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가 방아쇠를 당겨야 하죠?
말이 없다 서글픈 기타소리만 들릴 뿐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들 참전 후 후유증으로 고통
존 윌리엄스 '카바티나' 참상·슬픔 배로 다가와
근래에 들어선 쥐어짜듯 가슴이 아린 영화를 보아내기가 버겁다. 한때 감정적 혈기가 넘쳐 세상 모든 슬픔을 다 받아들일 듯 했으며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이는 부조리에 거침없이 짱돌을 날리곤 했다.
하지만 이젠 7번 방에 선물로 온 딸아이를 위해 목숨마저도 웃으며 버리는 아버지를, 국가란 국민이라 부르짖으며 억울한 청년을 살려내려는 변호인의 눈물을 지켜보기엔 내 감정의 근육이 힘에 부치는 듯하다. 신체의 건강을 위하여 운동이 필요하듯 정서적 건강을 위하여도 단련이 필요하다.
◇평범했던 세 젊은이의 비극
영화 <디어 헌터>는 이러한 정서적 건강함을 지키기 위한 단련에 훌륭한 재료이긴 하나 사실 그 정도가 심할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찾아오는 허무함과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를 경험할 확률이 상당히 높아 감정 과잉으로 패닉에 빠질 수 있음을 미리 말해 두는 바이다.
이 영화는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1978년 개봉했으니 벌써 40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며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드니로가 젊은 시절 주연을 맡아 제51회 아카데미작품상과 제44회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한 반전영화의 걸작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조용한 마을, 철강소에서 일하는 마이클과 닉, 그리고 스티븐. 이들은 주말이면 함께 사슴사냥을 즐기며 서로의 우정을 다지는 그저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한편 마이클은 아름다운 린다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이미 친구 닉의 애인이다. 어느 날 또 한 명의 친구인 스티븐의 결혼피로연과 동시에 이루어진 환송식 후 베트남으로 떠남으로써 이 세 젊은이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금껏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지옥과도 같은 곳, 입대 전 평화로운 삶을 살아왔던 세 친구는 전쟁포로가 되어 죽음의 게임인 러시안룰렛에 목숨이 저당 잡히는 잔인한 일을 겪게 되고 이로 인해 그들의 영혼은 날로 피폐해져 간다. 사람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대규모 전투장면 없이 이 러시안 룰렛 장면만으로도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는, 아니 더욱 가혹하게 보여준다 하겠다.
이후 마이클은 극적으로 탈출하여 귀국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반신불수가 된 스티븐과 베트남에서 실종된 닉의 소식이다. 이후 친구들 없이 홀로 사슴사냥을 하는 마이클, 그런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클은 스티븐 앞으로 매달 거액의 돈이 송금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닉이 베트남에 살아있음을 감지하고 그를 찾아 다시 베트남으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친구 닉을 발견한 곳은 러시안룰렛으로 거액의 돈이 오고 가는 도박장. 힘들게 발견한 친구와 마주 앉은 마이클은 제발 그만두라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울부짖지만 이미 정신이 나가 버린 듯한 오랜 친구는 끝내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만다.
닉은 너무나도 그리웠던 친구를 다시 만나 이젠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그렇게 울부짖는 마이클의 품 안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닉의 장례식 후, 남겨진 자들은 말이 없다. 그리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는 'God Bless America'를 함께 부르지만 희망찬 찬가가 아니라 서글픈 비가다.
https://youtu.be/xAAiYMgFcbw
https://youtu.be/X7SvBtJuh3Y
◇카바티나
이렇게 영화가 끝나고 옛 시절,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무심한 듯 슬프게 흘러나오는 기타소리가 있으니 바로 영국 작곡가 '스탠리 마이어스(Stanley Myers)'의 대표 곡 '카바티나(Cavatina)'다. 카바티나는 음악 용어로 원래 2절 또는 곡의 반복이 없는 단순한 성격의 짧은 노래를 뜻한다.
'시간을 이겨내고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클래식의 사전적 의미로 따지자면 이 곡이 탄생한 이후의 40년이란 시간이 아직은 부족해 보이고 조금 더 시간적 검증이 필요하다 하겠지만 곡의 인기로 보아 이미 클래식기타 곡의 클래식으로서 자리를 차지한 느낌이다.
