하는 인간만의 특징은 혼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은 무엇인가?
이것이 진정 인간에게만 있는 특징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영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에게 사람의 영이 있다는 것조차도 몰랐으며 우리의 영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인간의 본래적 가치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 그의 영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영은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하며, 현재 나의 상태를 알게 한다. 인간만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급할 때 하나님을 찾는다.
성경이 처음으로 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세기1장27절)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우리가 개구리와 교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같은 형상끼리 교제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사람은 타락하였고 죄를 범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장23절)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타락한 사람들인 우리는 회개해야 하며 구원받아야하며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상태이다.
너무 종교적이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이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이다. 태어났다면 꼭 한 번쯤 짚어봐야 하며, 그것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찾아야하는 것이다. 성냥개비 하나도 만들어진 목적이 있듯, 우리 각자도 창조된 목적이 있다. 그것을 찾는 사람은 진정한 절대 뺏기지 않는 행복을 소유하게 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대부분 자신이 동물과 같지 않다고 생각은 하지만 뚜렷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죽는다.
어수선한 것같아 죄송합니다.
제 글을 읽는 동안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첫댓글 [3] 잘 쓰셨습니다. 그런데 약간은 논리적이지 못한것 같아요.
[3] 수고하셨습니다^^
[3] 수고 하셨습니다.
(3) 종교와는 거리가 먼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군요.. 하지만 "제 글을 읽는 동안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란 부분을 읽고 확신에 찬 님의 신념을 보았습니다.
[2] 내가 창조된 목적이 있다는 것은 내가 도구라는 말의 다름 아니다. 왜 선하신 하느님이 창조한 인간에게 죄악의 가능성이 있었을까? 제조물책임배상은 본디 제조사에 있기 마련이다, 딴지 거는 것일 수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동물과 다름없이 본성대로 창조된 그대로를 지키며 살아간다면 인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인간은 동물과 달리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 선택이라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로보트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살게 두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