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지난 80년 동안 지구 행성에서 미국이 최강대국으로 군림해온 세계질서가 최근 들어 변한 기색이 역력하다. 변화의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제국과 그 속국들 또는 집단서방이 전면적인 하락세를 드러낸다면, 과거에 그들에게 침략당한 비서방 나라들은 약진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랜 기간 세계질서를 장악해온 제국과 그 속국들의 세력과 영향력이 약화한다는 것은 그들의 경제적 쇠퇴와 국내 정치의 불안정, 국제관계에서 (도덕적) 지도력 및 신망의 추락, 군사력의 약화, 테러리즘에의 의존 등의 면모를 갈수록 크게 드러내는 데서 뚜렷이 확인된다.
반면에 과거 제국주의의 침략 대상이었던 나라들, 전에는 식민지나 신식민지, 제삼세계, 개발도상국 등으로 분류되었고 최근에는 주로 남반구로 일컬어지는 비서방 나라들은 상당수가 경제적 발전과 주권의 회복, 군사적 약진, 상호 호혜주의의 추진 등을 통해 굴기하고 약진하는 모습이다.
각국의 사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단순화할 수 없는 측면들, 문제들이 물론 많겠지만, 그래도 국제사회의 풍향계는 서쪽보다는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을 더 크게 받기 시작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것은 대략 15세기 말 16세기 초 무렵에 서양의 제국주의적 세계제패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생긴 역사적 변동이다.
세계질서의 변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역시 경제 분야라 여겨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 구성된 G20 소속 국가들 가운데 G7 국가들과 브릭스(BRICS) 국가들 사이 경제 규모 차이가 2024년을 거치며 더 크게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