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비슨, O.R. - 세브란스병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설립
제4대 제중원 원장, 세브란스 병원 창시자
올리버 R. 에비슨(Avison, Oliver R. 1860-1956)은 캐나다 출신의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로 어비신(魚丕信)이란 한국 이름으로 세브란스 병원장을 비롯하여 연합의학교 초대교장과 연희전문 교장 등 한국의 의료 개척 선교사(1893-1934)로 많은 공적을 남겼다. 1860년 6월 30일 영국 요크셔에서 출생하여 6살 때 캐나다 왼스턴에 이주하였으며, 1887년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내과 및 약리학을 강의하다가 언더우드의 영향을 받아 한국 선교를 지원하였다. 1893년 부산을 경유하여 11월 1일부터 제중원 의사로 봉직하였으며, 1895년 여름에는 서울에 만연된 콜레라 방역사업 책임자로 진력하여 일찍이 상상 할 수 없는 65% 완쾌자의 큰 성과를 거두었다. 고종의 시의로 임명되었으며, 1899년 제중원에서 수명의 학생을 모아 의학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는 수학 자연과학 농학 등을 강의하기도 하였다. 1900년에는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한국 의료 선교의 확장을 제창하였다. 이때 오하이오 출신의 석유회사 중역 루이스 H. 세브란스(Louis H. Severance)를 만나 그의 후원금을 가지고 제중원을 구리개(銅峴)에서 남대문 밖으로 이전하여 한국 최초의 현대식 종합병원을 세웠다. 이때 제중원에 있던 남대문교회도 함께 이전하였으며 그는 교회를 열성으로 섬겼다. 1904년 제중원을 "세브란스"로 개칭하고 병원장에 취임하였다. 1913년부터 세브란스 의전(醫專) 교장으로 봉직하다가, 1916년부터 1934년까지 연희전문 교장까지 겸직하였다. 1934년 3월 세브란스 의전과 연희전문학교 명예교장으로 추대되었으며 두 학교 즉 "연세" 통합에도 노력하였다. 1935년 은퇴하고 그해 12월 미국으로 돌아가 1956년 8월 29일 플로리다 피터스버그에서 96세로 별세하였다. 제자들은 에비슨의 동상을 건립(1928)하였다.
[올리버 R. 에이비슨(영어: Oliver R. Avison, 한국어: 어비신(魚丕信), 1860년 6월 30일 ~ 1956년 8월 29일)은 캐나다의 선교사이자 의사이다. 1893년 6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한국에서 체류하며 활동하였다. 제중원의 제4대 원장,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 교장을 역임하면서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생애
에비슨은 1860년 6월 30일에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1866년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1879년 오타와의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1884년에는 토론토의 온타리오 약학교를 졸업 후에 모교에서 교수로 활동하였다. 1884년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에 편입하여 1887년 6월에 졸업하였다. 의과대학 재학 중인 1885년 7월 제니 반스와 결혼하였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었으며 토론토 시장의 주치의로도 활약하였다. 1892년 9월 선교 모임에서 만난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영어: 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어: 원두우, 元杜尤, 1859년 ~ 1916년)로부터 해외 선교의 제안을 받자 교수직을 사임하고 1893년 미국 장로회 해외선교부의 의료 선교사가 되었다. 1893년 6월 가족과 함께 캐나다 밴쿠버를 떠나 부산을 거쳐 8월 서울에 도착하였다.
입국과 활동
제중원 원장으로 부임한 에이비슨은 1894년 제중원의 운영을 두고 조선 정부와 6개월간 협상을 벌여 9월에 제중원을 선교부로 이관받았다. 1904년 9월 제중원을 새로 신축하였고 기부금을 낸 미국인 사업가 루이스 헨리 세버런스(Louis H. Severance, 1838년 ~ 1913년)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Severance Memorial Hospital)으로 이름 변경하였다. 제중원 의학교는 세브란스 병원 의학교로 불리게 된다. 1908년 6월 에비슨에 의해 조선 최초의 면허 의사인 첫 졸업생 7명이 배출된다. 세브란스 의학교는 이후 세브란스 연합의학교,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며 발전한다.