흔히 지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으로 바흐의 '샤콘느'가 소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영화의 장면 때문인지 나에게 있어 현존하는 가장 슬픈 음악은 바로 이 '카바티나'이며 클래식 기타리스트라면 누구나 연주와 녹음을 했을 법한 기타 음악의 레퍼런스로의 위상을 굳건히 하고 있는 명곡인 것이다.
영화 <디어 헌터> OST에서 이 곡을 연주한 행운의 기타리스트는 '존 윌리엄스'다.
영화 <스타워즈>와 <조스>의 음악을 만들어 낸 영화음악 작곡가 존 윌리엄스와 혼동될 수 있고 영국의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 '본 윌리엄스'와도 이름이 닮아 있지만 지금 언급하고 있는 존 윌리엄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클래식 기타의 거장이다.
그는 '줄리안 브림'과 함께 최고의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평가받고 있으며 팝음악 장르에도 관심이 많아 70~80년대에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스카이(Sky)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대 클래식기타의 부흥에 있어 최고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스승 '안드레스 세고비아'로부터 기타의 왕자라는 극찬을 받으며 영화 <디어 헌터>의 OST 중 '카바티나'로 더욱 유명해진다.
이러한 연유로 곡의 감상에 있어 그의 연주를 앞에 두어야 하겠지만 이제 또 한 명의 기타리스트를 추천하니 바로 중국의 여류 기타리스트 슈페이양(Xue Fei Yang)이다.
그녀의 2006년 데뷔 앨범 (영화 <금지된 장난> 주제곡)에 수록되어 있으며 기교적으로 은근히 어려운 이 곡을 노래하듯 아름답게 풀어낸 멋진 연주이다. 녹음도 훌륭하여 오디오테스트용 음반으로도 손색이 없으니 기타 소리를 좋아하시는 이들에게 선곡과 음질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취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 51회 아카데미작품상과 44회 뉴욕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한 <디어 헌터> 포스터.
◇비가가 된 '미국에 축복을'
영화 <디어 헌터>는 개봉과 동시에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 동시에 미국적 시각으로 다뤄진 베트남전 영화라는 비난 또한 비껴가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 <디어 헌터>는 전쟁이 인간의 영혼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볼 때 확실히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반전 영화임에 틀림없다.
평온한 삶에서 벗어나 느닷없이 전쟁 속에 놓였을 때 왜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 그리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영화는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단지 평화로움에서 아비규환으로의 빠른 장면전환이 있을 뿐이며 이러한 극명한 장면적 대비는 평화로움을 서글프게, 지옥을 더욱 잔혹하게 보여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는 어떠한 이유도 전쟁에 당위성을 부여할 수 없음을 은연중 보여 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과연 젊은이들의 피를 요구할만한 명분을 가진 전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영화가 던지는 이러한 질문들 속에 스러져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서글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함께 부르던 '미국에 축복을'이 화려한 찬가가 아니라 서글픈 비가가 되고 그렇게 영화가 끝난 후 화면 속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닉'의 환한 웃음이 있다.
'마이클'은 여전히 장난스러우며 '린다'의 표정은 왜 이리도 행복한지…. 전쟁이 이들의 운명을 망쳐놓기 전의 모습들, 그 환한 모습들과 어울려 '카바티나'가 흐른다. 그리고 이토록 서글픈 기타소리와 함께 잔잔히 노래로 호소하던 가수 '존 레넌'의 노랫말이 또한 날로 게을러져만 가는 나의 감정 근육을 되살리려 한다.
'위하여 누군가를 죽이거나 또 죽어야 할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모든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가는 곳을 상상해 봐요.' /심광도 시민기자
첫댓글 그당시엔 한국에서 금지가 되었을듯 ..
영화채널에서 보았지요.
본사람 모두는 같은 감정이었을듯 합니다
20대 젊은날 명동에 있는 중앙국장에서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주연의 그 유명한 영화 디어 헌터 를 봤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네요~