1915년 조선기독교학교(Chosun Christian College)가 언더우드에 의해 개교하자 에이비슨은 부교장에 임명되었고 1916년 교장인 언더우드가 사망하자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학교는 1917년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언더우드의 형인 존 언더우드(John T. Underwood)의 기부로 1917년 9월에 현재 연세대학교가 위치하는 대지를 교지로서 구입하였다. 1926년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와 연희전문학교의 합동에 대한 의견이 피력되었고 1926년 6월에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일제의 간섭으로 진전되지 못했다. 1934년에 에비슨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장에서 물러나 1935년 12월 조선을 떠났으며, 1956년8월29일 향년 96세로 미국 플로리다 피터스버그에서 사망했다.
한편, 1945년 5월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예과를 연희대학교에서 모집하기로 하였고, 1957년 1월에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는 통합되어 연세대학교가 되었다.
자녀
고든 에이비슨(Gordon W. Avison, 1891년 ~ 1967년) : 장남, 선교사
더글라스 에이비슨(Douglas B. Avison, 1893년 ~ 1954년) : 사남, 선교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병원장 역임, 서울 양화진외국인묘원에 안장]
제니 바네스 에비슨(Avison, Jennie Barnes,1862-1936)
남편 올리버 에비슨과 아이 셋을 데리고 내한하여 부산 베어드 선교사 집에서 네 번째 아이 더글러스 에비슨을 낳았다. O. R. 에비슨 부부는 모두 10남매를 낳아 일곱을 키웠다. 자녀 중 큰아들 고든(Gordon W.)은 YMCA 선교사(1915-1939)로 북한지역에서 농촌선교를 담당하고, 딸 레라(Lera)도 선교사역(1911-1914)을 담당하였으며, 아들 더글러스 에비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브란스 병원장이 되었다. 제니 바네스는 1862년 2월 23일 온타리오에서 출생하여 남편의 선교사역을 열성으로 조력하였다. 언제나 화사하고 아름다운 옷차림에 매력 있고 상냥한 표정으로 손님을 접대하였다고 한다. 1936년 9월 15일 74세로 별세하였다.
더글러스 B. 에비슨(1893-1954) 선교사 2세 부부
올리버 R. 에이비슨의 아들인 더글러스 B. 에비슨(Avison, Douglas Bray)은 부산에서 1893년 7월 22일 출생하였다. 캐나다에서 토론토 의대를 졸업하고 1920년 북장로회 의료 선교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선천지방에서 활동(1920-1923)하고 서울로 전임하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소아과 교수, 부학장 및 병원장 등으로 1947년까지 헌신하였다. 1952년 8월 4일 캐나다 벤쿠버에서 별세하여 임시 안장하였다가 생존시 한국에 묻히기를 소원하여 1954년 유해를 화장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장례하고 양화진에 안장하였다. 양화진 묘역에는 제자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비문이 건립되어 있다. "더글러스 B. 에비슨 선생은 우리 나라에 나시고 일하시고 여기에 묻히셨다. 20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몸바쳐 일하심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섬기셨다. 알고 행할 수 있도록 후학을 가르치시고 사랑과 정성으로 환자를 대하셨다. 높은 덕 넓은 은혜를 마음에 색이면서 그 유언을 따라 유해를 모신 이 자리에 이 비를 세워 선생을 추모한다. 1953년 8월 4일 세브란스의과대학 동창회 세움"
캐들린 로슨(Kathleen Isabel Rawson, 1898-1985)
더글러스 B. 에비슨의 부인 캐들린 로슨(Kathleen Isabel Rawson, 1898-1985)은 1898년 8월 10일 캐나다(Claremont)에서 출생하여, 남편과 미 북장로회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자녀로 다섯 딸이 있으며 1985년 8월 6일 벤쿠버에서 별세하여 한국 땅에 묻히기를 소원하여 양화진 남편 곁에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